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교회 감각

2024. 7. 4. 03: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전능자가 아닙니다. 그런 순진한 믿음은 신화가 돼버린 지 오래입니다. 목사가 신자들의 삶 하나하나 간섭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면 그 즉시 거부감을 일으킵니다. 어떤 이들은 목사라는 직업은 조만간 사라지리라 단언합니다. 요즘처럼 교회와 목사가 욕먹는 현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렇다고 목회직을 폄하하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제가 하고픈 말은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목사가 어떤 일을 하고 신학은 어떤 일에 집중해야 하는가의 과제가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기독교에만 인격적 성숙이나 신학, 묵상 기도, 영웅적 선행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무신론자도 성숙한 인격을 가질 수 있고 교회 안 다녀도 신학적으로 명석하고 분석적인 통찰력을 가질 수 있으며 불교나 신비주의자, 신천지를 비롯한 모든 이단도 영웅적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만 할 수 있는 고유의 것이 있습니다. 목사가 할 일, 신학이 이제라도 집중할 일이 바로 이 고유한 것입니다. 역사가 흐르고 환경이 변해도 든든히 교회를 교회 되게 지켜온 것, 그것을 저는 ‘교회적 감각’(sensus ecclesiae)이라고 부릅니다.

이 감각을 소유한 사람은 교회의 살아있는 가르침에 자신의 뿌리를 두고 믿음이 주는 풍부한 창의성을 삶에서 발휘하며 성령의 은혜로 자신을 표현하고 그 은사를 나눕니다. 교회 감각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교회가 아닌 다른 곳, 심지어 신학교 강의실에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감각은 오직 교회 현장에서 꾸준한 함양을 통해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교회 감각은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에서 얻어지는 결실이며 교회 공동체와 더불어 살면서 지성의 빛과 의지의 시험을 거쳐 차곡차곡 쌓여가는 충실한 신앙의 결실입니다. 이것이 곧 교회 지도자의 진정한 깊이를 보여주는 척도가 됩니다.

목사를 세울 때 우리는 그 사람 내면에 이 감각이 있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신학대학 졸업장이 있는지, 학위는 했는지, 어떤 목사와 친분이 있는지, 성경은 몇 독 했는지, 금식은 얼마나 해 봤는지가 아닙니다. 외모나 대중을 가르칠 능력이나 어떤 유력한 인사와 관계가 있는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조율해 나갈 예언자적 겸허함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매 주일 예배의 의미를 찾으려고 예배와 성찬에 참여하고 진지하게 말씀을 묵상하고 독서 훈련하는 일은 전문적인 신학 연구보다 성직자 훈련에 더 좋은 방법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렇다고 신학 연구의 중요성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단지 신학을 제자리에 놓고 싶을 뿐입니다. 궁극적으로 신학이라는 학문은 그리스도의 진술을 오늘이라는 삶의 자리에 드러내거나 계시 된 진리에 그 진술이 충실한지 검증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신학이 하는 일은 비평의 기능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즉 신학은 믿음을 검증하지만 교회 감각은 그 믿음을 자라게 합니다.

교회 감각을 가진 기독교인 교수가 학생들을 이끌어 목사로 배출할 때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제는 오늘의 신학교 체계와 교과 과정으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교단에서 벌어지는 지도자들의 황당무계한 사건들은 특별히 나쁜 놈들이 벌인 또는 우연히 벌어진 일회성 일탈이나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이런 철면피 목사들의 맹활약은 신학교육 체계와 교회 감각을 충실히 검증하지 않고 목사를 제조해 낸 우리 탓도 큽니다.

기도 묵상 예배라는 기본적이고 고유한 교회 감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2000년 교회 역사에서 교회 공동체를 지탱한 근육입니다. 이 감각의 전수 없는 신학교육은 교회를 병들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권력과 정치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신학대학과 교회가 지금이라도 멈춰 서서 고민해야 합니다.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목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