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같은 5개월, 의료공백 못 참겠다” 애타는 환자들 거리로
“우리는 정부 편도, 의사 편도 아닙니다. 그냥 아플 때 아무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원할 뿐입니다.”
4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환자단체 집회에 참석한 김정애(68)씨의 목이 메었다. 김씨는 선천성 희소 질환인 ‘코넬리아드랑게 증후군’을 앓고 있는 박하은(23)씨의 어머니다. 앞선 투쟁으로 삭발한 상태인 그는 휠체어에 탄 딸과 함께 상경했다. “50년 같은 5개월을 보냈다”면서 “내 딸이 치료도 못 받고 이별할까 봐 두렵다. 의사 선생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의료 공백’ 장기화 속에 환자와 그 가족들이 직접 거리로 나섰다.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한국환자단체연합회·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은 4일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 방지법 제정 환자촉구대회’를 열었다. 주최 측 추산 400여명이 모였다. 몸이 아픈 환자와 보호자가 소속된 환자단체가 이러한 집회를 여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20년간 활동하면서 (환자단체) 집회에 50명 이상 모인 건 처음 봤다. 의료공백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의료공백을 풀지 못 하는 의·정 양측을 함께 비판했다. 안기종 대표는 “환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넉 달 반 동안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둔 극한 대립이 이어졌다. 대한의사협회와 정부는 더 이상 ‘환자를 위해’라고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형병원 교수들이 환자 피해로 직결되는 휴진 대신 진료 현장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회에 참석한 심장질환자 유운식(75)씨는 “의료진이 없어 수술 후 추적 관찰하는 진료가 한 달 넘게 밀리니 불안했다”면서 “의사들은 진료 정상화를 하고, 정부와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을’의 입장에서 최대한 행동을 자제해온 환자단체가 움직이면서 향후 의정갈등 국면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들 단체는 전공의와 의대 교수, 정부, 국회에 3가지 사항을 촉구했다. ▶대형병원들의 무기한 휴진 철회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전공의 수련 환경 획기적 개선 ▶의료인 집단행동 시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를 중단 없이 제공할 수 있는 법률 입법 등이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국회를 방문해 여야에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정종훈·남수현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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