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없는 홍콩… 자본가들의 천국이 될 수 있었다

맹경환 2024. 7. 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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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크랙업 캐피털리즘
퀸 슬로보디언 지음, 김승우 옮김
아르테, 476쪽, 3만6000원
홍콩의 눈부신 발전 이면에는 민주주의 부재가 숨어 있다. 2019년 6월 범죄인인도법안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가 밤샘 시위를 마친 뒤 홍콩 입법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AP뉴시스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파헤친 전작 ‘글로벌리스트’로 주목 받은 저자가 완벽한 시장을 찾으려는 시장급진주의자들이 주권국가의 간섭과 민주주의의 압력에서 벗어나 자본의 탈출구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추적한 ‘크랙업 캐피털리즘’으로 돌아왔다.

크랙업(crack-up)은 작은 구멍을 내서 결국 붕괴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급진주의자들은 세계 곳곳에 경제특구(special economic zone)나 수출가공구(export processing zone)와 같은 구역(zone)이라는 구멍을 내고 있다. 이들 구멍은 경제적 필요와 자본의 요구에 따라 국가 규제나 민주적 절차에서 예외적으로 벗어나 있는 공간이다. 구역이 속한 국가의 법률이나 규제에서 벗어나 세금이 적거나 없고, 고용과 해고가 자유롭고, 규제가 없고, 민주주의 또한 없다. 현재 전 세계 5400개가량의 이 특별한 구멍들은 사회구조를 내부에서부터 갉아먹고 있다.


미국 보스턴대학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민주적 감독을 받지 않는 자본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시장급진주의자들의 역사를 파헤친다. 홍콩에서 시작해 싱가포르 두바이 등 시장급진주의자들이 자본의 완벽한 자유를 찾아가는 굵직한 여정을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함께 발전한다는 오래된 관념은 무참히 깨져버린다.

민주주의 없는 자본주의의 원형이자 시조는 홍콩이다. 1842년 난징조약으로 중국으로부터 홍콩의 모든 권한을 빼앗은 영국은 홍콩을 인도의 아편을 중국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관세 없는 자유항으로 만들었다. 이후 제조업 생산지에서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한 홍콩의 성공 뒤에는 민주주의의 부재가 있었다. 어떤 노조나 대중선거도 존재하지 않았고 낮은 세금과 무관세 정책이 유지되면서 자본가들의 천국이 됐다. 중국 반환 이후에도 홍콩은 정치적 자유보다 경제적 자유가 우선시 됐고, 이러한 홍콩 모델은 선전 특별경제구역을 시작으로 중국 곳곳에 확대되고 있다.

‘유교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싱가포르의 성장에도 민주주의의 부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 초대총리는 국가는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가족의 집합이지 서양처럼 원자화된 개인의 집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한 나라가 발전하려면 민주주의보다 규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리콴유라는 지도자 한 명이 1959년부터 1991년까지 한 국가를 이끄는 동안 싱가포르에 시위의 자유는 없었고 언론은 정기적으로 허가증을 받아야 했다. 싱가포르 경제를 지탱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싱가포르 시민에게 주어지는 어떠한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언제든 해고되고 추방되는 신세였다.

현재 전 세계의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는 두바이의 성공 비결을 저자는 권위주의라고 진단한다. 그는 “두바이는 민주주의 없는 자본주의의 연구 사례”라며 “2000년대 초 이곳은 보통선거, 표현의 자유 및 비 시민의 권리 보호가 없었고 더불어 강제노동과 경찰력의 자의적 사용 때문에 전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덜 자유로운 장소 중 하나였다”고 설명한다. ‘주식회사 두바이’ ‘소득세와 노동조합, 야당이 존재하지 않는 자유 기업의 오아시스’ ‘자유 방임과 경직된 권위주의의 역설적 결합’ 등 두바이를 설명하는 다양한 표현을 인용한다.

두바이와 싱가포르처럼 비민주적인 국가들이 투자자들과 관광객에게 더 큰 인기를 끄는 것에, 씁쓸하지만 저자가 찾은 중요한 교훈이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자본주의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은 민주적 자유라는 추상적 문제와 거의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시장급진주의자들에게 구역이란 “단지 경제적 목표를 위한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지구적 차원의 정치 전체를 재조직하려는 열망이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장급진주의자들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을까. 홍콩에서 시작한 저자는 다시 민주주의와 자결권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던 2019년 홍콩으로 돌아온다. 당시 시위대는 경찰의 잔혹한 진압에 맞서 발 빠르게 시위 형태를 바꾸며 이소룡의 명언 ‘물이 되어라’를 외치며 1만6000발에 달하는 최루탄에 맞섰다.

저자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물이 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알게 될 것”이라는 아리송한 결론을 내린다. 물은 언제든 형태를 바꾸며 그들이 낸 구멍을 메울 수가 있다. 우선 물이 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고, 그리고 나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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