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증장애인이 일한다? 세상 뒤집힐 가장 강력한 이야기

박경석/ 정창조 2024. 7. 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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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이 말하고 정창조가 쓰다①] 비장애중심 시스템에서 장애인이 노동하기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와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정창조가 나눈 이야기가 책 <출근길 지하철: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위즈덤하우스)로 엮여 나왔습니다. 그중 일부를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오마이뉴스>에 싣습니다. <편집자말>

[박경석/ 정창조 기자]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
ⓒ 이희훈
 
고병권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사회 전체를 이동시키지 않고서는 학교조차 갈 수 없다는 것, 사회 전체를 새로 배우게 하지 않고서는 야학에서의 작은 배움도 불가능하다는 것."[고병권, 《묵묵》, 돌베개, 2018, 26쪽] 돌이켜 보면 정말로 그랬던 것 같아요. 이동권 투쟁에서 그게 아주 정확하게 드러났지. 정말로 장애인들은 사소한 거 하나를 할래도 사회 전체를 이동을 시켜야 하고, 새로 배우게 해야 하더라고요. 그게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뒀으니까 우리 노들야학 학생들도 이제는 과거보다 더 많은 '일상'을 누리게 된 거잖아.

그런데요, 이것들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이것들보다 더 강력하게 사회 전체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거는 어쩌면 최중증장애인도 노동을 하겠다는 요구인지도 몰라요. 사실 "최중증장애인도 노동할 거다"라고 하면은, 이 사회에서는 진짜 이상한 말처럼 보일 거야. 이 사람들 어떻게 봐도 도대체가 일을 할 수가 없어 보이거든. 장애인, 그러니께네 'disabled person'이라는 말 자체도 기원적으로는 '노동할 수 없는 사람'이란 의미에서 왔잖아. 역사적으로 보면은 이렇게 노동할 능력이 없으니까 죄다 그냥 시설에 가둬두기 시작한 거고.

나만 해도요, 장애인이 노동할 수 있냐고 누가 물어보면, 정확하게 대답을 해줘요. 이 사람들 노동할 수 없다고. 적어도 최중증장애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 그렇다고요.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자본에다가 자기를 팔아가지고, 자본이 이윤을 뽑아먹을 수 있는 활동만 노동인 것처럼 이야기되잖아요. 일할 수 있는 사람들 착취를 잘해가지고 이 사람들한테 최소한으로 임금 주고 최대한 뽑아먹어야 돈을 벌 수가 있는 거야. 그러려면 노동자한테는 당연히 거기에 맞게 생산성, 효율성 같은 게 있어야 하는 거고. 그런데 중증장애인들한테 이런 능력이란 게 정말로 있나?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은 없는 게 사실이잖아. 

진짜로 농담이 아니라, 내가 사장이라도 돈 벌라고 맘먹으면 이런 사람들 안 뽑아요. 나같이 일 잘하는 장애인이라면 고민해보기야 하겠다(나도 제도상에서는 중증장애인인데, 비장애인들도 다 인정할 정도로 일을 잘하거든요, 하하). 그런데 대부분 중증장애인들은 정말로 지금 노동시장에서 존재 자체가 적합하지가 않거든. 그러니께네 자본 입장에서는 돈 벌어야 되는데 일 잘하는 사람들 데려다가 쓰는 게 맞지, 이런 사람들 데려다가 쓰는 게 맞겠어요?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이야기인데, 중증장애인들 고용하면 이 사람들이 일 잘 못하는 거 말고도 피곤한 게 참 많아지는 거거든. 중증장애인 고려해서 작업환경, 편의 시설 이런 거 다 바꿔야 하는 거만 봐도 그래. 이거 다 자본 입장에서는 돈이잖아. 이미 비장애인 중심으로 공간 다 만들어놨을 텐데. 이런 거 바꾸는 데 제도상으로 국가 지원을 좀 하도록 되어 있긴 하지만, 그거 외에도 중증장애인 고용하면 신경 써야 하는 게 아주 한두 가지가 아닌 거야. '장애인 고용이 기업의 부담이다' 같은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는 게 참 괘씸하긴 해도, 얘네들이 아무 근거도 없이 괜히 그러는 건 아닌 거죠.

