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겪은 세종호텔 잔혹사와 투쟁사

허지희 2024. 7. 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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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리어 900일의 꿈] ③ 내가 쫓겨나서도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된 지 벌써 900일이 넘었다. 정리해고의 근거로 사용되었던 코로나19의 위기도 사라지고 관광객이 넘쳐나지만, 경영자는 복직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명동역 10번 출구에 농성장이 있고 연대자들이 온다. 왜 싸우고 연대하는지, 왜 복직을 해야 하는지 세종호텔 정리해고에 얽힌 문제들을 연재로 드러내고자 한다. <기자말>

[허지희 기자]

▲ 유니폼을 입은 해고 전 조합원들 정리해고를 통보받고 파업에 들어간 조합원들 모습이다.
ⓒ 스튜디오R
 
20년 동안 세종호텔에서 전화교환 일을 했는데, 룸메이드로 발령이 났다. 하지만 난 회사를 그만 두지 않았다. 하는 일이 달라졌을 뿐 월급은 그대로였다. 이후 복수노조가 생기더니 대의원 몇 명의 사인으로 성과연봉제를 통과시켰다.

그 첫 해 나는 연봉의 9%가 삭감되었다. 임금 삭감의 충격은 컸지만 회사를 그민두지 않았다. 임금은 적지만 정규직이니까 난 버틸 수 있었다. 정규직은 하는 일이 더 힘들어져도 연봉이 깎여도 버틸만 한 이유가 되었다.

코로나19로 명동에 관광객이 끊겼다. 세종호텔은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희망퇴직은 신청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두 아이를 가정폭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이혼했을 때 나는 내 일자리를 믿었다. 혼자 벌어 여유롭지 않더라도 세 가족이 먹고 살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종호텔에서 어떤 일이 맡겨져도 28년을 버텨온 이유도 가족이다. 가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1년, 이번에는 희망퇴직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규직도 피해갈 수 없는 정리해고였기 때문이다.

두 개의 노조와 논의도 없이 벽에 붙인 일방적인 해고자 선정기준이 통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준비기간도 주지 않고 경영이 어렵다면서도 외부 용역으로 '외국어 구술시험'에 응하라는 선정기준을 내세웠기에, 인정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교섭위원으로 참가해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면 회사가 부담해야 할 부분을 노동조합이 감당하겠다고 해도 사측은 신청하지 않았다(고용유지지원금은 회사만 신청할 수 있다).

2012년 이후 세종호텔의 월급은 동결됐다. 하지만 자회사의 지분은 늘어갔다. 자회사의 자회사까지 만들며 돈을 긁어모으고 세종호텔만 항상 빚더미인 이상한 구조에서 호텔은 해마다 경영위기라고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세종대 대양학원에서 물러난 주명건은 세종호텔로 온 뒤 정규직이 280명 넘는 세종호텔을 용역업체 비정규 인력으로 채우려고 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강경하게 반대했고, 이후 민주노조가 있음에도 노조가 하나 더 만들어졌다. 복수노조가 된 것이다. 

2012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약속이행을 요구하는 로비 점거 파업이 시작되었고 나도 로비에 앉았다. 파업이 끝나고 업무에 복귀하자 팀장이 여러 차례 '노조 갈아타라! 회사 오래 다니고 싶으면 같은 배를 타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협박을 당하는 것 같은 불쾌함에 노동조합에 가서 이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했고, 그제야 그는 멈추었다. 대신 나는 룸메이드로 강제 전환 배치되었다.

룸메이드로 매주 목요일 호텔 정문에서 열리는 항의 집회에 참여했다. 부당함에 대한 피켓을 들게 되었다. 처음엔 부당한 전환 배치에 대한 원직 복직을! 지금은 부당한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고 있다.

이상한 국가기관의 판단
 
▲ 국가는 어디 있었습니까 국회앞에서 코로나로 정리해고 된 억울함을 기자회견을 통해 알리는 해고자들
ⓒ 비주류사진관
 
해고 당시 이 이상한 해고를 사회가 인정하지 않을 줄 알았다. 왜냐하면 메르스, 사스, 사드배치 때에도 일시적으로 관광객이 줄었다가 다시 회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해고된 2021년 12월은 코로나 기세가 한풀 사그라들던 때라, 타 호텔은 슬슬 뷔페를 여는 등 본격적 영업을 준비하던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최소한 노동위원회는 노동자 편을 들어줄 줄 알았다. 우리 해고의 억울함을 알아줄 줄 알았다. 이상했다. 코로나로 식음료 업장을 폐지해 우리 조합원들에게 휴업 명령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고 한 법이, 지난해 11월엔 그 휴업 명령을 받았던 우리가 정리해고 된 것은 정당하다고 했다. 법은 약자의 편이 아니리는 것을 확인했다.

식음료 업장 없이 객실만 영업한 세종호텔은 4성급에서 떨어져 3성급이 되었다. 한때 세종호텔은 특1급이 된 적도 있는데 정리해고 후 3성급 호텔이 되었다. 3성급 호텔이 되는 동안 코로나는 끝났다. 코로나 때 적막이 흘렀던 명동의 빈 가게들은 다시 외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세종호텔은 2022년과 2023년 코로나 이전보다 더 높은 객실 수입을 올리고 있다. 공개된 감사보고서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노조 조합원들은 거의 해고됐고, 회사는 객실청소업체와 시설유지보수업체 등 용역으로 객실을 관리한다. 정규직은 22명만 남겼다. 체크인 받는 프런트클락이 로비 화장실 청소와 로비 계단 청소를 겸하고 있다. 청소 인력이 부족해 쓰레기 분리장에는 오수가 흐르고 거기에 모기와 파리가 듫끊는다. 야간에 프론트 직원이 1명밖에 없어 고객이 타월이나 휴지를 가져다 달라고 해도 못 가져다 준다. 주차된 차라도 빼주러 나가면 프론트가 빈다. 이런 종류의 업무 공백은 정상적인 호텔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화재 등 긴급한 문제가 생기면 333개 객실을 지키는 프론트 야간근무 1명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인가. 최초의 한식부페로 명성 높았던 은하수 자리는 돈 되는 병원에 임대해 주고 조식이 없으면 등급을 받을 수 없으니 임대업체를 넣어 겨우 3성급을 유지 중이다.

해고자들은 오늘도 공문을 넣는다.

"대화하자!"
"쉐프와 홀직원을 복직시켜 다시 커피숍과 연회장을 열어 호텔을 정상화시키자."

엄마가 호텔리어인 게 자랑스러웠던 아이들은 이제 세종대를 싫어하게 되었다. 엄마를 해고시킨 재단이기 때문이다. 세종대 대양학원 주명건 전 이사장과 주대성 이사는 어서 세종호텔 해고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허지희님은 세종호텔지부 사무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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