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소음 심각”…‘오버투어리즘’ 대책은 여전히 두루뭉술 [K-콘텐츠 투어리즘③]

박정선 2024. 7. 5.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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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활성화→교통혼잡·환경오염·소음공해 등 부작용 심각
"모호한 가이드라인 보다 과태료 등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해야"

#전국 최대 규모 한옥촌이 있는 전주 풍남동에 거주하던 A씨(66)는 “현재 한옥마을엔 기존 주민들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옥마을에 국내외 여행객들이 몰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A씨는 “집 담벼락 밑, 하수구 주변엔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버려져 있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노는 여행객들로 조용할 틈이 없었다”며 “이젠 지역민의 생활 지역이라기보다 여행객을 위한 상업 지역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전주 한옥마을 ⓒ뉴시스

콘텐츠 투어리즘(Contents Tourism) 성공 뒤에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따라붙는다. ‘지나치게 많은’이라는 뜻의 ‘오버’(over)와 ‘관광’을 뜻하는 ‘투어리즘’(tourism)의 합성어로, 관광지에 수용 가능한 정도를 넘어서는 관광객의 방문으로 인해 지역주민들의 삶과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이에 따른 교통혼잡, 소음, 환경오염 등의 문제점이 발생한다. 결국엔 지역 주민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러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제주도나 서울 북촌 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 등 주민들의 사생활 침해, 소음공해로 불편이 제기된 대표적인 ‘오버투어리즘’ 발생 지역이다.

오버투어리즘은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과잉관광이 심해지면서 이를 막기 위한 반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최근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성수기 특정 날짜엔 도시 방문객에게 5유로(약 7500원)의 입장료를 부과하는 시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도시 진입 자체에 입장료를 부과하면서 “도시를 폐쇄하는 게 아니라 폭발하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라고 루이지 브루그나로 베네치아 시장은 취지를 설명했다.

이 밖에도 필리핀 보라카이는 몰려드는 휴양객들로 섬의 환경이 오염되자 2018년 4월부터 6개월간 섬을 폐쇄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고,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열리는 새해맞이 행사 '볼드롭'에는 100만~200만명의 인파가 몰리지만, 사방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구획화해 인파를 분산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콘텐츠 투어리즘을 통해 2027년까지 ‘관광객 3000만 시대’ 계획을 밝히면서도, 오버투어리즘과 관련된 정책에는 여전히 두루뭉술한 대책뿐이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가 ‘오징어게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인기 콘텐츠 관광지를 포함한 ‘한류위키’를 발표하면서도 오버투어리즘 관련 사업은 한 건도 없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도봉구 백운시장에 마련된 오징어게임 체험관 ⓒ서울 도봉구

결국 해당 관광지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소음, 쓰레기 투기, 사생활 침해 등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마을 곳곳에 경고 문구를 붙이는 등 부작용이 뒤따랐다. 심지어 ‘스토리’가 없는 관광지들은 ‘반짝’ 인기에 그치면서 폐업을 맞은 곳도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서울 도봉구는 ‘오징어게임’으로 유명세를 탄 쌍문동 백운시장에 체험관을 열었지만 관광객이 줄면서 11개월 만에 사라졌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촬영지인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일식집(극중 우영우 아버지의 김밥집)도 셔터를 내렸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이 “오버투어리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광객들을 인구감소지역으로 보내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며 “인기 있는 관광지에는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다. 한국관광공사가 직접 소개한 관광지인 만큼 이에 대한 사후관리와 대책마련을 지자체와 같이 논의하여 관광객과 주민이 함께 가는 관광 방안으로 질적 향상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비판과 문제가 지속됨에 따라 정부도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오버투어리즘에 대해 컨설팅 및 지침(가이드라인)을 제공해 관광객과 주민의 갈등을 최소화할 것”이라며 “지방자치단체, 기업, 주민 등 지역관광 주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계, 참여하는 ‘지역관광 혁신조직’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자체도 대책을 내놓고 있다. 종로구청은 오는 7월 북촌 한옥마을을 특별 관리 구역으로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2018년 관광 허용 시간제를 도입한 데 이어 북촌 일대 관광버스 진입 제한과 특정 시간 이후 관광 시 과태료 부과 등을 검토 중이다. 전주시는 한옥마을로 몰리는 관광객을 인근 호수로 분산하기 위한 ‘케이블카 설치 타당성 조사’를 시작했고, 부산 사하구는 마을 주민을 위한 상생 재원 마련, 차로 확대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가 오버투어리즘을 완벽히 해소하긴 힘들다는 의견도 많다. 한 관광업계 종사자는 “베네치아나 일본 등 다른 나라의 오버투어리즘 관련 조치를 두고 ‘극단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상 강제성이 없으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모호한 가이드라인도 중요하지만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강력한 규칙 적용 그리고 이를 어길 경우 물게 되는 과태료 등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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