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도 안 했는데 왕우렁이 왔다" 경찰 수사 받는 친환경 농법
제초용 왕우렁이가 농가의 신청 없이 전남 함평 지역에 수년간 공급되고 있다는 고발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제초용 왕우렁이 보급은 지자체 보조금 사업이다. 왕우렁이 농법은 1990년대 이후 농약을 대신해온 친환경 제초방식이지만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다.
5일 전남 함평경찰서 등에 따르면 “함평군의 논 잡초 제거용 왕우렁이 지원 사업 관계자들을 수사해 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이 접수됐다. 고발장에는 함평군 나산면 한 마을에 농민들이 신청한 적이 없는 왕우렁이가 수년째 배달돼 보조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장이 임의로 왕우렁이 신청” 주장
함평군 왕우렁이 사업에 대한 세금 낭비 논란은 지난달 말 불거졌다. “나산면 한 마을의 21개 농가 중 19개에 농민들이 신청한 적이 없는 왕우렁이가 배달됐다”는 민원이 제기되면서다. 이후 함평군은 함평군 내 전 농가를 대상으로 왕우렁이 신청·공급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함평군의 왕우렁이 공급사업은 논 잡초 제거를 위해 2019년 도입됐다. 함평군은 전남도비와 군비를 합쳐 매년 4억~7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사업비는 보조금 90%와 농가 부담 10%로 운영된다.
“우렁이 대체할 친환경 제초법 없어”
하지만 지구 온난화 등 여파로 생태 양상이 바뀌면서 지역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이다. 논에서 겨울을 나며 40㎜ 이상까지 성장한 왕우렁이가 식욕이 왕성해져 봄철 어린모까지 갉아먹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함평군을 비롯한 농가 곳곳에서는 배달된 왕우렁이를 숲이나 수로에 방치하고 있다. “생태교란종인 왕우렁이가 논에서 관리되지 않은 채 버려지고 있다”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농민 정모(72·함평군)씨는 “지난 겨울 포근한 날씨 탓에 월동에 대거 성공한 왕우렁이가 어린모를 갉아먹어 모를 다시 심었다”며 “신청도 안 했는데 벼농사에 피해만 주고 있으니 세금만 먹는 애물단지 아니냐”라고 말했다.
우렁이 구입비 + 제거비 ‘이중 지출’
지원 대상은 올해 왕우렁이 피해가 발생한 친환경논과 일반논 1864㏊ 규모다. 총사업비는 4억6600만원 규모로 도비 30%, 시·군비 70%가 투입된다.
전남도는 또 7월 한 달간을 ‘왕우렁이 일제 수거기간’으로 정해 하천 등지로의 확산 방지에 나선다. 수거 대상은 농경지와 용·배수로 주변에 있는 우렁이 알과 올해 벼 생육초기에 논 잡초 제거에 사용된 왕우렁이 등이다.
함평=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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