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의 퍼스펙티브] 최상위 학생 모두가 의사 되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2024. 7. 4.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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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의사

얼마 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우리 학교 한국인 신임 교수와 점심식사를 했다. 그의 전공은 재무 이론으로, 고난도 수학을 사용하는 분야다. 그런 그가 수학 문제를 풀다가 막혔을 때 찾는 고교 동창이 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 친구의 직업은 수학과는 관련이 거의 없는 대학병원 의사였다. 수학 천재인 그는 학창시절 수학 올림피아드를 휩쓸었고, 전국 수석에 가까운 수능성적이 아까워서 의대를 진학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이과 학생 중 전국 수석부터 3058등까지 의과대학에 진학한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내년부터는 의대 정원이 1509명이 늘어난다니, 이제는 수석부터 4567등까지 의과대학에 지원할 것이다.


제도·정책 실패로 인한 의사 소득 증가


의사들이 5월 30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대한의사협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정부 한국 의료 사망선고’ 촛불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쳤다. 연합뉴스
전 세계에 유례없는 극단적인 미스매치다. 대한민국 최상위 학생들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전공을 택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는 2024년 1월 11일자 김현철의 퍼스펙티브 “노동시장 격차 해소가 교육 과열·저출산 해결 열쇠”에서 극단적 의대 쏠림 현상의 원인이 의사와 타 직종 간 평생소득의 지나친 격차에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만이 정해진 은퇴 연령 없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고소득을 영위한다.

1998년 외환위기 이전까진 대한민국 최상위권 학생들의 다수가 공대와 자연대에 진학했다. 이들이 대한민국을 오늘날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한 제조업을 이끌었다. 그런데 지난 20여년 동안 의대 쏠림 현상이 가속화됐다. 의사들이 일하는 병원 산업이 국부 창출의 통로가 되어 대한민국을 도약시킬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병원 산업은 제조업이나 기술 기업에 비해 내수 의존적이고 국부 창출 효과가 낮다. 가령, 의사로서는 국내 환자가 대부분인 상급종합병원이 성취의 최고점이다. 그러나 과학 기술이 상용화되면 세계가 우리의 무대가 되고, 수출이 늘고, 국부가 창출된다. 국가가 경쟁력을 갖고 발전하려면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계에 진학해야 한다. 최상위 학생들 모두가 의사가 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의사와 타 직종 간의 지나친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핵심 관건이라면 그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공대 및 자연계 출신의 수입을 늘리는 것이다. 둘째는 의사의 수입을 줄이는 것이다. 물론 바람직한 고수의 방식은 전자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거대한 고소득 첨단 산업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의대 쏠림으로 이 분야의 인재가 고갈되고 있다. 두 번째 방식도 필요하다. 의사 소득의 증가가 의료 기술 혁신보다는 상당부분 제도와 정책 실패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직군의 수입을 무턱대고 줄이는 일은 하수의 방식이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먼저 의대 증원 확대는 이를 위한 필요조건에 가깝다. 지금까지 의대 증원 논의는 이러한 국가 경제의 큰 그림을 보기보다는, 고령화로 인한 향후 의료 수요 증가 등과 같이 의료 서비스 체계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했다. 로스쿨 제도가 도입돼 변호사 배출 숫자가 2.5배 이상 증가했다. 그 결과 국민의 법률 서비스 접근권이 개선되고, 변호사의 평균 수입은 감소했다. 의료계에도 일정부분 이러한 변화가 필요하다.

의료계는 의대생 수가 한꺼번에 지나치게 늘어나니 의학교육과 추후 의료의 질을 걱정한다. 타당한 지적이다. 그렇기에 2025년 입시에서 1500명 증원은 과한 측면이 있다. 이보다는 500~1000명 사이로 꾸준하게 늘리는 것이 더 나은 접근방법이다.


필수의료 부족, 전공과별 소득격차 탓


모든 의사의 수입이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다. 의사들 간에도 전공별로 소득 격차가 지나치게 커졌다. 그 주범은 실손보험이다. 실손보험 건수는 4000만이 넘는다. 이로 인해 본인부담금이 대폭 줄고,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늘었다. 전 국민 사이에 실손보험 타 먹기 경쟁이 붙었다. 의료 이용이 폭발적으로 늘었으나 상당수는 도덕적 해이에 기반한 불필요한 의료 이용이다. 20년간 정부는 사실상 이를 방기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2024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 결과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는 10명을 모집했지만 지원자는 없었다. 서울대병원은 전공의 17명 정원에 15명, 삼성서울병원은 9명 정원에 7명이 지원했다. 빅5 중에선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만 소아청소년과 정원을 채웠다. 사진은 2023년 12월 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어린이병원의 모습. 뉴스1

