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호의 시선] 검사 탄핵 민주당, ‘물극필반’ 교훈 새겨야

강찬호 2024. 7. 4. 00:2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찬호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이 검사 4명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2일. 이원석 검찰총장은 점심을 물리고 직접 입장문을 작성한 뒤 기자실을 찾아 회견을 열었다. 이례적이다. 그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을 언급했다. “매사 극에 달하면 반드시 원위치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당나라 측천무후가 아들을 대신해 섭정하며 전횡을 일삼자 대신 소안환(蘇安恒)이 “물러나시라”는 상소를 올리며 쓴 말이다. 측천무후는 이 말을 무시하고 황제에 셀프 등극해 폭주를 거듭하다 친위군의 쿠데타로 폐위당했다. 민주당의 검사 탄핵에 ‘물극필반’만큼 어울리는 말도 드물 것이다.

탄핵 칼날을 맞은 엄희준·강백신 검사는 이재명 전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수사를, 박상용 검사는 대북송금 수사를, 김영철 검사는 민주당 돈 봉투 수사를 맡았던 이들이다. 전 세계 어느 법치국가에서 공당이 당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을 탄핵하는가. 입법 횡포를 넘어 헌법질서 근간을 파괴하는 위헌적 책동이다. 오죽하면 진보 신문마저 “입법권 남용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을까.

민주당은 이들이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 때 허위 진술을 강요하고, 김만배·신학림씨의 대선 개입 허위 보도 사건 때 위법한 수색을 했다고 탄핵 이유를 적었다. 하지만 김·신씨는 ‘증거 인멸과 도망 우려’가 인정돼 구속됐고, 신씨는 구속적부심마저 기각됐다. 수사가 위법했다면 법원이 두 번이나 검찰 손 들어주긴 쉽지 않았을 거다. 이 사건을 수사한 ‘죄’로 탄핵 칼날을 맞은 강백신 검사는 조국 재판 실무를 총괄했던 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자신을 통영지청으로 발령내자 하루 10시간씩 버스로 서울~통영을 왕복하며 조국 재판에 참석한 강골이다. 민주당이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탄핵은 도가 지나치다.

‘한명숙’을 탄핵 이유로 든 것도 황당하다. 한명숙이 대법원에서 징역 2년 유죄가 확정된 게 9년 전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뒤집어보려고 했지만, 무위로 끝났다. 한명숙은 노무현 정부 총리를 지낸 친노의 대표다. 이재명 전 대표가 이끄는 지금의 민주당은 노무현 지키기에 그리 열성적이지 않았다. 노무현을 ‘불량품’이라 맹공한 양문석을 4·10 총선에 공천해 금배지를 달게 하지 않았나. 정세균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노무현을 욕보이고 조롱한 자를 후보로 내는 건 당의 정체성 파괴”란 성명까지 냈지만 이 전 대표는 “표현의 자유”라며 양문석을 대놓고 감쌌다. 이런 이 전 대표와 민주당이 뜬금없이 ‘한명숙 구하기’를 들고 나왔으니 어안이 벙벙하다. “탄핵의 진짜 속내는 오직 권력자(이재명)를 지키는 것”이란 이 총장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주당은 김영철 검사에 대해선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특검 당시 장시호씨에 허위 증언을 유도하는 등 ‘뒷거래’ 의혹이 있다고 날을 세웠다. 장씨가 경찰·공수처에서 의혹을 부인하면서 “너무 큰 거짓과 나쁜 말을 지어냈다”는 문자를 김 검사에게 보냈는데도 말이다. 모든 것을 떠나 국정농단 사건을 발판으로 집권한 정당이 그 사건 수사에 조작과 뒷거래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건 자가당착 아닌가.

민주당은 박상용 검사에 대해 “2019년 1월 울산지검 청사에서 검사들이 특활비로 술판을 벌이고 민원인 대기실에서 배변을 본 사건에 연루됐다”며 칼날을 겨눴다. 한데 이 주장을 제기한 이성윤 의원은 그 직후인 2019년 7월부터 근 반 년간 검찰 인사를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낸 이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면 당시 검찰국장으로서 해당 검사를 인사 조처했어야 할 텐데, 그때는 가만있다 왜 인제 와서 문제로 삼는지 의문이다.

검사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민주당도 잘 안다. 그런데도 밀어붙이는 이유는 뻔하다. 우선 해당 검사들이 최소한 몇 달간 직무가 정지돼 이재명 사건 수사와 공판 동력이 떨어지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월급이 기본급만 나오는 데다 변호사 수임비까지 써야 하니 “변호사 개업하고 말지”란 생각이 들게 될 수도 있다. 민주당이 노리는 게 이거다. 검사들의 사기를 꺾어 이재명 사건 수사와 재판을 한없이 공전시키려는 것이다. 한데 현실은 그런 계산대로만 돌아가는 것 같지 않다. 3일 하루에만 현직 검사장·검사 수백명이 탄핵 폭거에 공개 반발하며 화이팅을 다짐했고 검찰동우회와 변호사 단체도 가세했다. 판사들도 민주당이 ‘판사 선출제’ 운운하며 겁박하는 데 격분하며 들끓고 있다고 한다. 판사들 화나게 하면 손해 볼 이는 다름 아닌 이재명 아닌가. 민주당이 ‘물극필반’을 명심하며 폭주를 멈춰야 할 이유다.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