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사랑에 빠진 5명의 여자

천일홍 2024. 7. 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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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부터 70세 서퍼까지, 그들의 뜨거운 바다 러브 스토리
이보미 - 프리다이버

Q : 나는

A : 5년 차 프리다이빙 강사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깊은 풀장을 보유한 이곳, 딥스테이션의 앰배서더.

Q : 바다와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

A : 물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한번은 보라카이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데 어느새 발이 닿지 않는 깊이까지 와버린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물이 무섭더라고요. 그 공포를 극복하고 물과 더 친해지고 싶어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프리다이빙에 입문했죠. 꾸준히 배우다 보니 강사 자격증까지 따게 됐네요.

Q : 바다가 준 용감함과 유쾌함

A : 바다에 나가는 것은 늘 유쾌해요. 다만 교육생들을 데리고 바다로 나갈 때, 예상보다 파도가 높거나 바람이 세면 저도 모르게 겁이 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교육생들을 안심시키고 안전하게 강습을 수료하는 것도 강사의 주된 업무기에 바다 강습 때는 늘 용감해져요.

Q : 프리다이빙의 매력

A : 30m 이상의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순간 화면 전환이 되는 느낌이에요. 바다 표면에서는 뿌옇게 보이던 바닷속 생물들이 엄청 생생하고 선명하게 보이는 게 정말 매력적이죠. 물 밖에서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던 바다거북들이 사실 엄청 거대하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아요!

Q : 바다와 함께한 잊지 못하는 순간

A :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수심 40m까지 두 번 갔다 와야 해요. 근데 트레이닝을 할 때도 37m 이상만 되면 더 이상 못 내려가겠는 거예요. 딱 2m만 더 내려가면 되는데 이퀄라이징 기술 부족으로 매번 실패했죠. 그러다가 제주도 섶섬에서 취득 당일 처음으로 성공한 거예요. 수심 40m를 찍고 올라와서 감독관에게 OK 사인을 딱 받았을 때, 옆에 있던 동료들한테 물세례를 받으며 정말 펑펑 울었어요. 그날을 잊지 못해요.(웃음)

Q : 바다에서 배운 가치

A : 바다에서 수직으로 내려갈 때 양성 부력이 음성 부력으로 바뀌는 구간이 있어요. 그때는 가만히 있어도 제 몸이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죠. ‘숨 쉬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멘털이 흐트러지면서 더 이상 밑으로 내려갈 수 없게 돼요. 그래서 최대한 머리를 비우고 이퀄라이징과 프리다이빙 호흡을 하며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요. 이게 일상생활에서도 도움이 많이 됐는데, 특히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인내심을 기르는 데 효과적이에요.

Q : 프리다이빙을 추천하고 싶은 대상

A : 고민과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에게 추천해요. 물에 들어가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스트레스 완화에도 도움이 돼요. 수영을 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저도 프리다이빙을 시작하고 나서 배웠으니까요!

Q : 나에게 ‘바다’란

A : 언제나 가고 싶은 곳! 프리다이빙을 하지 못하는 겨울에도 늘 바다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갑니다. 바라만 봐도 좋으니까요.

정현영 - 해양경찰

Q : 나는

A : 부산해양경찰서 경비구조과에서 경비 작전 업무를 담당하는 해양경찰로, 해상 경호, 해상 대테러 경호 계획 수립, 해양경찰 경비 세력 운용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Q : 바다와 함께한 잊지 못하는 순간

A : 2004년, 제주도에서 여성 특수기동대원으로 근무할 때 받았던 해상 훈련을 잊지 못해요. 헬기 레펠, 건물 레펠, 스쿠버다이빙, 고속 보트운용술, CQB(근접 전투) 등 가르치는 대로 흡수한다고 교관님들이 저를 ‘스펀지’라고 불러주셨어요.(웃음) 그중 최고는 고속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제주 바닷속을 탐험했던 경험이죠. ‘나 이렇게 행복하게 근무해도 되나’라고 생각했던 게 아직 생생해요.

Q : 해양경찰을 꿈꾸게 된 계기

A :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신경이 남달랐습니다. 이 재능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특전사를 꿈꿨죠. 하지만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무릎인대 부상으로 특전사의 꿈을 접어야만 했어요. 대신 대학교 1학년 때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인명구조요원으로 봉사 활동을 하며 사람을 구조하는 일에 보람을 느꼈던 경험을 되살려 곧바로 해양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104:1의 경쟁률을 뚫고 채용됐습니다.

Q : 해양특공대 경험이 해양경찰 업무에 도움을 준 점

A : 특공대 근무 경험이 있었기에 해운대 여름해양경찰서 운용 시 여경구조대장으로 활약할 수 있었고, 2019년에는 교육원 훈련함으로 발령받아 여경 최초로 구조팀장을 맡게 됐습니다. 현재 담당하는 경호 계획 수립 업무 역시 특공대원으로 해상 경호에 투입돼 수중 검측이나 선박 통제, 해상 대테러 임무를 수행했던 경험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됩니다.

