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 고급 아파트 뒤편 죽음의 그림자

이동철 2024. 7. 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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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철의 노동OK] 화성시 산재예방 담당자는 1명뿐... 아리셀 참사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

[이동철 기자]

 동탄역 주변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서울로 들어오기 전 질서정연하게 아파트 건물이 늘어선 신도시를 마주하게 됩니다. 밤중에도 고급 브랜드 아파트 로고가 반짝이는 이곳은 최근 몇 년간 수도권에서 가장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한 경기도 화성시입니다.

부동산 정보사이트('직방') 자료에 따르면 화성시는 2024년 4월 기준 최근 1년간 경기도에서 가장 집값 상승이 가팔랐던 지역 중 하나입니다. 평당 매매가격 상승률에서 1위인 경기도 과천(9.4%)에 이어 화성시는 8.0%로 2위에 올랐습니다. 수도권 최고의 입지를 자랑하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평당 매매가 변동률(5.0%)보다 컸습니다.

과거 화성시는 경기도에 속한 화성군으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 등의 부정적 이미지로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동탄신도시'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2000년 이래 1만여 명에 불과했던 작은 마을 동탄에 택지지구가 만들어지고 2010년대 후반 도시 규모가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동탄 신도시' 인구만 약 40만 명이 넘습니다. '동탄 신도시'를 품고 있는 화성시는 현재 인구 100만을 넘어 특례시 승격을 추진 중입니다. 화성시의 인구 증가는 삼성전자 부품연구센터, 반도체 설비 제조업체인 ASLM등 국내외 굴지의 제조 기업을 비롯해 한미약품과 일동제약 등 반도체·화학·제약 부문의 유명기업들이 화성시에 입주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산업 환경에 더해 2010년대 초부터 국철 1호선을 서동탄까지 연장하고, 동탄을 시점으로 GTX-A 통해 서울 중심지와 경기도 화성을 연결하는 교통 인프라를 정비했습니다. 수도권 서남부의 중심지로 반세권(반도체와 역세권)이라 불리며 동탄의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2023년 본예산 기준 재정자립도 전국 1위, 출생아 수 전국 2위, 평균연령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도시. 인터넷에 화성시를 검색하면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라고 나옵니다.

집값 상승, 기업 도시에 가려진 노동자의 현실
 
 지난달 26일 경기도 화성시 전곡산단 아리셀 공장 인근 공장의 모습. 외국인 18명을 포함해 23명이 사망한 아리셀 공장 참사 이후에도 주변 공장들은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외국인들이었다.
ⓒ 김성욱
 
그러나 경제발전과 주택 가격이 오르는 만큼 노동자들의 산업 재해 위험도 늘어났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도시와 경제 규모가 팽창하는 만큼 노동자의 안전을 챙길 행정이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지난달 24일 화성시에 입주한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에서 일어난 화재로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8명의 노동자가 중경상을 입은 참사로 위험은 현실이 됐습니다.

이번 사건의 일차적 책임은 위험한 업무를 싼값에 비정규직과 노동자들에게 떠넘긴 기업의 탐욕과 이를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한 국가에 있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은 정규직 직원이 50명 남짓인 회사로, 참사 당일 50여 명의 노동자를 외부 인력파견 회사에서 파견받아 화재위험성이 큰 리튬 배터리 제조와 보관 등의 업무를 수행케 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노동시장에서는 외주화라는 이름으로 도급, 파견 등 간접고용 방식이 확산했습니다. 특히 제조업에서는 '사내 하도급'이라고 하여 설비의 수리 등 어렵고, 유해하며 위험성이 높은 작업을 외주기업 비정규직에 떠넘겼습니다.

'아리셀' 대표는 참사 직후인 지난달 25일 기자들 앞에서 희생된 노동자들과의 고용관계에 대해 '근로자 파견'인지 '도급'인지 여부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번 참사를 취재한 <동아일보>의 6월 25일 기사("화성 화재 아리셀, '가짜 도급 계약서' 썼다)나 <오마이뉴스>의 6월 26일 기사("파견․도급"이라던 아리셀 외국인 사망자 '직접고용' 있었다), 및 아리셀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등 위반 여부를 수사 중인 고용노동부의 발표를 종합해 보면 아리셀의 고용 형태는 위장도급에 따른 불법파견이 강하게 의심됩니다.

'아리셀'에 인력을 파견한 회사는 '메이셀'이라는 업체입니다. 그런데 참사로 희생된 노동자들에 대해 형식적 고용관계에 있던 '메이셀'이라는 인력파견 회사 관계자는 다수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자신들이 희생 노동자들에 대해 작업 지시를 한 바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아리셀' 측과 '거짓으로 도급계약서를 작성했고 희생된 노동자들이 소속 회사 관계자인 자기 얼굴도 모른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인력파견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5조 제1항 따라 아리셀과 같은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에는 근로자 파견이 금지됩니다. 더욱이 파견법 제7조 제1항에 근로자 파견 사업을 하려는 자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허가받아야 하는데 '메이셀'은 근로자 파견 사업 허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허가 없는 자에게 근로자를 파견받아 쓴 아리셀의 행위는 경우 '불법파견' 노동자를 사용한 파견법 위반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중간에서 인건비 이윤을 취하는 인력파견 회사와 저렴하게 위험을 외주기업에 떠넘긴 원청기업의 탐욕 속에서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자기 회사 소속인 것처럼 업무에 대해 세세하게 지휘 감독하더니 이제 와서 희생된 노동자에 대해 아무도 사용자 책임이 없다며 우리 노동자가 아니라고 부정합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입니다.

