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연의 K컬처] 당연한 것에 대해 질문할 것 그래야 실체에 더 가까워진다
덥다. 작년보다 확실히. 지구온난화가 살갗으로 느껴진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의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23년 지구의 평균 온도는 산업화 전보다 1.5도 높았으며, 7월의 지구 표면 온도 역시 평균 16.95도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해수면 온도 역시 매월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유럽연합(EU) 감시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C3S)의 조사결과, 지난 4월의 전 세계 평균 해수면 온도는 21.07도로, 웬만해서는 21도를 터치하지 않던 기존의 추세를 가뿐히 넘어섰다. 홍수와 가뭄, 산사태, 태풍, 이상고온, 집중호우 등 이에 따른 자연재해 역시 증가추세에 있으며, 이는 우리 인류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상기후에 따른 작황부진으로 지난 1분기 올리브유, 코코아, 원두, 설탕 등 주요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으며, 올해 초 국내 사과의 몸값은 드디어 ‘금’에서 ‘다이아’가 되셨다.
위협은 언제 어디서나 뉴스가 된다. 생존확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진화해 온 인류에게 위협은 일차원적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도 위협을 감지하는데 특화되어 있다. 대상의 형체나 색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도 우리의 눈은 주위 사물의 움직임을 거의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더라도 어렴풋하게나마 대상의 이동 방향이나 동작을 적시에 캐치할 수 있어야 대응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눈의 생리학적 구조가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항상 최적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대상의 정체에 따라 그 움직임의 정의와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희미하게 나타난 대상은 적일 수도 아군일 수도 있다. 피아식별의 오류로 인해 적을 끌어안을 수도, 아군을 해(害)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인식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 눈의 또 다른 기능, 암순응(暗順應)에 의지해야 한다. 정체가 불분명한 상대를 위협으로만 인식해 본능적으로 대응해서는 효과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가능한 한 시간을 두고 대상을 뚫어지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것의 본질이 드러나게 되고, 비로소 적절한 대응책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회고해 보면 최초 정체 미상이었던 사건 대부분은 매번 위협이면서 기회였다.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간 페스트는 교권의 몰락과 인본주의의 태동을 가져다주었다. 참혹했던 2차 세계 대전 중 아인슈타인 등 세계의 브레인이 자유세계로 이동하면서, 특히 미국은 과학과 기술에 기반한 패권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한국사회에도 암순응이 필요한 때다. 할 수 있다. 교육 수준 세계 1위의 한국 아닌가. 미디어와 국제사회에서 쏟아내는 데이터와 예언들을 한 발자국만 멀리서 바라보자. 이들이 생산해 내는 조사자료나 어젠다가 허위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만 그들이 만들어낸 사고의 틀 밖에서 이슈를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다양한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실체에 더 가까워진다.
녹아내리는 거대 빙산과 아련히 먼바다를 바라보는 북극곰이 교차하던 장면을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후온난화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는 국제구호단체의 광고다. 꽤 많은 시청자가 북극곰에 대해 가엾음과 미안함,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분노를 몇 만 원 되지 않는 월 후원금으로 해소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매우 효과적인 캠페인이며, 필자도 학생들에게 이러한 메시지가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가르친다. 하지만 우리가 하지 않은 더 근원적인 질문이 있다. “북극곰의 개체 수는 정말 줄었을까?”
북극곰 리서치 그룹(the Polar Bear Research Group)의 집계결과는 이와 반대. 북극곰 개체 수는 1998년에서 2008년 사이 한시적으로 감소한 적은 있으나, 2020년으로 오면서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이런 믿지 못할 결과를 북극곰의 개체 수를 측정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원유의 매장량이 매년 증가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나름 일리 있는 해석이다. 그럼에도 북극곰의 개체 수가 감소했음을 증명하는 데이터는 찾기 어렵다. 기후변화로 인한 북극곰의 멸종이 구호단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였다면, 애초부터 그런 문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전히 북극곰의 조기사망 원인 1위는 밀렵이다. 북극곰의 개체 수를 추가로 늘리는 것이 구호단체의 목적이었다 전제하더라도, 광고화면에는 부서져 바다로 떨어지는 빙산이 아니라 잔인한 밀렵현장이 나와야 논리에 맞다.
사람은 더위가 아닌 추위에 더 취약하다. 2005년 현재 추위로 숨지는 이들의 수는 세계인구의 약 6.7%에 육박하며, 1985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줄곧 증가추세다. 이에 비해 더위로 죽음을 맞는 이들은 같은 기간 약 0.5% 정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기후온난화로 더위에 의한 조기사망률 증가를 예상하고는 있으나,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고려했을 때, 여전히 우리는 추위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 겨울은 더 추워지고 여름은 더 더워지는, 이른바 ‘기후의 양극화’가 예상된다 하더라도, 현재의 데이터는 더위가 아닌 추위를 극복하는 것이 인류에게 더 시급한 과제임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2022년 북극의 대기(polar vortex)가 기후온난화로 남하하면서 따뜻한 텍사스에 유례없는 겨울폭풍을 일으켜 2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제외하면, 추위를 구조적 위협으로 경고하는 글은 찾기 어렵다.
그린란드는 지구온난화로 지난 30년에 걸쳐 1만1000제곱마일의 판빙(ice sheet, 지표면 위에 언 얼음)을 잃었다. 남한 땅의 약 28%에 해당하는 거대한 면적이다. 환경학자들은 해빙이 시작되며 본격화하고 있는 주변지역의 기온상승과 이에 따른 원주민의 생활양식 변화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걱정만 할 일은 결코 아니다. 빙하가 후퇴하면서 지금껏 불모지로 남아있던 그린란드에 드디어 습지와 초목지대가 형성 중이며, 여기서 나오는 유기물과 메탄을 서식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미생물체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이 새로운 생태계 역시 온실가스 유입의 추가원천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 땅의 주인인 덴마크인들에게만큼은 기회와 축복임에 틀림없다. 진정한 ‘Green Land’로 탈바꿈하고 있는 이 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그들은 조용히, 하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기후온난화의 이면(裏面)은 웬일인지 국제기구의 통계자료에 도무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기후변화로 인한 세계 GDP의 감소, 온열질환으로 인해 사망 위기에 처하게 될 노령인구의 증가 등 부정적인 예측들은 이제 식상할 정도. 반면 자연재해에 의한 사망자 수와 복구비용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 내연기관 자동차 이용에 의한 경제적 손실은 기후변화나 공기오염이 아닌 교통체증이나 사고에 집중되어 있다는 통계치는 접하기 어렵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여 지구의 온도상승을 2도 이내로 제한하여야 지속가능한 미래가 가능하다는 IPCC의 경고장에는 이를 위해 투입되어야 하는 예산의 경제적 ‘비(非)’효율성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다.
한국인은 웬만해선 질문을 잘하지 않는다. 사회의 통념으로 굳어져 당연한 것으로 받아지는 것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새로운 해법은 그룹싱킹이 아닌 다수의 신념이나 소수의 권위를 거스르는 생각과 질문에서 비롯된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권위자들의 말에 우리는 더럭 겁부터 먹고 그저 우왕좌왕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패닉상태에서 급조해 낸 대책이 궁극의 해법으로 화(化)할 확률은 희박하다. 이제 차분히 앉아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위협을 천천히 들여다보자. 그리고 질문하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수록 더.
본 칼럼에 제시된 데이터는 덴마크의 정치/환경학자 비욘 롬보르(Bjorn Loborg)의 책 ‘False Alarm (2021)’에 소개된 통계치에 기반한 것이며, 채택한 분석방법이나 데이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김상연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겸 한국문화데이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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