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의 고백록] 어머니의 ‘파란 탯줄’

2024. 7. 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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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때 그 시절 교사들은 지금처럼 바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이 바빴다. 소를 몰러 가고 풀을 뜯어 소여물을 마련했다. 공부보다 밭일이 급했다. 수업에 빠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선생님들은 남아도는 시간에 화투를 치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들 아지트 중 하나가 주막이었다. 아버지도 주막 단골손님이었다. 나는 그 주막 이름을 선명히 기억한다. ‘진달래’.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 좀 찾아보라”고 호통을 치는데 찾을 도리가 없었다. 아버지와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진달래 집이었다. 불그스레한 불빛 아래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아버지를 봤다. 어머니보다 젊고 이쁜 아가씨도 있었다. 찾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나는 차마 어머니한테 말하지 못했다. 못 찾았다고 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밥상, 어머니는 아버지 밥공기를 아랫목 이불 밑에 묻었다. 시간이 흐른다.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한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더니 난데없이 날 더러 따라나서란다. 불 꺼진 진달래 집,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끝내 아버지를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내 발자국 소리보다 크다. 저수지를 지나는데 어머니가 긴 한숨을 쉬며 내뱉는다. “나, 이 저수지에 빠져 죽어버릴란다.”

어린 나이에 나도 모르게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나도 울고 어머니도 운다. 나는 어머니의 첫 눈물을 그렇게 봤다. 어머니는 내 눈물을 보지 못했다. 사나이는 울어서는 안 되기에 눈물을 꿀꺽 삼켰다. 어머니의 가슴이 파랗게 멍드는 만큼 내 가슴도 멍들어 돌멩이처럼 쪼그라들었다.

어느 날 속상한 어머니는 아버지가 벗어둔 옷가지를 들고 냇가로 간다. 옷을 물에 패대기치고 작대기로 휘휘 젓는다. 푸념을 쏟아낸다. “에라, 인간아! 인간아~.” 옷을 건져 올린다. 이번에는 빨랫방망이로 두드린다. “곤장으로 매우 쳐라!” 하는 사또의 엄명이었다. 그 소리가 왠지 내 귀에도 시원하게 들린다. 고요한 마을에 방망이질 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를 신호탄으로 동네 아줌마들이 제각기 빨랫감을 들고 냇가로 나온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된다. 드디어 네댓 사람이 모여든다. 서로 말이 없다. 침묵이 더 많은 말을 한다. 방망이질은 한결같다.

나는 이것이 ‘난타’ 공연의 원조라고 여긴다. 공연은 추운 겨울에도 예외가 없다. 살얼음을 깨고 계속된다. 그러다 어느 시간이 되면 방망이질이 멈춘다. 숨마저 멈춘다. 흐르는 물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멍 때리기’다. 그렇게 시름을 떠나보내고 마음의 분노를 헹궈냈다.

연원을 거슬러 오른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도 그랬을 테다. 조선시대에는 1592년 임진왜란을 필두로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있었다. 나선정벌이 있는가 하면 병인양요가 있었다. 신미양요가 뒤따른다. 전쟁뿐만 아니다. 조선왕조 500여년 중 270년은 자연재해의 연속이었다. 기근이 끊이지 않았고 전염병이 창궐했다. 근현대로 넘어와서는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일본의 노예가 된다. 겨우 해방을 맞이했으나 민족상잔의 한국전쟁을 치른다. 세계사에 가장 끔찍한 전쟁으로 기록된다. 이어진 태풍 사라는 전쟁 이상으로 끔찍했다. 광복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다. 재난은 끝이 없다.

거기다 생로병사의 슬픔은 얼마나 크고 깊었을까. 카오스 상태의 나라가 어떻게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릴 수 있었을까. 가장 가난한 나라가 우뚝 일어나 세계 강국 6위가 된 ‘회복 탄력성’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주저 없이 ‘멍하니’를 꼽는다. 멍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시퍼렇게 멍든 가슴을 달래던 멍때리기는 파란 하늘로 이어진다. 두둥실 흘러가는 구름이 말한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보다 구름이 있어 하늘은 더 예쁘고 아름다운 거란다.” 내가 답한다. “그래그래. 그래서 내 인생에도 자주 구름이 끼는 거겠지.” 나는 이것을 ‘구름멍’이라 부른다. 나는 어머니의 ‘멍’으로 날마다 다시 태어난다.

태어날 때 빨간 탯줄은 내가 보지 않았으니 모르겠다. 하지만 어머니를 살리고 나를 살게 한 파란 탯줄은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나를 살려준 ‘멍’을 ‘멍하니(honey)’라 부르는 이유다.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동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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