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걱정의 무게

2024. 7. 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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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을 재발급받았다.

유효기간이 만료된 지 4년이나 지났으니, 정말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임을 실감했다.

온라인에서 같은 여행지를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쓴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여행에 대한 기대만큼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때로는 많은 준비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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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여권을 재발급받았다. 유효기간이 만료된 지 4년이나 지났으니, 정말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임을 실감했다. 온라인에서 같은 여행지를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쓴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여행에 대한 기대만큼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들의 경험담에서 유용한 정보를 얻고 가져갈 물건을 메모했다. 세면도구, 로션, 여벌의 옷, 책, 충전기 외에도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없으면 불편할 것 같은 물건까지 이것저것 적어 나갔다. 염려와 걱정만큼 종이의 여백이 줄어들었다. 이대로라면 보따리 속에 없는 게 없는 만물 보부상이 될 양 싶었다. 짐의 무게는 걱정의 무게라던 어느 여행객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습관처럼 아무 생각 없이 꺼냈던 24인치 캐리어를 다시 팬트리에 집어넣었다.

때로는 많은 준비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이 될 수 있다.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짐보다 마음일 테니. 예상치 못한 사건, 우연한 만남, 이질적인 풍경은 이미 그곳에 있으므로 내가 챙겨갈 건 풍부하게 열린 감각과 느긋한 시간뿐이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에 숨을 고르고 묵혀 있던 긴장과 스트레스가 자연스레 풀어지도록 두어야지.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오감이 새롭게 깨어나는 즐거움을 만끽하리라. 이방인의 신분으로 낯선 세상의 일부가 되어 내가 있던 익숙한 세상을 돌아보리라.

짐이 가벼운 만큼 사소한 불편도 늘어날 테지만 몸은 더없이 자유롭고 담아갈 추억은 넘쳐날 거라 기대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갖고 쌓고 쟁취해야 하는 많은 것들로 인해 어깨와 발걸음이 무겁다 느껴질 때 내가 짊어진 걱정의 무게를 재어보련다. 하루를 마주하는 내 마음이 설렘과 걱정 중 어느 쪽으로 더 자주 기울어지는지 들여다보련다. 이 삶을 여행하며 느끼고 배우고 깨닫는 것들은 무게와 부피가 없는 보배와 같으니, 나는 홀가분하게 등산용 배낭을 꺼냈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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