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커졌는데… ‘심장’ 이상신호

임성수 2024. 7. 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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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로에 선 나토
트럼프·극우 돌풍에 원팀 위기
‘푸틴 저격수’ 취임도 변수
게티이미지뱅크


북미와 유럽을 연결하며 자유 진영의 보루 역할을 해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창설 75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갈림길에 섰다. 나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 맞선 군사외교동맹체로 출발한 뒤 세력을 확장해 회원국이 32개국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과는 별개로 최근 위기의 시간을 맞고 있다. 나토의 ‘심장’인 미국에서 나토에 적대적인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유럽에서 나토의 주춧돌 역할을 해온 프랑스도 극우 정당의 총선 압승이 예상돼 먹구름이 꼈다. 롤러코스터 같은 국제정세 속에 9일(현지시간)부터 나토 정상회의가 개최되고, 오는 10월에는 대러시아 강경파인 새 사무총장이 취임한다.

팽창하는 나토, ‘트럼프 리스크’로 빨간불

32개 나토 회원국은 9일부터 11일까지 미국 워싱턴DC에서 정상회의를 연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우리의 모든 국민과 가치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나토의 단합과 힘을 다시 한번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나토의 핵심은 헌장 5조에 담긴 ‘집단방위’다. 한 국가가 공격을 받으면 이를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며 무력 사용을 포함한 원조를 제공하는 것이다. ‘원팀’과 같은 집단방위체제를 75년간 구축·확장해 왔다.

나토는 올해 덩치가 더 커졌다. 지난 3월 스웨덴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며 가입국을 32개로 늘렸다. 스웨덴이 나토에 공식 합류한 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략적 대실패를 오늘보다 더 잘 보여주는 예는 없다”며 “나토 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고 강해졌다”고 말했다. 내실도 단단해졌다. 나토는 올해 회원국 중 23개국이 국내총생산(GDP)의 최소 2%를 국방비로 지출하는 동맹 가이드라인을 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나토를 둘러싼 불안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나토의 두 기둥인 미국과 프랑스에서 반나토주의자들이 집권하거나 득세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대선 TV토론과 프랑스 조기 총선은 나토에 도전하고 우크라이나 방어를 되돌릴 수 있는 민족주의 세력을 대담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가장 큰 우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공개적으로 나토를 비판했다. 지난 2월 유세에선 “방위비를 늘리지 않는 나토 회원국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을 독려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달 TV토론에서도 조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왜 나토 국가들이 더 많은 돈을 쓰도록 압박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때도 나토 회원국의 방위비 인상을 줄기차게 요구했었다.

유럽에서도 트럼프 재집권 시나리오를 대비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5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미국의 우선순위는 때때로 다른 곳에 있다”며 “모든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생존할 수 있는 보다 독립적이고 주권적인 유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 자신이 국내 정치에서 벼랑 끝에 몰렸다. 7일 결선투표를 앞둔 자국 총선에서 반나토·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이 압승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프랑스 우선주의’를 내세운 RN은 그동안 나토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내 왔다.

국제정치의 역학 변화 속에 나토도 최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일 “나토가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민간 주재관을 배치하는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유럽 전역에서 우파 정치가 급부상하고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복귀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줄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조치”라고 설명했다. 트럼프와 유럽 극우파의 ‘나토 흔들기’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나선 셈이다.


동진하는 나토, ‘푸틴 저격수’의 선택은

나토는 1949년 4월 창설됐다. 미·영·프랑스·캐나다 등 북미와 유럽 12개국이 결성한 군사동맹으로, 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의 확장을 막는 것이 목표였다. 1991년 구소련 붕괴 이후에는 헝가리·폴란드·체코 등 동유럽 국가와 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3국까지 가입하며 러시아를 턱밑까지 압박했다.

이 같은 나토의 확장이 러시아를 자극해 긴장을 높였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2년 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명분 중 하나도 나토의 동진에 대한 대응이었다. 우크라이나는 2008년부터 나토 가입을 시도했고 러시아는 이에 반발해 왔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나토는 더 확장했다. 지난해 핀란드를 가입시킨 데 이어 올해는 200년간 중립국이던 스웨덴까지 받아들였다. 특히 핀란드는 러시아와 맞닿은 국경이 1340㎞에 달한다. 나토의 동진이 러시아와 서방의 ‘완충지대’를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가운데 나토는 10년 만에 리더십을 교체한다. 나토는 최근 ‘푸틴 저격수’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를 새 사무총장으로 지명했다. 뤼터 총리는 스톨텐베르그 현 사무총장의 임기가 종료되는 10월부터 나토를 이끌게 된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뤼터의 허니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귀환 가능성과 푸틴에 우호적인 유럽 극우 정당의 부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세 강화, 회원국 간 국방비 지출 갈등, 사무총장 경쟁에서 밀린 동유럽 국가들의 불만을 뤼터의 5가지 도전 과제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뤼터가 노련한 정치인이라 할지라도 정치 경력의 다음 장(나토 사무총장)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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