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브루투스, NYT, 아소 너마저…”

김현기 2024. 7. 4.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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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 논설위원

#1 고대 로마의 황제 시저가 14명의 원로원 의원들의 칼에 찔려 쓰러질 때 내뱉은 말은 “에트 투 브루테(브루투스, 너마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연극 ‘줄리어스 시저’(1599년)에 이 대사가 생생하게 등장하며 정설처럼 굳어졌다. 시저는 처음에는 칼에 찔리면서도 살기 위해 저항했다. 하지만 그토록 아끼고 총애하던 브루투스가 자신을 향해 단검을 빼드는 걸 본 순간 배신감에 부르르 떨며 한탄의 절규를 내뱉는다. 지난달 29일 바이든-트럼프 TV토론 직후 바이든 대통령의 절친, 지지 세력이 가차없이 등 돌리는 것을 보며 ‘브루투스, 너마저…’가 떠올랐다. ‘배신’의 선봉에 선 게 바이든의 든든한 지지 매체였던 뉴욕타임스(NYT). 바이든의 23년 절친인 프리드먼은 “내 생애에 이렇게 가슴 아픈 대선 장면은 없었다”며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사설은 “지금 바이든이 공적 이익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봉사는 재선 도전을 중단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2일에는 “몇 달 전부터 깜빡하고 대화할 때 갈피를 잡지 못하는 횟수가 잦아졌다”고 쐐기를 박았다. NYT의 융단폭격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바이든 입장에선 “뉴욕타임스, 너마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2 일본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재임 1000일을 넘기며 장수 총리의 반열에 올라선 기시다는 자신의 최대 후견인이었던 아소 전 총리, 모테기 자민당 간사장의 ‘배신’에 직면해 있다. 기시다는 3년 전 자민당 총재 선거 때 기시다파·아소파·모테기파 등 3개 파벌의 연합으로 승리했다. 그동안 이 세 명의 파벌 총수 회동에서 사실상 기시다 정부의 모든 정책이 결정됐다. 그런데 기시다가 자민당 파벌 해체를 선언하고 정치자금규정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졌다. 얼마 전에는 아소·모테기가 기시다 총리만 빼고 둘만 별도로 3시간30분 회동하는 장면을 일부러 언론에 공개했다. 45년 진흙탕 일본 정치를 주물러 온 아소의 노회한 배신이다.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기시다로선 믿었던 도끼에 제대로 발등이 찍힌 셈이다. “아소여, 너마저…”다.

#3 우리 정치는 또 어떤가. 오는 23일 열리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프레임은 ‘배신의 정치’로 흐르고 있다. 원희룡 후보는 “한동훈 후보가 자신을 정치 무대로 이끌어준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배신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외친다. 한 후보가 ‘채 상병 특검법’을 들고나온 건 윤 대통령에 대한 배신행위란 주장이다. 실제 대통령실 주변에선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자신들의 분신과도 같던 한 후보의 배신에 더욱 아파하고, 분해 하고, 괘씸해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새어나온다. 하지만 한 후보는 배신의 프레임 자체를 부정한다. 그리고 외친다. “난 대한민국 국민을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돼야 할 가치는 윤석열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고 주장한다.

이 대목에서 다시 오버랩되는 게 시저를 배신한 브루투스, 그리고 ‘친시저’를 사수한 안토니우스의 장례식장 연설 장면이다. 먼저 브루투스가 외친다. “시저의 용맹함과 위대함은 나도 물론 존경하지만, 그는 왕이 되려고 했다. 여러분을 대표해서 이 브루투스가 감행했다.” 그리고 명대사. “나는 시저를 사랑한다. 그러나 로마를 훨씬 더 사랑한다.” 시저 개인보다 더 큰 가치가 로마라는 주장이다. 한동훈의 말과 흡사하다. 이어 안토니우스가 격정의 반박에 나선다. “시저가 브루투스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시저는 가난한 사람들이 울면 따라 울었다. 그 시저를 브루투스가 찔렀다. 그 순간 나도, 로마 시민 여러분도 모두 쓰러지고 만 것이다.” 원희룡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당시 군중은 브루투스가 아닌 안토니우스의 손을 들어줬다. 반전이었다. 오는 23일, 로마의 역사가 반복될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할 것인가.

김현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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