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디 "주권·영토 존중해야"…'시진핑의 일대일로'에 사실상 반발

이도성 2024. 7. 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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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AFP=연합뉴스


중국과 러시아가 주축이 된 안보협력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에 사실상 반발하고 나섰다. 회의에 참석하는 대신 외교장관을 보내는 등 중국과의 관계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

5일 힌두스탄타임스 등 인도 매체들에 따르면 모디 총리는 전날 연설문을 통해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존중은 연결성과 인프라 프로젝트에 필수적”이라면서 “SCO는 진지하게 이러한 측면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발언 배경에는 일대일로 핵심 사업인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프로젝트가 있다고 매체들은 지적했다. 인도가 파키스칸과 분쟁 중인 카슈미르 북부 길지트-발티스탄이 이 프로젝트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길지트-발티스탄 지역은 현재 파키스탄이 점령하고 있다.

4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상하이 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AP=연합뉴스


모디 총리는 이날 ‘앙숙’ 파키스탄을 직접 겨냥한 발언도 내놨다. 그는 연설문에서 “테러리스트를 숨기고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며 테러리즘을 묵인하는 국가를 고립시키고 폭로해야 한다”며 “국경을 넘은 테러에는 물론 테러 자금 조달에도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령 카슈미르에선 이슬람 반군 테러가 자주 발생하는데, 인도는 그 배후로 파키스탄을 지목해왔다.

모디 총리는 이번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채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이 대독하는 방식으로 연설문을 발표했다. SCO 정상회의 참석차 카자흐스탄 아스타나를 찾은 시 주석 면전에서 반기를 든 모양새가 됐다.

2022년 9월 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모디 총리가 3선 성공 이후 처음 열리는 국회 회기를 핑계로 SCO 정상회의에 불참했다면서 이는 인도와 중국 사이에 풀리지 않는 긴장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오는 8일부터 이틀간 이뤄지는 모디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만남도 그 근거로 들었다. 러시아와의 거리를 좁히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조절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모디 총리는 지난해에도 의장국으로서 화상 SCO 정상회의를 주재한 뒤 일대일로 구상 지지 공동선언문에 이름을 넣지 않으면서 중국과 대립각을 세웠다. 전통적으로 비동맹·다자 외교를 표방해온 인도는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등 서방과의 접촉면을 늘리고 있다.

인도-중국 국경 지대의 중국군(왼쪽)과 인도군. [AFP=연합뉴스]


양국은 해묵은 국경 분쟁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해왔다. 히말라야 산맥에 걸쳐 수천 km를 맞대고 있는 중국과 인도는 접경지대인 카슈미르에서 1960년대 전쟁을 치른 이후 군사적 긴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2020년 카슈미르 라다크의 갈완 계곡에선 인도군과 중국군이 쇠못이 박힌 몽둥이, 돌멩이 등을 들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맨주먹 혈투’가 벌어져 양국 관계가 급격히 냉각됐다. 이 사건으로 인도군 최소 20명이 숨지면서 인도에선 반중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흥분한 인도 군중은 중국제 스마트폰을 부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상화를 짓밟았다. 2022년에도 인도 동부 아루나찰 프라데시주 타왕 지역에서 양측 군인들이 충돌해 부상자가 발생했다.

4일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가 열린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 X(옛 트위터) 캡처.


다만 양국은 더 이상의 유혈사태는 막기 위해 대화를 이어오고 있다. 자이샨카르 외교장관은 4일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과 회동했다. 두 외교 수장은 양측이 국경 지역의 안정을 약속하고 국경문제에 대한 새로운 협의를 조속히 개최해나가는 데 합의했다.

왕이 부장은 이날 “전략적 관점에서 양국 관계를 바라보고 소통하며 이견을 적절히 처리해야 한다”며 “국경 지역 상황을 적절하게 처리하고 통제하며 다른 한편으로 정상적인 교류를 적극적으로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이샨카르 장관 역시 “이웃 국가인 인도와 중국이 함께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양국 관계 발전은 지역과 세계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베이징=이도성 특파원 lee.dos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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