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밟았지만 딱딱해… 역주행인지 몰랐다”

신재희,윤예솔,최원준 2024. 7. 5.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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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참사 운전자 피의자 조사
차량 상태 이상 거듭 주장했지만
국과수, 급발진 인정한 전례 없어
운전미숙으로 가닥잡을 가능성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관계자들이 4일 서울 시청역 인근 역주행 사고 현장에서 조사를 마친 뒤 장비 정리를 하고 있다.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하지만 국과수는 급발진 의심 사고 감정에서 차량의 기계적 결함을 인정한 적이 없다. 연합뉴스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의 가해 차량 운전자 차모(68)씨가 4일 첫 경찰 조사에서 “(사고 당시) 역주행인지 몰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차량 상태 이상에 따른 급발진도 거듭 주장했다. 사고 원인을 풀 열쇠로 사고기록장치(EDR) 등이 거론되지만 수사 결론은 운전미숙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서 급발진을 인정한 전례가 없는 데다 급발진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도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수사관을 보내 피의자 차씨를 조사했다. 지난 1일 사고가 발생한 지 3일 만이다. 차씨는 사고 직후 갈비뼈 골절로 후송돼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차씨는 경찰 조사 중 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차씨는 자신의 운전미숙이나 과실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차씨는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딱딱했다”면서 “역주행인지 몰랐다”고 진술했다. 당시 차씨 의도대로 차량이 움직인 게 아니라 차씨 운전 조작과는 무관한 주행이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이같이 진술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앞서 차씨는 사고 직후 동료에게 전화로 급발진을 주장했고, 동승했던 차씨의 아내 역시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경찰에 전한 바 있다. 이번 조사에는 경찰 조사관 4명이 투입됐으며 추가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경찰이 차씨를 상대로 신청한 체포영장은 전날 서울중앙지법에서 기각됐다. 법원은 “출석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있다거나 체포 필요성 단정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체포영장 신청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경찰 안팎에서는 사고 원인이 급발진으로 결론 날 가능성을 작게 보는 분위기다. 급발진 의심 사고 감정은 매년 늘고 있지만, 국과수가 차량의 기계적 결함을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다. 급발진 의심 사고 감정 건수는 2020년과 2021년 각각 57건과 56건으로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다만 2022년엔 76건으로 전년 대비 20건 늘었고 지난해엔 117건으로 치솟았다.

이번 사고 역시 국과수 판단이 이전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0월 70대 운전자 A씨는 중부고속도로 한 휴게소에서 보행 중인 부부를 들이받아 50대 여성을 숨지게 하고 주차된 차량 4대를 들이받아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 당시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경찰은 국과수 분석 결과 등을 근거로 ‘운전 미숙’으로 결론내린 뒤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이미 경찰은 자체적으로 EDR과 블랙박스, CCTV 분석을 마친 것으로 파악됐다. CCTV상에서는 역주행하는 사고 차량의 후방 브레이크등이 켜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속 주행 상황에서 급정거 시 나타나는 ‘스키드마크’도 현장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차씨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거나 약하게 밟아 급제동을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경찰은 “구체적인 수사 내용은 국과수 분석 결과를 최종적으로 본 뒤 밝히겠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EDR 분석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아 급발진 사고를 둘러싼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EDR은 엔진제어장치(ECM)로부터 정보를 받아 기록하는 말단의 수동적 기록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가 코딩된 ECM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말단의 EDR에는 신뢰할 수 없는 정보가 기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EDR을 자동차 제조사의 ‘면죄부’라고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DR 기록 시간이 사고 직전 5초에 불과하다는 것도 한계점으로 꼽힌다. 급발진 구간은 보통 수십 초간 이어지는데, 5초만으로 사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미국은 EDR 데이터량을 현행 5초에서 20초 이상으로 늘리는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신재희 윤예솔 최원준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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