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셰셰’ 한다고 다 통하겠나

천지우 2024. 7. 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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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 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셰셰'(謝謝·고맙다) 발언은 사대(事大·약자가 강자를 섬김)라고 비판받았지만 내 생각에는 사대가 아니다.

괜히 주변 강국의 신경을 건드려서 척지지 말고 좋게 좋게 지내자는 얘기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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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우 국제부장


지난 총선 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셰셰’(謝謝·고맙다) 발언은 사대(事大·약자가 강자를 섬김)라고 비판받았지만 내 생각에는 사대가 아니다. 괜히 주변 강국의 신경을 건드려서 척지지 말고 좋게 좋게 지내자는 얘기였다고 본다.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그냥 셰셰,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 중국과 대만의 국내 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와 뭔 상관이 있어요. 그냥 우리 잘 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중국과 대만 사이의 문제가 우리와 상관없다는 부분은 명백히 틀렸지만, 센 나라와 쓸데없이 갈등하지 말자는 주장에는 동의하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주변의 센 나라엔 러시아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우리와 별 상관도 없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오지랖 넓게 끼어들어서 러시아와 척지지 말자는 얘기도 가능하다. 그렇게 척지는 바람에 최근 큰 사달이 났다. 러시아와 북한이 냉전 시절의 군사동맹 관계를 사실상 복원했다. 윤석열정부의 무모한 ‘가치 외교, 편향 외교’가 부른 파탄, 엄청난 전략적 패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과적으로 러시아가 한국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북한과 결탁해 우리 안보에 몹시 위협적인 상황이 조성됐으니 정부의 외교 실패인 것은 분명하다.

정부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지난 2년 동안 미국·일본과의 협력 강화에만 ‘올인’하고 중국·러시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 관계가 엉망이 됐다는 것이다. 미·일에 크게 기운 건 맞고, 한반도 안보의 중요 플레이어인 중·러와 멀어진 것도 맞다. 미·일에 들인 공의 반만큼이라도 중·러에 쏟았으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결국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중국에 열심히 ‘셰셰’ 해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국을 찾아온다든가, 러시아에 필사적으로 ‘스파시바(고맙다)’ 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저지한다든가 하는 결과가 과연 나왔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우리의 외교적 노력과 상관없이 중·러는 지금의 전략적 선택을 밀어붙였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미·중이 전략 경쟁을 멈추지 않는 신냉전 시대에 한국의 줄타기 균형 외교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중간 지대는 없고 서방 편에 설 수밖에 없다.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나 인도의 ‘다자동맹 외교’처럼 미·중·러 모두와 균형적인 관계를 맺으며 국익을 챙길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한국은 베트남도 인도도 아니다. 현시점에서 한·미·일 3각 공조를 강화하면서 중·러와도 사이좋게 지내는 건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양립하기 힘든 일이 돼버렸다.

어설픈 가치 외교의 차원뿐 아니라 국민적 의식 차원에서도 지금의 중·러에 호감을 갖고 가깝게 대하기가 힘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많은 한국인이 스스로를 서구인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한다고 본다. 서구와 일본에 한참 뒤처진 동아시아의 일원이 아니라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추구한 일본처럼 스스로를 서구와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서구인의 시각에서 중·러는 비민주적 체제를 비롯해 ‘구린’ 구석이 너무 많다. 서구인 입장에선 사회를 과도하게 통제하고 시대착오적인 침략 전쟁을 벌이는 나라들에 그저 힘이 세다는 이유로 눈치 보고 먼저 고개 수그리고 들어가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다. 물론 사나운 사자가 우리를 해칠까 두려우니 코털도 건드리지 말자는 국민은 여전히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런 ‘셰셰 처신’이 왠지 못마땅한 사람도 분명 많아졌다고 느낀다.

천지우 국제부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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