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2도]아우슈비츠 수용소 담장은 붕괴하지 않았다

이종길 2024. 7. 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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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헤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책임자였다.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수용소 담장 너머에 있는 헤스(크리스티안 프리델)의 자택을 조명한다.

정원을 가꾸거나 졸라강(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동쪽 경계를 이룬 강)에서 멱을 감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각종 역사학 연구에 따르면 수용소 군인들은 광신적 증오에 휩싸여 살해에 가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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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함과 혐오감에 사로잡혔던 수용소 책임자
광신적 증오에 휩싸여 살해 가담하지 않아
여전히 많은 사람 사회적 약자 자체를 배제

루돌프 헤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책임자였다. 1940년부터 유대인과 집시, 소련군 포로 등을 학살했다. 그 수는 260만 명에 달했다. 청산 가스로 한꺼번에 수백 명씩 죽였다. 헤스는 사형을 선고받고 쓴 고백록에서 "안도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총살에 관여할 때 여자들과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혹함과 혐오감에 사로잡혔다. 이제는 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보지 않아도 됐다. 나로선 마음이 편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속 루돌프 헤스 가족 저택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수용소 담장 너머에 있는 헤스(크리스티안 프리델)의 자택을 조명한다. 가족들은 수영장이 딸린 집에서 가정부를 두고 여유롭게 산다. 정원을 가꾸거나 졸라강(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동쪽 경계를 이룬 강)에서 멱을 감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헤스의 낯빛은 내내 밝지 않다. 구체적인 이유는 고백록에 나온다.

"집에서 학살이 머리에 자주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뛰쳐나가고 싶었다. 가족의 아늑한 분위기에 젖어 있을 수 없었다. 행복하지 않았다. 나 자신이 불만스러웠다. 기쁘거나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우슈비츠의 모든 사람은 믿고 있었다. 소장은 즐거워하고 있다고."

각종 역사학 연구에 따르면 수용소 군인들은 광신적 증오에 휩싸여 살해에 가담하지 않았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라 유대인을 감금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다 죽음으로 내몰았다.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을 인격을 지닌 존재가 아닌 제조 공정에 던져 넣는 단순한 물건으로 취급한 행태"라고 봤다. 그러면서 "물건이 어떻게 되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정신 구조가 전체주의의 지배를 통해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실제 루돌프 헤스 가족 저택

이는 가해자 자신도 기계의 부품처럼 돼버려 스스로 생각하거나 판단할 수 없음을 함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용소는 인격의 개별성을 말살해 사람들을 수미일관한 세계관을 떠받치는 시스템의 하나로 만들어버린 전체주의의 요소가 응축됐다고 할 수 있다. 아렌트가 전체주의에서 가장 주목한 특징은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인간 본성 자체를 변형하려 한 체계적 계획이었다. 나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은 붕괴했으나 시도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문제를 사유하고 의견을 나누기보다 난민 등 사회적 약자 자체를 배제한다.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순간 '악의 평범성'은 재현된다. 아렌트는 일찍이 경고했다. "사람들에게서 모든 권리를 빼앗는 것과 그들에게서 생명 자체를 빼앗는 것 사이에는 아주 가느다란 경계선만이 존재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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