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판결의 핵심열쇠 'EDR'…이 재판부는 "못 믿겠다" 왜

김준영, 김정연 2024. 7. 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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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청역 인근 차량 돌진 참사 원인 규명의 열쇠로는 EDR(Event Data Recorder·사고기록장치)이 꼽힌다. 문자 그대로 사고 5초 전부터 차량운행 속도와 조향각도, 브레이크 작동 여부 등 자동차 운행 데이터를 기록하는 장치다. 경찰은 급발진 여부를 밝히기 위해 가해 차량의 EDR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의뢰했다.

EDR은 재판이 열릴 경우 주요 증거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2015년부터 제조사의 EDR 기록 공개를 의무화했다.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부근에서 한 남성이 몰던 차가 인도로 돌진해 최소 15명 사상자가 발생, 경찰이 사고차량을 수습하고 있다. 뉴스1


그간 법정에선 EDR이 사고 원인을 밝히는 일종의 ‘성경’ 역할을 했다. 중앙지법이 2022년 7월 급발진 주장 운전자(원고) 패소를 선고한 판결문을 보면 EDR은 26차례 언급된다. 운전자는 차량 결함을 이유로 제조사에 7100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초 단위로 기록된 EDR 기록을 판결문에 첨부하며 “EDR 기록상 원고가 가속페달을 밟아 속도가 증가했다”고 했다.

아울러 EDR 오작동 가능성을 주장하는 원고 측 주장에 대해서도 “ACU(에어백 제어 장치)는 ECU(전자제어 장치)로부터 신호를 상시 수신하다가, 이벤트가 발생하면 발생 5초 전까지의 정보를 자동으로 EDR에 기록한다” 등 작동 방식을 서술한 뒤 “이 사건 자동차의 EDR 기록에 문제가 없다”고 썼다. 또 “국과수는 ‘운전자가 제동 페달을 0.5초 이상 밟았으나 EDR에 기록되지 않은 사례는 확인된 바 없다’고 했다”는 점도 논거로 들었다.

2022년 9월 15일 서울중앙지법 29민사부가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의 패소를 선고하며 쓴 판결문.


청주지법이 2022년 7월 급발진 주장 운전자(피고)에 금고 10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형사 재판 역시 EDR이 핵심 증거였다. 재판부는 유죄 이유 셋 중 두 곳에 “EDR 데이터에 의하면, 피고인이 사고 직전 가속페달을 밟을 때 최대한도로 밟았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조향 핸들 각도 등 EDR 기록에 비추어 볼 때, EDR 데이터는 정상적으로 기록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이밖에 각종 급발진 관련 재판에서도 “EDR 분석 결과에 의하면 제동 페달 작동은 전혀 없으므로 급발진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2020년 12월 수원지법), “EDR 분석 결과 차량 가속이 가속페달 조작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 등 종합하면 피고인(운전자)의 과실”(2021년 8월 서울남부지법) 등 EDR은 곳곳에 등장한다.

다만 최근엔 EDR 신뢰성을 의심하는 판례도 일부 생겨나고 있다. 2022년 11월 제주지법은 “EDR 분석상 차량은 ‘계속해서, 일정하게’ 가속페달이 작동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피고인(운전자) 무죄 판결을 내렸다. “만일 조작 실수로 가속되는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운전자가 발을 밟는 페달을 바꾸는 것이 당연하다”며 EDR 기록이 재판부 상식과 맞지 않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검사는 “EDR 분석상, 피고인 과실이 있다”며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4월 “원래 급발진은 ‘불상의 이유’로 급가속 운동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급가속을 유발할 만한 기계적 특이점은 식별되지 않았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더라도 무의미하다”며 기각했다.

김준영ㆍ김정연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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