비용으로 취급되는 노동자 안전
 
 지난달 24일 CCTV에 담긴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서의 화재 상황. 오전 10시 30분 3초 1차 폭발 후 42초 만에 현장이 짙은 연기로 가득찼다.
ⓒ 중앙긴급구조통제단, 오마이뉴스
 
자신들이 직접 고용한 정규직 노동자와 달리 불법 파견된 일용직 노동자들은 회사의 구조와 생산시스템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당연히 안전 체계에서도 배제되거나 소홀하게 취급됩니다. 원청회사로서는 그게 다 비용이 들어가는 때문입니다.

참사 당시 CCTV를 통해 드러난 불길이 확산하는 가운데, 당황한 희생자들이 탈출구가 없는 밀폐된 공간으로 대피하는 안타까운 장면은 이를 잘 증명합니다. 원청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화재 등 재해에 대비한 안전교육을 소홀하게 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지요.

경기남부경찰청에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아리셀 근무 노동자들은, '아리셀'로부터 실질적 산업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고 안전교육이 미비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합니다.

그런데도 원청기업 '아리셀'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위험성 평가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되어 3년간 약 580여만 원의 산재보험료를 감면받았다고 합니다. 기업 스스로 위험성을 평가해 평가 인정 신청서를 제출하면 안전보건공단이 심사 후 적합 사업장 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시스템입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에 대한 지적에 노동행정 인력의 한계를 호소합니다. 위험성 평가를 기업 자율에 맡기는 현행 제도의 획기적 개선을 기대하기엔 난망해 보입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 노동자의 안전을 기업과 중앙정부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커집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감시와 개입이 필요합니다. 이는 지자체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이기도 합니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산안법'에는 지방자치단체가 담당 지역 산업 재해 예방을 위한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생겼습니다.

이번 재해가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의 경우 산업 재해에 취약한 상황이었습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1년까지 지난 5년간 화성시의 산업 재해 사망자는 122여 명으로 2위 평택시(77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고 인구 규모가 큰 고양시(63명)의 2배에 육박했습니다.

120여 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산재 예방과 노동 안전 보건 조례를 제정하던 2022년까지 화성시에는 노동정책을 전담하는 독립부서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산업 재해예방과 노동 안전 보건 증진에 관한 조례도 제정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2023년 5월 경기도 산하 기초지자체로는 다소 늦게 산업 재해 예방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그러나 2024년 현재 공식적인 조직도에서 관련 조례에 따라 산재 예방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업무가 분담된 담당 공무원은, '기업투자실 기업지원과' 소속 주무관 1명이 전부입니다.

인구 100만 명에 육박하며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기업체가 입주한 기초지자체에서 빈발하는 산업 재해를 예방하기에는 다소 벅차 보이는 인원입니다. 물론 이는 화성시만의 문제는 아니며 안산시 등의 일부 지자체를 제외한 다수 기초지자체도 같은 실정입니다.

화성시는 이번 화재 참사를 계기로 지난 6월 28일 '화성시 산업 안전본부'를 설치해 시의 주도하에 고위험 기업에 대한 산업 안전 진단 및 안전 관리,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산업 안전 교육 등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뒤늦게나마 지자체가 산안법상의 산재 예방 의무를 다하기 위한 적극적 행정 의지를 보이는 것은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방향은 의문입니다. 화성시는 산업 안전본부를 기업의 진흥을 담당하는 화성 산업진흥원 산하 기구로 설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명근 화성시장은 기업의 자기 규율 예방 체계를 강조했습니다.

이번 화성 화재 참사는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투자를 기업의 자율에 맡겨놓았다 벌어진 사태입니다. 기업 스스로의 자기 규제가 실패한 전형적 사례인 만큼 지역 내 노동단체와 시민단체 등 기업의 탐욕을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는 이해관계자를 포함하여 산재 예방과 노동 안전 보건 증진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화성시에는 22개 산업단지에 약 2만 8천여 제조업 사업장이 들어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제조업 사업장이 있습니다. 반도체 호황으로 생산설비가 증축되며 전국에서 일거리를 찾아 많은 노동자가 몰렸고 이주 노동자 역시 약 2만 4천여 명 규모로 전국에서 가장 많이 일합니다.

화성시는 조직도상 공식적 업무 분장에서 지자체를 홍보하는 홍보담당관실에는 33명의 공무원을 배치하고, 도시디자인과 경관을 계획하는 도시기획단에는 16명의 공무원을 배치했습니다. 또한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지원하는 기업투자실에는 38명의 공무원을 배치해 유수 기업의 유치와 투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노동정책을 전담하는 독립된 부서도 없는 현실과 사뭇 대조적입니다. 기업 친화 도시 구축 노력만큼 노동자의 안전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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