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 표지석 하나 더?… “인증샷 쉽게” “의미 퇴색”

김민경 2024. 7. 5. 14: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라산을 등반한 등산객들이 정상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 선 모습.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누리집 캡처


한라산 정상에서 ‘인증샷’(기념사진)을 더 빨리 찍을 수 있도록 백록담 표지석을 추가로 설치해달라는 민원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7일 제주도청 누리집 신문고 ‘제주자치도에 바란다’에는 “한라산 정상석 인증 위해 1시간 줄 서기”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한라산이 좋아 자주 오르는데 정상석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1~2시간 동안 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본다”며 “표지석을 추가 설치하면 불편함이 많이 개선될 것 같다”고 건의했다.

지난 5월 27일에도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누리집 ‘제안합니다’에 백록담 표지석 추가 설치를 건의하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며칠 전 백록담에 올랐는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며 “족히 6~70m 돼 보이더라”고 적었다.

작성자가 첨부한 사진에는 한라산 정상부에 등산객이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담겼다. 그는 “4~5시간 힘들게 올라와서 사진을 찍기 위해 뙤약볕에 1시간 정도를 기다리는 불편은 견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백록담 표지석을 여러 형태로 더 만들면 이 많은 사람이 줄을 서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표지석 추가 설치를 건의했다.

한라산 정상에 있는 표지석. 문정임 기자


시민들 의견은 갈렸다. 민원에 동의하는 이들은 표지석 추가 설치가 장시간 대기 문제를 해소하면서 안전사고 위험까지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시민은 “인증샷을 찍기 위해 몰려 있다가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동일한 형태의 표지석을 추가 설치해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가 설치에 반대하는 이들은 ‘정상’이 가지는 의미를 강조한다. 지난해 2월 한라산을 등반한 장성연(26)씨는 “표지석 추가 설치는 불필요한 비용 문제도 생길뿐더러 오히려 ‘원조’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 대기현상이 해소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40분을 기다렸다고 한다.

장씨는 “(표지석 추가 설치보다는) 정상 부근 여러 곳에 포토존을 안내해 방문객이 다양한 위치에서 빨리 찍고 빨리 빠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지혜(26)씨는 “정상석은 자신이 등반한 산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라며 “정상석이 여러 개가 되면 그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는 것이 고통스럽다면 남들보다 빨리 움직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신씨는 지난해 3월 한라산 정상에서 40분을 기다려 사진을 찍었다.

2021년 겨울 두 차례 한라산에 올랐다는 박지민(27)씨는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의 즐거움을 강조했다. 박씨는 “한라산 정상 등반 당시 사진을 찍기 위해 1시간을 대기했지만 전혀 힘들거나 괴롭지 않았다”며 “경치를 감상하며 자력으로 정상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하니 대기시간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표지석을 없애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표지석을 없애면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이 모두 분산될 것이라는 논리다. 비용 문제로 여러 개를 만드느니 원래 있던 한 개를 아예 없애 버리는 게 효율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한라산'과 '백록담'을 검색했을 때 뜨는 게시글 수. 인스타그램 캡처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측은 한라산 정상이 갖는 상징성과 특수성을 고려할 때 추가 설치와 철거 모두 어렵다는 입장이다. 관리소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표지석을 추가 설치하면 상징성이 퇴색되며 철거하더라도 상징성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백록담 표지석도 원래 정상석은 아니다”라며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증샷을 올리기 위해 찍었던 게 점차 ‘SNS용 명소’가 된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라산에서 가장 높은 곳은 서북벽 정상부이지만 현재는 탐방로가 폐쇄돼 출입할 수 없다.

이 관계자는 “등반객들이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정상’이 갖는 의미를 간직하고 본인의 성취감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라며 “표지석을 추가로 설치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원 표지석에 가서 사진을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라산 등정인정서를 받기 위해서라면 꼭 표지석 인증샷을 남기지 않아도 된다. 표지목이나 백록담 등 한라산 정상에서 찍었다는 점만 확인할 수 있으면 등정 사실을 인정해준다고 관리소는 설명했다.

관리소 관계자는 “등정인증서는 한라산 정상에서 찍힌 GPS 기록을 바탕으로 신청 가능하지만 날씨나 휴대전화 결함 등의 문제로 따로 사진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관리소는 인증샷 대기현상이 계속 이어지는 만큼 대안책을 고안할 방침이다.

제주 대표 관광명소인 한라산은 높이 1947m로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올해 1~5월 42만4000명이 한라산을 찾았다. 이 가운데 14만5900명이 백록담에 올랐다.

김민경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