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칼럼]인류 생존 위해 'AI 예술' 막아야 하는지도

2024. 7. 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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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예술은 금지돼야 할까?

영국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모든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라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서양철학의 중요 주제와 톤앤매너를 플라톤이 이미 정해주었다는 말이겠다. “정의란 무언인가?”를 자주 질문하던 스승 소크라테스의 영향이었을까? 플라톤은 완벽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상상하는 데 일생을 바친다.

하지만 그가 생각해낸 이상적인 세상은 민주주의도, 자유주의도 아닌 독재 카스트 사회였다. 철학자이자 왕, 그리고 왕이자 철학자인 현자의 통치 아래에 농부는 농부답게, 군인은 군인답게, 그리고 상인은 상인답게 살며 각자 자신의 직업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사회가 가장 정의롭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리고 플라톤은 핵폭탄급 제안을 한다. 이런 완벽한 사회에서는 예술이 반드시 금지되어야 한다고!

고대 그리스 드라마와 미술, 그리고 음악에까지도 풍부한 지식이 있었던 플라톤. 최근 발견된 문서에 따르면 사망 전 그는 노예 소녀가 연주한 음악을 즐겼고, 또 연주가 완벽하지 않았다고 비판까지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예술을 사랑하고 즐겼던 그는 왜 예술가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했을까?

예술은 금지돼야 한다던 플라톤

잘 알려진 대로 플라톤은 우리가 눈, 코, 귀로 인지하는 세상은 실체가 아니라고 믿었다. 대신 우리가 직접 볼 수 없는, '이데아' 세상에만 존재하는 '원본'의 다양한 그림자들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형태나 모습만으로는 전혀 다른 다양한 종의 개들을 우리는 '개'라는 공통된 이름으로 부르고, '2개의 집' '2명의 사람' '2번의 여행' 모두 이데아 세상에만 존재하는 '2'라는완벽한 개념의 다양한 투사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데아라는 개념 자체가 허상이라고 주장하며 실질적 관찰과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인식론을 개발했지만, 우선 플라톤의 생각이 맞는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현실이 이데아의 그림자라면, 논리적으로 더 불완전하고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데아가 명품이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짝퉁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플라톤의 국가론 역시 이해가 된다. 어쩔 수 없이 짝퉁 세상에 태어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사회는 이데아 세상에 가장 근접한, 그러니까 이데아 세상에 대한 비밀을 완벽히 이해한 철학자(플라톤 자신?)가 구상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최고의 정의라는 결론을 낼 수 있겠다.

그리고 또 다른 결론도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예술가들은 현실을 모방한다(미메시스), 하지만 이미 현실이 이데아 세상의 그림자라면 예술가들은 결국 모방을 모방하는, 짝퉁을 또 다른 짝퉁으로 구현하려는 너무나도 한심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플라톤이 예술을 금지하려 했던 진정한 이유는 예술가들의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다. 예술이 너무나도 무서웠기 때문에 플라톤은 금지하려 했다. 왜 예술이 두렵다는 걸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플라톤 자신을 포함한 철학자 역시 신은 아니다. 완벽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플라톤이 원하던, 이데아에 가장 근접한다고 주장하던 유토피아 역시 무한으로 가능한 다양한 그림자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모든 현실은 다 동등한 그림자이자 투사일 뿐이라는 - 어리석은 백성들이 알아서는 절대 안 되는- 이 위험한 사실을 예술가들은 매일 우리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예술은 총이나 칼보다도 더 파괴적인,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행위이다.

'사실'을 보여주기에 무서운 예술

사실 플라톤의 말은 '맞았'다. 그가 원하던 독재 사회의 존재론적인 유일성을 예술은 의심하게 하기에, 독재자들은 반드시 예술을 금지해야 한다. 반대로 주어진 사회적 현실을 의심하고 질문하지 않는 예술은 언제나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는 '싱귤래러티'를 아마도 모두 경험하게 될 21세기,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를 위해 만들어진 지구 질서와 인간의 유일성 역시 질문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예술'이라면, 우리는 어쩌면 기계가 하는 예술, 그리고 예술을 하는 기계를 금지해야 할 수도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인간만을 위한 독재, '인간독재' 사회를 만들어야 할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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