선거 투표로 매서운 유권자의 힘을 보여준 영국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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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기자]
영국 총선 결과, 노동당의 압승이다. 14년간 정권을 잡았던 보수당은 기존 의석의 2/3를 잃었고 그 대부분 의석을 노동당에 내주었다. 무엇보다 전 영국 총리였던 리즈 트러스(Liz Truss)를 비롯한 거물급 보수당원 10명이 의석을 잃는 등 전례 없이 혹독한 유권자들의 심판이 이뤄졌다.
최근 영국 정치에는 '남 탓'이 난무했다. 집권여당인 보수당은 '브렉시트 때문에', '코비드 때문에' 등등 실정(失政)의 이유를 모두 제 탓이 아닌 상황 탓으로 돌렸고, 어제까지 야당이던 '노동당'은 주로 '집권당이 일을 엉망으로 해서', '내가 하면 훨씬 잘할 텐데'하면서 상대 비난에 열을 올렸다.
국민들은 생활 비용 증가, 높아진 모기지 금리 등 살기 점점 힘들어지는데, 정치인들은 총리 관저에서 락다운 중 파티를 한다거나, 보수당 내 주자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가지고 싸우는 모습 등이 자주 노출됐다. 유권자가 배제된 그들만의 정치 상황을 보며 시민들은 무력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다른 유럽인들은 '영국인들은 도대체 속으로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 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 영국 유권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고 그들의 요구는 '정치 변화'였다.
▲ 영국 총선 투표 결과 영국 총선 투표 결과 BBC 캡쳐 |
ⓒ BBC |
선거 전부터 '14년 만의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고 있었다. 그만큼 사회 잡음이 많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보수당은 전통 지지층의 표를 유지하기 위해 연금생활자와 고소득층을 겨냥한 세금 감면 정책, 불법 이민자 르완다 이주 정책 등을 대거 내놓으면서 선거전을 펼쳤다.
선거 승리를 예상하는 노동당은 혹여나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일만을 조심하는 듯한 로우키(Low key) 행보를 펼쳤다. 더불어 유럽연합(EU) 재 가입 운동과 같은 급진적인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면서, 보수층의 우려를 낮추는 정도의 선거 전략을 펼쳤다.
▲ 집으로 배달된 선거 전단지 각 당의 공약이 담긴 선거 전단지가 집 우편함에 도착해 있다. |
ⓒ 김명주 |
나는 영국 이민자로 살고 있다. 내 입장에서 경기 불황이나 사회문제를 이민자 유입을 원인으로 맞춰가는 정치 상황은 반가울 리 없다. 불법 이민자들을 르완다로 이주 시키겠다는 보수당 정책발표는 그동안 서방이 강조해 왔던 국제 인권 등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결정으로, 보는 내내 불편하기만 했다. 이렇게 이민자를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살아갈 나 자신이 걱정되기도 했다. 영국 가정의 일원임에도 말이다. 보수당에 반해 노동당은 불법체류민 르완다 이주 정책을 폐기하고 대신 불법 입국에 대한 국경수비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대승을 이룬 노동당의 대표이자, 이제는 영국 총리인 키어 스타머(Kier Starmmer)는 '오늘 아침의 해가 뜨고 우리는 이제 밝은 미래로 달려갈 준비가 됐다'며 선거 승리 자축 연설을 한다. 이제는 전 영국 총리가 되어 버린 패장 리시 수낙(Rishi Sunak)은 총리직과 보수당 대표직을 물러나면서 유권자들에게 사과한다. 영국 정치인들이 'Sorry'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지만, 선거 참패에 대해 그보다 더 적합한 표현을 찾기 어려웠던 듯하다. 선거 승자인 노동당을 축하하고 새 총리의 행운을 비는 수낙 전 총리의 모습은 패장의 성숙한 뒷모습이었다.
▲ 지역 투표소 안내 표지판 영국은 총선 후보자 선거 대자보가 없다. 그저 투표소 안내문만 있다. |
ⓒ 김명주 |
무엇이든 한쪽으로 추가 기우는 것은 좋지 않다. 우경화되어 가던 유럽 그리고 세계 정치 상황에서 영국 노동당 집권이 정치 추의 균형을 맞춰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당장 대선을 앞둔 미국 언론들은 영국 총선 결과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무소불위 권력을 14년 동안 쥐었던 보수당원들은 오늘의 결과를 통해 통렬한 반성을 해야 할 것이고, 새롭게 정권을 잡은 노동당은 남 하는 일을 비난하기 보다는 이제는 직접 선거 공략을 실천해야 할, 진정한 도전의 시간이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세상에 보여준 오늘은, 말 그대로 영국 민주주의의 축제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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