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시대는 갔다...‘블루칼라’의 역습 [스페셜리포트]
#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 모 씨는 최근 굴착기기능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주위에서는 대기업 사무직 타이틀을 부러워하지만 직급이 높아지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생각이 달라졌다. 김 씨는 “연봉이 적더라도 몸 쓰는 일을 하면 스트레스가 훨씬 덜할 듯싶다. 회사 정년이 얼마 안 남아 눈치가 보이는데,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일자리 시장에서 소외받던 ‘블루칼라(생산직 노동자)’가 재조명받고 있다.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으로 ‘화이트칼라(사무직 노동자)’가 설 자리가 갈수록 사라지는 분위기에 힘입은 결과다.
고소득, 고학력 화이트칼라 직종일수록 AI의 일자리 공습에 취약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에 비해 블루칼라가 수행하는 육체노동 일자리는 AI에 의해 대체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기술이 대체하기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현장직 노동자만 살아남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다수 젊은이들이 현장 노동 도전에 나선다. 실제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현장·생산직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한껏 높아졌다. 저출생,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동력 품귀’ 현상까지 빚어져 블루칼라 몸값은 갈수록 높아지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블루칼라 전성시대’다.
AI 등장에 생산가능인구 품귀 영향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블루칼라에게 노다지가 터졌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블루칼라 일자리를 재조명했다. 영국 교육·출판 기업 피어슨그룹은 미국, 영국, 호주, 브라질, 인도 등 5개국에서 5000개 이상 일자리가 AI에 미칠 영향을 조사한 ‘스킬스 아웃룩’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회계사, 행정비서 등 특정 화이트칼라 업무의 30%는 AI가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관공 등 블루칼라 일자리는 단 1%만 AI가 대체 가능했다.
미국 조사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 자료를 봐도 인간 손길이 필요해 AI로 대체되기 어려운 분야로 고장 수리 서비스(엘리베이터 수리공), 접객 요리, 농업, 헬스케어(보모, 간호사) 등이 꼽혔다. 주로 블루칼라 직종이다. 이에 비해 회계사, 비서, 사서 등 화이트칼라 업무는 AI에 의한 영향이 큰 직종으로 지목됐다. 그만큼 자리 보전이 위태로운 모습이다.
비영리단체 ‘임플로이 아메리카’에 따르면 2022년 3월~2023년 3월 기준 미국에서 직장을 잃은 화이트칼라 실업자는 15만명에 달했다. 마크 주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정리해고를 단행한 후 “직원들이 떠난 자리가 앞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AI 등 새로운 기술이 얼마든지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에서는 이미 블루칼라 직종이 ‘취업하고 싶은 인기 직종’으로 떠올랐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생산, 서비스직 노동자 임금이 가파르게 오른 덕분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 노동부 통계를 분석한 결과 도제식 견습 교육을 받아야 하는 기계공은 시간당 23.32달러(약 3만원), 목수는 시간당 24.71달러(약 3만2000원)를 각각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억대 연봉을 받는 블루칼라 직종도 꽤 많다.
직장 평가 사이트인 글래스도어에 따르면 미국에서 전문(마스터급) 배관공은 연간 수입이 9만348달러(약 1억1700만원)에 달한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석사 학위 소지자 평균 연봉(8만6372달러)을 웃돈다. 배관공 평균 연봉은 6만130달러로 미국 대졸 초임 평균 연봉(5만8862달러)보다도 높다.
고령화로 젊은 노동력이 부족해진 것도 블루칼라 몸값을 높이는 요인이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마다 고령화가 빠르기 진행되면서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했다. 미국의 경우 2030년까지 제조업 분야에서 210만명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전국제조업협회(NAM) 통계). ‘세계의 공장’ 중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생산가능인구가 2015년 9억9800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급감하면서 더 이상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부유한 세계에서 노동자들은 이제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노동력은 점점 희소해지는 데다, 기술로 대체하기 어려운 육체노동에 대한 보상이 더 좋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현장직 노동 열풍이 한창이다. 도배사, 목수, 공장 노동자 등 블루칼라 직업을 택하는 젊은 인구가 연일 증가세다. 저출생, 초고령사회로 진입해 머지않아 생산가능인력이 부족해지는 만큼 블루칼라 몸값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한건설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지난해 평균 노임을 집계한 결과 평균 노임이 가장 많은 직종은 특고압 케이블 작업공으로 하루 임금이 42만1236원에 달한다. 여기서 노임은 업체가 근로자에게 준 총지급액을 시간당 임금으로 환산해 하루 8시간 근무 기준으로 계산한 평균 금액이다. 특고압 케이블 작업공은 한 달 20일 기준으로 환산하면 842만원을 벌어들인다는 의미다. 비계공(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임시 가설물을 설치하는 노동자, 28만1721원), 용접공(26만2551원), 미장공(25만6225원), 도장공(24만9977원) 등도 하루 노임이 높은 편이다.
