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모든 정치인의 삶은 실패로 끝난다

고정애 2024. 7. 3.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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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JP(김종필)는 일흔여덟의 나이에 금배지를 떼였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여파 속에 치러진 2004년 총선에서다. 곧 정계 은퇴를 하며 “일찌감치 떠날 수도 있었지만 무언가 세워놓고 떠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고 했다.

대통령만 빼곤 다 이룬 그였지만 종국엔 ‘무언가를 세우기 위해’ 배지를 욕심냈다. 당시 심리를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좀 더 장엄하게 정치와 이별하고 싶었다. (중략) 온 지구를 하루 종일 덥혔던 태양이 서산에 이글거리며 지는 것처럼 그렇게 내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었다. 내일 또다시 떠오를 태양을 기약하며 서해의 붉은 낙조로 빨려 들어가는 햇덩어리가 되길 나는 욕망했다.”(『김종필 증언록』)

그저 ‘한 번 더’가 때론 치명적일 수 있음을 JP는 보여줬다. 멈출 때를 알지 못한 이의 비애다. JP만이 아니었다. 영국의 고전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이넉 파월은 이런 관찰기를 남겼다. “모든 정치인의 삶은 실패로 끝난다(All political lives end in failure). 행복한 시점의 어디에선가 중단되지 않는 한. 그것이 정치와 인간사의 본질이다.”

대서양 양안에서의 주요 선거를 보며 다시 이 말이 떠올랐다. 우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부터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을 막은 것만 해도 노정객으로서 대단한 성취였다. 국정도 안정적으로 운영했다. 더 하겠다는 건 그러나 과욕이었다. 그와 가까운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조차 첫 TV 토론을 보고 울었다고 할 정도로 그는 멀쩡하지 않았다. 한국계 로버트 허 특검이 바이든을 “동정심 많고 선의를 지닌 기억력 나쁜 노인”이라고 표현했던데, 지금 와서 보니 허 특검이 동정심 많고 선의를 지닌 사람이었다.

부인인 질 바이든이 토론회 직후 모임에서 남편을 맞으며 “조, 너무 잘했어요! 당신은 모든 질문에 답했고 모든 팩트를 알고 있었어요!”라고 외친 건 괴이했다. 원래 상당수 대통령 부부는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대통령직을 함께한다고 느끼긴 한다. 질 바이든은 더 나아가 대중 앞에서 남편을 자신의 학생 다루듯 했다. 과연 바이든 부부의 역할 분점은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다. 정상은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CNN 주최 대선 TV토론을 마친 뒤 아내 질 바이든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최근 옹색해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위기를 자초했다. 3년간 치르지 않아도 되는 총선을, 유럽의회 선거에서 졌다고 치르게 되면서다. 아마도 프랑스 특유의 ‘공화국 전선’, 즉 극단주의 정치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좌·우파 정당과 지지자들이 함께해 온 전통에 기대고 싶었을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대통령 마크롱’은 공화국 전선의 약화를 상징한다. 기성 정당(공화당·사회당)이 움츠러든 사이에 중도의 공간을 넓히며 대통령에 당선됐고, 민심이 그에게서 떠나면서 생겨난 권력의 진공을 극우·극좌 성향 정당들이 차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우파에선 국민연합(RN), 좌파에선 ‘불굴의 프랑스(FI)’가 주도한다. 7일 결선투표에서 RN의 과반 확보가 저지될 순 있으나, 중도주의를 꿈꾼 그의 정치적 유산이 극단적 정당들이 좌우하는 지형이 되어버린 건 아이러니다.

4일 총선을 치르는 영국은 그나마 안정적 리더십(노동당)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300년 된 보수당이, 극우정당이 흡수통합하겠다고 호언하는 대상으로 전락한 건 비극이다. 이 역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의 잔재다. 정치적 운이 좋았던 그는 1970년대부터 보수당을 내분에 휩싸이게 해온 유럽연합(EU)에 관한 입장도 자신이 정리할 수 있다고 과신했다. 스코틀랜드 독립을 주민투표로 막았기에 브렉시트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행운의 여신은 그러나 외면했다. 보수당은 그로 인해 지리멸렬해졌다.

요즘 정치판에 한껏 도취한 분들이 많다. 정치에 내재한 위험천만한 비극성도 자각했으면 한다. 겸손해질 수밖에 없을 테니. 참고로 JP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타다 남은 흉한 나뭇등걸”이라고 했다.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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