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두바이 초콜릿과 프루스트의 마들렌

2024. 7. 3.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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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 연구원

빠른 '핫' 콘텐츠에 매료된
세상… 그래도 나만의 경험
느릿하게 말할 여유 있어야

무엇이든 ‘복제’가 참 쉬운 요즘이다. 복제 속도는 빠르고 범위는 무한하다. 어느 날 아침 트렌드를 알려주는 뉴스레터에서 중동 디저트, 특히 ‘두바이 초콜릿’이 인기라는 글을 읽은 지 몇 시간 뒤 백화점 식품관 디저트 코너에서 ‘두바이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을 마주친다. 오래지 않아 국내 편의점이 가성비 버전의 ‘두바이스타일 초콜릿’을 출시할 거란 소식을 접한다. 중동에서 시작된 바이럴이 다음 달, 아니 다음 주에라도 한국 백화점 지하 식품관과 편의점을 점령할 정도로 대세는 빠르게 번진다.

직관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매료되는 현상은 많은 것을 ‘밈(meme)화’한다. 빨리 읽힐수록 더 많은 사람이 보고, 그럴수록 쉽게 밈이 돼 마찰도 저항도 없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간다. 너 나 할 것 없이 그를 참고하고 변주하고 전파한다.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 두바이 초콜릿이, 탕후루 챌린지가 인기인지 해석하기도 전에 새로운 대세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밈을 지배하는 자가 우주를 지배한다’고 말한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밈의 성지!) 인수가 보여주듯,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코드인 밈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넘어 먹고 입고 사는 방식, 즉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순간적 즐거움, 빠른 소멸,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은 동시대의 소비 패턴과 문화의 상징이다.

기호(sign)가 쉽게 복제되면 기호(taste)도 쉽게 복제된다. 바이럴이라는 ‘쉬운’ 검증을 근거로 대세에 ‘쉽게’ 동조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나의 기호를 탐색할 시간을 잃어버리기 ‘쉽다’. 모든 게 ‘참 쉽다’. 어제는 탕후루, 오늘은 크루키, 내일은 두바이 초콜릿으로 바뀌는 대세의 소멸과 탄생 속에서 정작 내가 진짜 좋아했던 디저트 가게는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어느새 나 역시 발 빠른 세계의 흐름에 익숙해져 반쯤 포기한 채 대세를 ‘참조’ 중이다. 지키는 것보단 함께 흘러가는 것이 더 쉬우니까. 어디 가서 “요즘 이게 핫하대”라고 말하는 게 “나는 쑥떡을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쉽게’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니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누구보다 빠르게 두바이 초콜릿을 들여와야 하는 게 시장의 현실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자극적 기호로 웅성이는 세계에는 의미도 깊이도 없음을 안다.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귀를 막고 살 수는 없지만, 모두가 질주하는 도로에서 한발 빠져나와 쉬어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그 쉼의 구간에서 우리가 누려야 할 것은 기술로도 기호로도 복제될 수 없는 고유한 것들이다. 빠르고 강력하게 악취를 제거하는 탈취제의 냄새에 깊이는 없다. 울창한 숲이 내뿜는 향기는 첫 숨에 들이마실 때보다 천천히 호흡할수록 선명하게 느껴진다. 처음엔 흙냄새, 다음엔 오래된 나무의 껍질, 그다음엔 갓 자란 나뭇잎 향기가 코로 들어와 폐를 거쳐 발가락 끝까지 퍼져 뇌를 맑게 한다. 그건 ‘우디향’으로는 복제할 수 없는 시간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입체적 감각이자 호흡이다.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 밈’인 프루스트의 마들렌에는 마법적 힘이 있다. 주인공이 차에 적신 그 노오란 반죽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그의 무의식 속에 스며 있는 기억과 경험이 무려 125만 단어로 세상에 펼쳐진다. 125만 단어 분량의 기억은 그 누구도 재현할 수도 복제할 수도 없는 그만의 고유한 경험과 감수성의 결과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125만 단어를, 어쩌면 그 이상의 단어를 품고 있다. 그 수많은 단어를 모두 펼쳐낼 순 없겠지만, 압축과 코드화에 지친 우리에게 나 자신을 느릿하게 설명할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할 수는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많은 초콜릿을 먹어도 배가 채워지지 않는 깊이의 허기를 느끼는 요즘, ‘두바이 초콜릿’ 대신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우리 삶의 고유함을 다시 일깨워 주는 자신만의 마들렌이 필요한 여름이다.

정유라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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