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정의구현’이라는 착각

조민영 2024. 7. 4.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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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무려 23명의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간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는 누가 봐도 참담한 사고였다.

황망하고 안타까운 사건이었던 만큼 사망한 이들의 사연이 취재를 통해 알려졌다.

이후 그가 무사고 버스기사여서 운전 미숙 가능성이 낮다는 해석이 나왔어도, 노인 운전 자체에 대한 미움을 드러낸 댓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상식을 넘어서는 사건이나 사고를 목격한 사회가 분노와 당혹감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활을 겨누는 마녀사냥은 역사 속에서도 늘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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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영 온라인뉴스부장


지난달 24일 무려 23명의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간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는 누가 봐도 참담한 사고였다. 황망하고 안타까운 사건이었던 만큼 사망한 이들의 사연이 취재를 통해 알려졌다. 사망자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라 신원을 확인하는 것조차 시간이 걸리는 상황 역시 슬픔을 더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온라인을 통해 파악된 반응 중 상당수는 슬픔과는 거리가 멀었다. 숨진 이들 중 17명이 중국 국적을 보유한 ‘중국동포’라는 점이 공격과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중국동포는 조선족이라는 차별 표현 대신 국립국어원에서 제시한 바람직한 표현이라는 설명에도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반감 표시가 이어졌다. 중국인이 나쁜 마음으로 불을 지른 것 아니냐는 식의 근거 없고 명백한 혐오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댓글에선 ‘십수명의 생명’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불과 1주일 뒤인 지난 1일 서울 시청역 주변에서 벌어진 교통사고 소식 뒤에도 혐오의 언어는 난무하고 있다. 역주행으로 인도에 돌진한 차량에 9명이 숨진 만큼 온갖 추론이 등장했는데, 첫 공격 대상은 68세라는 운전자의 나이였다. 처음에는 ‘70대 운전자’로 알려졌다가 68세로 정정됐지만, 어쨌거나 고령 운전자라는 점이 타깃이 됐다. 이후 그가 무사고 버스기사여서 운전 미숙 가능성이 낮다는 해석이 나왔어도, 노인 운전 자체에 대한 미움을 드러낸 댓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운전자 책임에 대한 분노로 여겨진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과격한 젠더 혐오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망자가 모두 남성이라는 점, 가해 차량 동승자였던 부인의 태도 등을 놓고 오간 언어들이 시작이었다.

이런 혐오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상식을 넘어서는 사건이나 사고를 목격한 사회가 분노와 당혹감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활을 겨누는 마녀사냥은 역사 속에서도 늘 존재했다. 다만 지금의 양상이 우려스러운 건 혐오가 놀이처럼 용인되거나 ‘정의 실현’처럼 여겨지는 모습 때문이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갈라치기와 혐오를 바탕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혐오는 더욱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다. 관건은 혐오와 준엄한 꾸짖음, 비판을 구분하는 힘이지만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마침 지난 주말 젠더 혐오가 화두가 된 사건들이 있었다. 하나는 르노코리아의 신차 홍보영상에 남성 혐오의 상징이라는 집게손가락 포즈가 등장한 일이다. 이를 놓고 남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남혐이라는 비난과 신차 계약을 취소하는 등의 실력 행사가 벌어졌다. 회사 측은 해당 포즈를 취한 여직원을 즉각 직무 정지시키고, 공식 사과했다. 과거 게임업계를 휩쓸었던 ‘페미(페미니스트) 축출’ 논란이 또 재현되는 것이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여기에서 혐오를 당한 자는 여성인가 남성인가. 집게손가락이 남혐의 상징이었을 순 있으나, 논란과 비방의 대상과 피해자는 남성이 아니었다. 다른 사건은 가수 임영웅이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서 예능프로그램 촬영을 앞둔 기대감을 표현하며 쓴 표현이 남혐 단어라는 논란이었다.

해당 영상엔 발언을 문제 삼는 비난 댓글이 이어졌지만 논란은 크게 확산되지 않았다. 임영웅의 강한 팬덤이 그를 공격하는 댓글러들에게 “위로받고 가라”고 하는 등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자 공격이 힘을 잃은 것이다. 두 사안은 결국 혐오의 근간에 힘의 논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정당한 비판인 양 내뱉는 언어일지라도 힘 있는 쪽에서 힘이 없는 쪽을 향해 휘두를 때 거침없이 혐오로 확산할 수 있다. 여전히 헷갈린다면 두 가지만 기억하자. 무차별적이고 과격한 말로, 특정 집단을 매도하고 존재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내뱉으면 혐오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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