Q : 나에게 ‘바다’란

A : ‘엄마’ 같아요. 화내면 무섭고, 힘들 때 생각나고, 안 보면 보고 싶죠. 또 바다를 즐기는 우리 국민이 바다에서 엄마 품과 같은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고 싶어요.

Q : 해양경찰을 꿈꾸는 여성에게 전하고 싶은 말

A : 여자라서 할 수 없는 업무는 없습니다. 수영에 자신이 있던 저는 2년 전 수상구조사 자격증에 도전했어요. 합격 기준에 남녀 구분이 없던 터라 4차례나 불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다섯 번째에 결국 해냈죠. 40대가 된 지금도 “여자라서 힘들 거야”라는 말을 들어요. 그럴 땐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서 미친 듯이 능력 개발을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도전하세요. 실패해도 괜찮아요. 다시 준비해서 또 도전하면 됩니다.

양영숙 - 서퍼

Q : 나는

A : 올해로 70살, 부산에 살고 있는 6년 차 서퍼!

Q : 바다와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

A : 오랫동안 옷 장사를 했어요. 1년 365일을 가게에 매이다 보니 스스로에게 보상이 필요하다 싶어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죠. 언젠가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했는데, 백발의 한 노인이 자기 몸보다 큰 보드를 질질 끌고 바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보드를 들고 걸어가는 모습은 무척 버거워 보였는데, 바다에 들어가선 자유자재로 서핑을 하더라고요. 그때 목표가 생긴 거죠. 진짜 내가 원하고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을 가져보자고. 그게 제겐 서핑이었어요. 막상 용기가 안 나 서핑 숍 입구에서 돌아온 적도 많아요. 자식들도 위험하다고 반대를 했죠.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안 해보고 후회하느니 부딪쳐보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고. 그렇게 서핑을 시작했어요.

Q : 바다가 준 용감함과 유쾌함

A : 바다에 나가기 전날부터 설레요. 파도를 잘 타고 못 타고를 떠나 바다에 오는 자체가 즐겁거든요. 그리고 바다에선 나이에 상관 없이 모두와 친구가 되거든요? 나이를 잊고 젊은 친구들과 한데 어우러져 파도를 타며 좋은 기운도 받고요. 물도 싫어하고 수영도 못했던 사람인데, 서핑을 하면서 물에 빠지는 건 하나도 겁이 안 나요. 큰 파도가 오면 보통 피하기 마련인데, 아무리 큰 파도라도 ‘일단 한번 덤벼보자!’ 하는 생각이 앞서요. 실패를 거듭하다 한번 파도를 타고 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짜릿한데, 그 기억으로 며칠을 살아요.

Q : 서핑의 매력

A : 파도를 딱 잡아탔을 때 느끼는 그 기분!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에요.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 바다에 자꾸 들어가게 되죠.

Q : 바다에서 배운 가치

A : 파도는 인생 같아요. 큰 파도, 그러니까 인생의 큰 고난이 왔을 때 뒤로 물러설 순 없잖아요. 부딪쳐야지. 70년 동안 살면서 얼마나 크고 작은 파도들이 있었겠어요. 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사람이거든.(웃음) 서핑하면서 인생을 담대하게 대하는 태도를 배우죠.

Q : 나에게 ‘바다’란

A : 안식처. 서핑을 하지 않거나 슬픈 날에도 나와 바다에게 하소연도 하며 위로를 받죠. 내게 바다는 엄마가 있는 고향처럼 푸근하고 편한 안식처예요.

Q : 서퍼를 꿈꾸는 여성에게 전하고 싶은 말

A : 일단 부딪쳐보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나처럼 부딪쳐보고 그때 가서 포기해도 늦지 않아요. 적어도 ‘그때 해볼걸’ 하는 후회는 안 생기잖아요. 이 나이에도 이렇게 파도를 타는 나를 보면서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얻길 바라요.

이유나 - 해양쓰레기 연구가

Q : 나는

A : 국내 유일 해양쓰레기 전문 민간 독립 연구소 (사)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OSEAN)의 국제협력팀장이자, 해양쓰레기 수거 봉사 단체인 해양 환경보호단 ‘레디’의 대표.