의사 수입도 실손보험 이용 가능성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2021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부과, 안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와 같은 인기과의 평균 연봉은 2020년 기준으로 약 3억 8579만원이었다. 반면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와 같은 필수 의료 과목들의 평균 연봉은 약 2억 3396만원이었다. 이 두 그룹 간의 소득 격차는 최근 10년 동안 크게 벌어졌다. 가령 인기 과목들의 수입은 2010년 대비 1.9~2.4배 증가한 반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연봉은 16% 감소했다.

현재 의료 시스템은 의사들이 필수 의료를 기피하고 피부 미용 또는 비보험 진료가 많은 분야를 선호하도록 유도한다. 대한의사협회 분석에 따르면, 미용 성형 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는 약 3만명 정도다. 그러나 피부과와 성형외과 전문의 수는 5000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만 5000명 중 상당수는 필수 의료 전문의이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이유는 정책 실패 때문이다. 실손보험과 비보험 진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필수 의료 분야의 수가를 과감하게 올리지 못했다.


문신·피부미용 다른 전문가에게 허용을


5월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전국 문신사 200여 명이 13~14일 열린 눈썹 문신시술 의료법 위반 여부 관련 국민참여재판을 앞두고 무죄 선고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스1
그렇기에 2024년 3월 11일 자 김현철의 퍼스펙티브 “의료 가성비 악화의 공범…자기부담금 50% 이상으로 올려야”에서 구체적으로 제안한 것처럼 우선 대대적인 실손 보험 개편이 필요하다. 또한 국민 건강에 큰 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면서도 필수의료 분야보다 지나치게 많은 소득을 얻는 분야에 대해 규제를 통해 소득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령 현재 의사만이 할 수 있는 문신은 실제로는 대부분 문신사가 담당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위험 수준의 피부 미용 분야는 별도의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들이 수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며 ‘필수의료 패키지’를 제안했고, 이 내용은 의료개혁 특위에서 논의 중이다. 최근 국회 청문회에서 정부의 의사 정원 확대 정책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필수의료 패키지에는 의사 인력 확충, 의료 전달체계 개선, 지방 의료 투자, 의료사고 부담 완화, 필수의료 보상체계 강화, 실손보험-미용 의료 관리 개선 등이 포함돼 있다. 맞는 방향이나, 선언적 내용일 뿐 아직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

사실 이 내용 대부분은 의료계에서도 주장해온 것들이다. 의료계가 의료개혁 특위에 의사에게 배정된 수가 적다는 이유로 참여를 거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의사단체는 정책의 창이 열린 바로 지금 적극적으로 참여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리고 정책의 최종 결정은 현장 의사들의 의견을 경청하되, 국민 건강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시장의 지나친 격차부터 줄여야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가 3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3월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입구에 교육비 안내문이 게시되었다. 이날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7조1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4.5%(1조2천억원) 증가했다. 연합뉴스
다시 노동 시장의 지나친 격차로 돌아가 보자. 의사 전공별 지나친 격차로 필수의료의 위기를 맞았다. 의사와 이공계 전공자 보수의 지나친 격차로 의대 쏠림 현상 및 과학기술인 부족의 위기를 맞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격차도 나날이 증가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도 해소될 기미가 없다. 극한 경쟁과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로 요약되는 미친 교육의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다.

최근 김성은 세종대 교수와 염민철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교수는 경제학 최고 저널인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American Economic Review)에서 우리나라의 과잉경쟁과 이로 인한 무리한 사교육비 지출이 출산율을 무려 28%나 감소시켰음을 밝혔다. 0.7 수준의 출산율이 1.0이 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노동시장의 지나친 격차가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노동시장에서 대학 간판의 영향이 여전히 크다. 수능 점수의 작은 차이로 인생 전체에 걸쳐 경제적 풍요의 격차가 지나치게 큰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이를 개선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

◇김현철=의사이자 경제학자.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후 의사로 활동하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코넬대 정책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홍콩과기대 경제학과·정책학과에 재직 중이다. 사회실험, 자연실험, 빅데이터를 통해 보건·교육·노동·돌봄 및 복지 정책을 연구한다.

참고문헌
Kim, Seongeun, Michele Tertilt, and Minchul Yum. "Status externalities in education and low birth rates in Korea." American Economic Review 114.6 (2024): 1576-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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