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사고 나시길"…교통사고 각본 짜고 돈 챙긴 그놈, 보험설계사였다
지난해 9월 13일 오후 서울 양천구의 한 골목을 지나던 A씨(30대·구속)의 BMW 차량이 역주행하는 배달 오토바이와 충돌했다. 차량과 오토바이 모두 서행하고 있어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BMW 차량 우측이 파손됐다. A씨는 배달 기사의 역주행으로 사고가 난 것이라고 주장했고, 오토바이 측 보험사가 차량 수리비 450만원 전액을 부담했다.
단순 교통사고인 줄 알았던 이 사고는 한 보험사가 다른 사건을 경찰에 제보해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기 사건으로 밝혀졌다. 금융거래내역을 조사해보니 A씨가 사고를 낸 배달 기사에게 80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확인 결과 A씨는 이 배달 기사의 보험설계사였다. 배달 기사는 경찰 조사에서 “A씨가 보험금 일부를 주겠다고 해 고의로 교통사고를 냈다”고 털어놨다.
보험설계사가 고객 등과 짜고 보험금 편취…5명 구속
이같은 수법으로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편취한 보험설계사와 고객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혔다. 경기남부경찰청 교통과는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혐의로 A·B씨(20대) 등 보험설계사 14명을 적발해 5명을 구속하고, 9명을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5일 밝혔다. 또 같은 혐의로 이들의 지인과 고객, 자동차 공업사 관계자 등 39명을 불구속 입건해 검찰에 넘겼다.
A씨와 B씨 등은 2020년 6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수도권 일대에서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거나 사고 피해를 과장하는 수법으로 106차례에 걸쳐 6억837만원 상당의 보험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고객에게 깁스 치료 시 보험금이 지급되는 특약에 가입할 것을 권유한 뒤, 실제로 아프지 않거나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아닌데도 통 깁스 치료를 받게 하는 수법으로 50차례에 걸쳐 보험금으로 5870만원을 편취하기도 했다.
적발된 보험 설계사들은 경기 군포시의 한 법인 보험대리점에서 근무하면서 받은 보험금을 고객 등에게 일부 주고 나머지를 사무실 운영비나 채무 변제 등에 개인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대화방에선 “꼭 사고 나시길”
보험사의 제보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해당 대리점의 설계사들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범행이 발생한 사실을 파악했다. 대리점 단체 대화방에서는 “드디어 사고가 났다”, “꼭 사고 나시길” 같은 대화가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보험사기는 선량한 제3자의 보험료 부담을 가중하는 중대 범죄”라며 “허위 사실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단순 피해를 과장하는 행위도 불법으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유념해 달라”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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