Q : 해양쓰레기 연구가의 업무

A : 해양쓰레기에 집중해 다양한 연구와 캠페인, 정책 개발 등을 하고 있어요. 현재 가장 중요한 업무는 첫 번째로, ‘필리핀 마닐라만 해양쓰레기 관리역량 강화’ 사업이에요. 세계적으로도 해양쓰레기 오염도가 높은 마닐라만의 쓰레기 모니터링 조사, 데이터 관리, 쓰레기 수거 교육 등을 진행하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시민사회 참관인으로서 국제 플라스틱 협약에 대응하는 일이에요. 인류가 직면한 위기 중 하나인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하려는 UN 국가들 간의 협약인데, 환경 부문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국제 협약이 될 거라고 전망하고 있어요.

Q : 바다가 준 용감함과 유쾌함

A : 바다 앞에선 언제나 겸손해야 된다는 다짐을 하지만, 그럼에도 용감해지는 순간은 입수할 길이 없어 절벽에서 뛰어내린다든가, 황소상어 떼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일이 생길 때예요. 하지만 무엇보다 해양쓰레기라는 거대한 문제, 전 지구적 위기와 싸워보자는 다짐을 한 게 가장 큰 용기였죠.

Q : 바다와 함께한 잊지 못하는 순간

A : 바닷속에서 우연히 돌고래 떼를 만나 함께 유영하다 유난히 호기심 많은 녀석과 눈을 마주쳤을 때, 푸른 들판처럼 펼쳐진 초록 수초가 햇빛을 받아 빛나는 모습을 볼 때, 야간 다이빙을 하다 문득 하늘을 보면 일렁이는 보름달이 환하게 비출 때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런가 하면 물 반 쓰레기 반인 바닷속에 있을 때, 모래사장으로 착각이 들 만큼 수많은 스티로폼 조각을 볼 때 이러다 인류가 끝날 것만 같은 공포심이 들기도 합니다. 상반되지만 모두 잊지 못하는 순간이에요.

Q : 바다에서 배운 가치

A : 다양성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 맹그로브숲의 새까만 바다, 에메랄드, 노랗고 빨간 바다 등 겉에서만 보아도 너무나 다채로운데 그 속에는 더 많은 모습이 있죠. 절벽과 산, 동굴, 잔디밭, 분출구 등 우리가 육지에서 볼 수 있는 지형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플랑크톤부터 지구상 가장 큰 대왕고래까지, 220만 종의 해양생물이 살고 있죠. 우리가 진정한 의미로 ‘자연스러움’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건, 바다처럼 다양성이 가득한 세상을 바라볼 때가 아닐까요?

Q : 나에게 ‘바다’란

A : 알면 알수록 깊이를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지고,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니까 지키고 싶은 일터이자 쉼터.

김승주 - 항해사

Q : 나는

A :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 온 바다를 누비며 화물을 안전하게 운반하는 항해사.

Q : 항해사의 업무

A : 항해사는 선박, 선원, 화물의 안전을 모두 담당하는 사람이에요. 배는 24시간 쉬지 않고 운항하기 때문에 하루에 두 번 당직을 하며 선원들과 어디를 정비할지 체크하고, 갑판 정비조의 일을 감독하죠.

Q : 바다가 준 용감함과 유쾌함

A : 9년째 항해사로 일하고 있지만, 바다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존재예요. 특히 태풍이 예고된 바다 주위를 항해할 때요. 배가 좌우로 흔들리고 30도 이상 기울 땐 어딘가 붙잡고 있지 않으면 튕겨져 나갈 정도로 위험해 배가 넘어갈 수 있겠다는 공포감에 휩싸여요. 그때 선원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손잡이를 붙들고 기도하는 거예요. 이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게 해달라고요.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며 눈부신 햇살을 보여줘요. 그때 깨달았어요. ‘인간이 간절히 원하면 바다는 우리의 앞길을 흔들지언정 막아서진 않는구나.’ 덕분에 어떤 파도와 시련이 오더라도 견딜 수 있는 배짱을 갖게 됐죠.

Q : 바다에서 배운 가치

A :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이 계속 바뀌는 바다 환경 덕분에 유연함을 배우게 됐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감정을 소모하며 스트레스받는 게 불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Q : 항해사로서 느끼는 보람

A :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국내 총물동량의 99% 이상이 해운 무역으로 이뤄져요. 전 해운 무역의 최전선에서 역군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면 물자 수송이라는 막중한 임무도 수행하고요. 항해사가 얼마나 자부심을 갖게 하는 일인지 새삼 깨닫곤 하죠. 다른 이가 나로 인해 미소를 짓고 행복해할 때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어요. 제가 운반하는 화물을 받고 기뻐할 사람들의 표정을 생각하면 행복 배달부가 된 느낌이죠.

Q : 나에게 ‘바다’란

A : 제2의 어머니. 바다는 저를 성장하게 해준 존재예요. 바다를 몰랐다면 영원히 철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인생에 파도와 시련이 찾아왔을 때 인내하고 의연하게 넘기며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는 방법 모두 바다가 알려준 것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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