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의 영국 노동당 정부...세금 늘리고 미국·EU와 관계 재설정할까

백일현 2024. 7. 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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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총선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노동당 당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영국 총선으로 14년 만에 노동당 정부가 탄생하게 되면서 영국의 대내외 정책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정권 심판론과 중도화 전략으로 선거에서 표심을 잡은 만큼 경제성장과 공공서비스 개선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증세 카드를 뽑아들지, 미국·유럽연합(EU)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관심사다.


영국 부자는 자산 파는 중…‘부자 증세’ 할까


선거 기간 노동당은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5년 내 150만 채 건설, 국민보건서비스(NHS) 진료 예약 매주 4만 건 추가를 통한 대기시간 감축, 공립학교 교사 6500명 신규 채용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재정 압박으로 공약 이행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영국 정부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101%인 2조7000억 파운드(약 4760조원), 재정적자는 GDP의 6%인 408억 파운드(72조원)에 달한다.

이에 증세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노동당은 개인 소득세와 국민보험(NI) 요율, 부가가치세, 법인세 동결을 약속했기에 이 밖에 자본소득세(CGT), 상속증여세 등 ‘부자 증세’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3일 영국 자산가들이 노동당 집권에 대비해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을 팔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율이 오를 것을 대비해 미리 처분한다는 것이다.

선거 기간 리시 수낵 총리도 “노동당은 여러분의 세금을 2000파운드 올릴 것이다. 그게 그들의 DNA에 있다”며 공격하자,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허튼소리”라고 받아친 바 있다.

영국 싱크탱크 재정연구소(IFS)는 지난달 말 "노동당과 보수당 모두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공약을 내세웠다"며 누가 집권하든 세금을 올리거나, 정부 부채를 늘리거나, 공공 서비스 예산을 깎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4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진행된 총선 TV토론에서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와 보수당의 리시 수낵 총리가 토론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보수당의 난민 정책 폐기, 국방 예산 증액


노동당은 인권 침해 논란을 일으킨 보수당의 르완다로의 난민 이송 정책도 폐기할 예정이다. 다만 영국해협을 통해 건너오는 불법 이주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경안보본부를 신설해 현 국경수비대와 국내정보국(MI5), 국가범죄청(NCA)과 함께 밀입국 범죄 조직을 단속하겠다고 공언했다.

노동당은 약점으로 꼽혔던 안보 공약도 강화했다. 정책공약집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영국의 핵 억지력에 대한 흔들림 없는 헌신’이란 구절이 들어갔다.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으로 가능한 빨리 끌어올리겠다고도 공약했다.

우크라이나 지원도 흔들림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노동당은 러시아 동결 자산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써야 한다는 서방 국가들의 의견에도 찬성한다.

지난 2월 영국 남서부의 군대 캠프에서 영국군의 지휘 아래 우크라이나 신병들이 시가지 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랑스·독일과 관계 재건”…대미 관계 불확실성


보수당과 차별화한 외교 정책은 EU와의 관계 강화다. 노동당은 국민투표로 결정된 브렉시트를 되돌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새로운 ‘영·EU 안보 협정’을 체결하고 프랑스, 독일과 관계를 재건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검역 등 수출입에 타격을 주는 무역 관계도 재설정하겠다는 계획이다.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선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해 진보 세력에게 비판받았다. 하지만 공약집엔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넣었다.

미국과의 관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 가능성과 맞물려 불확실성을 노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영국 노동당 외교정책 책임자인 데이비드 래미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와 친분이 깊다”며 이를 스타머 정부의 대미 관계에서 불확실성 요소로 꼽았다.

한편 로버트 포드 맨체스터대 교수는 NYT에 “노동당은 (보수당의) 잿더미 유산을 물려받게 된 상황”이라며 “유권자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변화를 가져오라, 그렇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5월 영국 노동당의 그림자 외무장관 데이비드 래미(오른쪽)와 그림자 국방장관 존 힐리(왼쪽)가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부차 마을에서 러시아군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시설을 방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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