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엉덩이도 때려라"…대법 "여직원 성추행 전 천운농협조합장 제명 정당"

최석진 2024. 7. 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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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원을 여러 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된 농업협동조합장을 제명한 조합의 조치는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판에서는 조합 정관에 규정된 조합원 제명 사유 중 '조합의 신용을 잃게 한 경우'를 조합의 '경제적' 신용을 잃게 한 경우로 제한해서 해석할지가 문제됐는데, 대법원은 반드시 경제적 신용이 아니라 조합의 일반적인 신용을 훼손한 경우에도 제명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전남 화순 천운농업협동조합의 전 조합장 박모씨가 조합과 현 조합장 김모씨를 상대로 낸 조합원 제명 무효 확인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1심 (원고 패소) 판결 중 조합에 대한 부분을 취소한다. 원고에 대한 제명결의는 무효임을 확인한다'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제명 결의가 제명 사유 없이 이뤄진 것이어서 무효라고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제명 사유의 객관적 의미에 대한 해석, 징계재량권의 일탈·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라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천운농업협동조합장이었던 박씨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2019년 2월부터 7월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20대 여직원을 위력으로 추행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추행)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씨는 피해 여성의 목과 귀 등을 만지고 엉덩이를 치는 등 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특히 그는 피해자가 항의하자 자신의 엉덩이를 때리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1심을 맡은 광주지법은 2021년 5월 박씨에게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과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과 장애인복지시설에 각 3년간 취업제한명령을 내렸다.

박씨가 항소해 진행된 항소심에서 2심 법원은 박씨가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양형에 참작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형을 낮췄고, 2021년 8월 2심 판결이 확정됐다.

박씨는 2019년 '일신상의 사유'를 들어 조합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조합은 2022년 1월 28일 대의원회의를 개최해 직원 성추행 혐의로 유죄 판결이 확정된 박씨의 제명을 의결했다. 당시 참석 대의원 51명(의장 제외) 중 48명이 투표에 참여했는데, 이 중 37명의 대의원이 박씨의 제명에 찬성표를 던졌다. 박씨의 제명 사유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조합에 손실을 끼치거나 조합의 신용을 잃게 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제명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 박씨는 자신에 대한 제명에 절차적 하자와 실체적 하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애초 의견진술통지를 받을 당시 '조합에 대한 명예실추'로 사유를 고지받았는데, 실제 제명 사유는 이와 달라 제대로 항변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또 자신이 형사사건으로 처벌받았다고 해서 조합의 명예가 훼손되거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거나 조합의 신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이 같은 박씨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조합이 박씨의 제명을 의결한 것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박씨의 주장과 달리 정관에 규정된 '조합의 신용을 잃게 한 경우'를 반드시 조합의 경제적 신용을 잃게 한 경우로 제한해 해석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규정의 문언상 위 제명 사유가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고, 정관의 나머지 부분을 살펴봐도 그와 같이 한정해 해석할 근거가 없으며,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와 용례에 비춰 보아도 그와 같이 한정해 해석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의 관련 형사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로 인한 피고 조합의 이미지 실추 및 그에 따른 피고 조합의 명예훼손은 피고 조합의 손실로 평가할 수 있고, 그로써 피고 조합이 일반 국민에 대한 신용을 잃게 됐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조합장 김씨가 대의원회의에서 실형이 선고된 자신의 1심 재판 결과가 담긴 신문기사를 배포하면서, 2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씨를 상대로 10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기사 내용이 진실한 사실이고 김씨의 행위에 공익 목적이 있어 위법성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재판부는 박씨의 행위가 개인의 비위 행위일 뿐 '조합에 손실을 끼치거나 신용을 잃게 한 경우'라고 볼 수 없고, 여기서 신용은 경제적 신용으로 좁게 해석해야 하므로 제명이 부당하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시 결론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제명 결의가 적법한 사유 없이 이뤄졌다거나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징계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조합의 제명 조치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농협)의 존립 목적은 경제적 이익이나 활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영역을 포함한 조합원들의 지위 향상에 있다"라며 "조합의 존립 및 유지에 필수적인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행위뿐 아니라 이런 목적에 저해되는 행위도 제명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문제가 된 제명 사유를 경제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본 2심 법원의 판단은 잘못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쟁점 조항은 '조합의 신용을 잃게 한 경우'를 제명사유로 정했을 뿐 이를 '경제적 신용'으로 한정하지 않고 있다"라며 "이 사건 정관에는 신용에 대한 정의규정이 없고,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신용은 '사람이나 사물이 틀림없다고 믿어 의심하지 아니함. 또는 그런 믿음성의 정도'를 의미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따라서 원고가 대상 행위를 함으로써 피고의 신용을 잃게 했다면, 피고의 경제적 신용 하락 여부와 관계없이 제명 사유가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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