그렇다고 중증장애인들 집안일 시킬 거야? 당연히 안 되겠죠. 집안일이란 게 얼마나 힘이 드는 건데. 거기에는 또 거기에 맞는 능력이 필요한 거잖아. 요새는 자본에 직접 고용이 안 되더라도 분명 이 세상 굴러가는 데 도움이 되는 많은 활동들을 노동으로 인정하라는 이야기들이 꽤 나오고 있긴 하죠. 특히 월급 안 받고 하는 재생산노동들 말이야.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에서 잘 인정 못 받던 필수노동에 대한 가치 평가도 새롭게 이뤄지고 있고요. 이건 참 좋은 일이지. 그렇게 노동 개념을 확장해가지고, 생산 시스템의 전환까지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런데요, 이런 노동 개념의 전환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중증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까지 고려해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언급하는 사람은 또 잘 없더라고. 재생산노동이나 이 사회가 필수노동이라 부르는 것들도 그게 얼마나 소중한 노동인지와는 별개로 비장애인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노동이고, 그런 만큼 거기에 맞는 능력이라는 게 또 요구가 되잖아. 사실 이런 노동들은 기존 비장애중심주의 노동 시스템에서 이미 다 당연히 이뤄져온 노동이기도 한 거고. 노동 개념 전환 주장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 시스템 변혁까지 말하는 사람들마저도 이렇게 체제 내에서 이미 인정받고 있는 노동 외에는 어떤 노동이 있을 수 있는지를 잘 떠올리질 못하고 있는 거야.

장애인 노동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은 이런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을 해야 돼요. 그냥 막연하게 "장애인들도 노동 좀 시켜줍쇼" 하고서 구걸하기 전에, 지금의 노동개념과 패러다임이 어떤지를 먼저 잘 생각을 해봐야 하는 거지. 비장애인들보다 능력도 많이 떨어지면서 시혜적으로라도 일자리 가져서 나도 노동자다, 이제 나도 월급 받는다 이러면서 자부심 갖는 장애인들도 당연히 있긴 하죠. 그래도 중증장애인은 아닌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말이야. 그런데 이 사람들도 거기서 일을 잘 못하니 자존감만 팍팍 떨어지고 그러니 일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경우도 많거든. 결국 엉엉 울면서 그만두고 나오는 장애인도 있고. 경증장애인들도 이런데, 최중증장애인한테 그냥 아무 일이나 맡겨놓고 "야! 열심히 일해봐라"라고 하면은, 그게 장애인 본인한테 정말로 마냥 좋기만 하겠어요?

상황이 이러니께네 지금 기준이 요구하는 능력들이 전혀 없는 사람들 데려다가 그냥 바로 "노동시킬 수 있다" 이렇게 우긴다고 문제가 곧장 해결이 될 리 없는 거예요. 장애인 노동권 문제의 대안이란 게 고작해야 제대로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재미도, 성취감도 못 느끼는 일자리에다가 장애인들 억지로 집어넣어 버리는 거에 그쳐서는 안 되는 거기도 하고. 그럼 일시키는 사람 입장에서야 당연히 안 좋을 테고, 사실은 같이 일하는 비장애인 노동자들도 장애인들 일 못하는 만큼 자기가 해야 하니까 아주 죽어나는 거거든.

분명하게 말을 할게요. 최중증장애인이 노동을 하려면요, 정말로 노동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뒤집지 않고는 불가능해요. 제가 중증장애인이 노동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그러니께네 사실은 내가 정말로 나쁜 사람이라 이런 맘 품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중요한 전제가 깔려 있는 거예요. 지금 노동 개념에 맞춰 생각을 해보면 도무지 노동으로 인정받는 일을 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윤이나 생산성, 효율과 무관한 다른 다양한 활동들도 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은, 그렇게 노동 개념과 패러다임이 변하게 되면은 이제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께네 출발점은 언제나 지금 이 사회에서 일로 아예 인정을 못 받는 것들에 대한 상상을 더 확장하고, 그걸 이 사회에다가 정말로 실현해내는 게 돼야 하는 거야. 정말로 빈말이 아니라, 중증장애인이 노동을 하려면은 사회 전체를 이동을 시켜야 하는 거예요.

한국 장애인운동이
장애인 노동권 투쟁으로부터 시작을 했는데요

 
 지난 2023년 9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로비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단체 '피플퍼스트' 활동가 등이 동료지원가 사업 예산 삭감과 관련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던 도중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저는 지금 자본주의에서도 자주 하는 혁신 같은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자본은요, 노동을 계속해서 바꿔가고 있어요. 얘네가 시대에 맞춰서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거 보면 정말로 어마어마해. 얘네 입장에서도 그래야 계속 이윤을 뽑아먹을 수가 있으니까. 비정규직 만들어내고 플랫폼노동 만들어내고 하는 거에서부터, 인공지능 시대다 뭐다 하니까는 막 새로운 노동들이 탄생하고 그런 것들도 봐봐. 돈만 더 벌 수 있으면 노동이 아니었던 게 노동이 되고, 예전에는 상품도 아니었던 것들이 막 상품이 되고 그러잖아.

