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식물원에 와서 쓰는 동물원 시

2024. 7. 5. 13:3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략)

동그란 식탁에 모인 동그란 얼굴
동그란 컵에 담아 마시는
동그란 웃음

태어난 자리에서 죽은 나무가
밑동만 남겨진 채 잘려 나가는 걸 볼 때
동그란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식물도 특별히 살고 싶은 곳이 있을까?
한여름에 얼음을 껴안고 있는 펭귄은 남극을 기억할까?

…(중략)

시간이 원을 좋아해서
시계가 둥근 것이 아니듯
세상엔 좀 더 많은 모양이 필요하고

휴일에 찾은 식물원은 문을 닫았다

식물도 깊은 잠이 필요하니까
잠자는 나무를 따라 눈을 감았다 뜨면

하늘에 새들이 피어 있었다
횡단보도가 얼룩말인 척 누워 있었다
침대에 심어 놓은 인간이 뿌리로 걸어 다녔다

-임지은 시집 ‘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에서

동그라미는 처음과 끝이 하나다. 동그라미 안에서는 모순도 없다. 그래서 엉뚱하기도 하다. 새들이 피어 있고, 횡단보도가 얼룩말인 척 누워 있고, 침대에 심어 놓은 인간이 뿌리로 걸어 다녀도,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다.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