그런데요, 얘네는 아무리 새로운 노동, 새로운 노동, 새로운 노동 말해봐야 결국은 자본주의의 속성은 그대로 남겨둔 채로 그렇게 하는 거거든요. 경쟁, 효율, 생산성 같은 기준들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께네, 아무리 혁신이다 뭐다 해봐야 본질은 바뀌지 않는 거죠. 그러니 그렇게 노동 세계가 바뀌어봤자, 중증장애인은 계속 그 영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거고. 혁신을 했다고는 하는데 이상하게 비장애인 노동자들 삶은 도리어 더 힘들어지고.

문제는 기존 장애인 노동 정책이라는 것들도 여전히 이런 경쟁, 효율, 생산성 틀에 콕 박혀가지고 만들어져 왔다는 거죠. 그냥 자본주의적 노동의 틀 안에 딱 갇혀가지고 지금도 그 안에서만 놀고 있어. 고용노동부도, 복지부도, 장애인고용공단도 기껏 한다는 게 그냥 변화하고 있는 노동시장에 맞게 이 사람들 쪼금 편입시켜 보겠다 정도만 말을 하고 제도화해 왔잖아. 자본주의 때문에 노동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인데도, 이 관계의 전면적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서 고걸 만들어온 거야.

윤석열 정권도 딱 그러고 있거든요.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생산성하고 무관한 노동, 우리가 싸워서 만들어낸 새로운 노동 개념 딱 걸고 있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같은 일자리는 주구장창 공격하고, AI시대에 맞춰서 장애인 일자리 교육 확대하겠다 어쩐다 하면서, 어차피 중증장애인들한테는(사실은 상당수 경증장애인들한테도)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나 하고 있고. 솔직히 말을 해보자면, 과거 장애인운동하던 사람들도 기조가 크게 다르지는 않았어요.

한국 장애인운동이 장애인 노동권 투쟁으로부터 시작을 했는데요. 80년대 후반에 장애인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으니까, 그 시대 분위기에 맞춰진 게 있었던 거지. 그 시대는 계급 해방, 노동 해방, 이런 게 제일 중요했잖아. 그부터 정태수[88년 장애인운동을 시작하여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운동 등 장애인 노동권 투쟁에 헌신하다 2002년 과로로 사망했다. 한국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기초를 닦은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같은 애가 마르크스 어쩌고 쪼가리 글 읽고 와서 "장애인들도 일단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역사의 주체로서 계급투쟁에 함께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 하면서 박수받고 했던 게 괜히 그랬던 게 아니거든.

나도 고놈 때문에 참 힘들었어. 갑자기 나 다방 데려가 가지고 어디서 대학생 한 명 불러다가 《자본론》 같이 읽자고 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내용은 하나도 이해를 못 하고, "그래 우리도 같이 자본주의 부숴가지고, 혁명하자" 이래 결의나 다지고서 술이나 먹으러 가고 그랬었지. 그런데 그렇게 자본주의 타도니 뭐니 엄청 거대한 생산 시스템의 변혁을 이야기했으면서도, 그때 요구들 잘 생각해보면 기껏해야 그냥 기존 시장 내에서 이미 노동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들 나도 하게 해달라, 우리도 그거 할 수 있다, 이 정도였던 거거든.

그러면서 강력하게 주장했던 게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이었는데, 이 법만 들여다봐도 그래요. 이 법의 핵심이 고용할당제거든. 흔히 '장애인 고용의무제도'로 불리는 거지. 고용의무제란 건 쉽게 말해서, 노동자 몇 명 이상 고용한 기업에서는 몇 프로 이상 장애인을 고용해라 이런 거야[90년대 초에는 300인 이상 기업에서 전체 노동자의 2퍼센트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했었고, 2024년 현재는 50인 이상 기업에서는 3.1퍼센트, 공공에서는 3.8퍼센트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기업들이 이 기준 안 지키면 고용부담금을 내야 하는 거고.

이 법 제정하는 투쟁 과정도 장애인의 노동문제를 사회구조적으로 접근했다는 측면에서 장애인운동사에서 굉장히 의미가 크고, 고용의무제가 장애인 노동권 보장 관련해서 갖는 의미도 물론 크죠. 특히 그래도 노동능력이 좀 있는데 차별받아서 일자리 못 갖는 경증장애인들 같은 경우에는 이 제도가 아주 소중할 수밖에 없는 거거든. 지금까지도 이 제도가 장애인 고용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80년대부터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투쟁 하고 90년대 내내 고거 지키라고 요구했던 사람들도요, 중증장애인들이 특히나 노동에서 배제되는 문제 같은 거는 별로 고민을 안 했어요. 이미 누구를 배제한 채로, 아니 사실은 아예 누군가를 생각도 못 한 채로 이런 요구만 주구장창 한 거야.
 
 <출근길 지하철: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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