Z세대들도 소득과 워라밸이 충족되는 블루칼라 일자리를 선호하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연봉이 적더라도 땀 흘리지 않고 일할 수 있어 시쳇말로 ‘폼 나는’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선호했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블루칼라 일자리라도 워라밸을 충족할 수 있으면 거침없이 지원한다. 육체적 강도가 심하지만,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생산직에 매력을 느끼는 이도 많다.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해 ‘킹산직’으로 불리는 현대차 생산직 채용에는 매년 수많은 지원자가 몰려든다.
취준생 10명 중 7명 ‘블루칼라’ OK
블루칼라 열풍이 부는 가운데 국내 대학생, 취업준비생들은 이를 어떻게 바라볼까.
매경이코노미는 HR테크 플랫폼 인크루트에 의뢰, 전국 대학생·취업준비생 481명을 대상으로 ‘블루칼라 열풍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여전히 사무직 선호 현상이 높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젊은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다수는 현장직 노동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다.
첫 번째 질문으로 생산직 노동 취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응답자 중 70.3%가 ‘기회가 되면 취직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취직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이는 29.7%에 그쳤다. 사무직만 선호하고, 현장 노동직을 기피하던 과거와는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왜 현장직 노동자를 선호할까. 취직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이들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생산직 노동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복수응답)’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답은 의외다. 수입·정년 보장 등의 답이 아니다. 1위는 ‘단순해서’다. 불필요하게 머리를 쓸 필요가 없어서라는 응답이 57.9%로 가장 많았다. 노동 대비 수입이 괜찮아서(47.6%)라는 답이 뒤를 이었다.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목수, 도배사 등 숙련 현장직 노동자가 고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승진 스트레스 등에 지나치게 시달릴 필요가 없어서(30.9%)라는 비율도 높았다. 승진, 실적 경쟁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점을 높게 사는 취준생이 많았다.
그렇다면,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질문에서 취업할 의향이 없다고 답한 이들에게 취직을 꺼리는 이유를 물었다(복수응답). 기피 이유 1위는 ‘고됨’이다. ‘고된 육체노동이 싫어서’라는 응답이 57.9%로 가장 많았다. ‘안전하지 않다’는 우려도 상당했다. 응답자 53.1%가 “위험한 현장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 탓에 취업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현장직 노동자 다수는 공사 현장, 공장 등 사고 발생 확률이 높은 환경에서 일한다. 각종 안전대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사무직 근로자가 일하는 곳보단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크다.
평생 직업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는 의견 역시 상당수다. 평생직장으로 가지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취업을 꺼린다는 답이 35.9%였다. 노동이 고된 만큼, 육체가 버티지 못하는 나이까지 일을 하기에는 힘들다고 판단한 이가 많았다.
또 다른 질문으로 기술·사회적인 변화를 느끼는지 확인해봤다. 블루칼라 열풍의 이면에는 AI의 등장이 자리한다. 전 세계적으로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AI가 침범하기 힘든 블루칼라 직종 인기가 높아졌다.
취준생 예측도 비슷하다. AI 등장으로 사무직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에 42.8%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이 중 12.7%는 ‘매우 동의한다’, 30.1%는 ‘동의한다’고 답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매우 동의하지 않는다’ 등 부정적 응답은 10.2%에 그쳤다. 다만, 아직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답한 중립 성향의 응답자가 많았다. 총 47%다.
생산직 노동자의 인기를 체감하는 응답자도 꽤 된다. ‘사무직보다 블루칼라를 선호하는 현상이 많아진 것 같냐’고 묻는 질문에 ‘체감한다’고 밝힌 이는 41.8%에 달했다. 이들 대다수는 “주변에 생산직을 고려하는 사람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아직 체감하기 어렵다고 밝힌 응답자는 27.9%에 그친다.
그렇다면, 현장직 노동자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직종은 무엇일까. 선호도 1위는 공장 생산직이다. ‘현장 노동자가 된다면 어떤 업무를 맡고 싶은가’라는 질문(복수응답)에 53.2%가 공장 생산직을 꼽았다. 임금 상승, 정년 보장이 확실한 대기업 생산직을 원하는 취업준비생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안정성 다음으로는 ‘소득’이 선택 요인이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전문직 노동자를 하려는 이가 많다. 선호도 2위가 전기기술자(37.2%)다. 전기기술자는 수요가 높고, 자격증 취득이 어려운 전문직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역시 소득이 높은 미장, 도배사 등 건설기술자(31.6%)의 인기가 많았다.
블루칼라 향한 관심 UP
콘텐츠·패션 전방위로 인기
블루칼라를 향한 젊은 세대 관심은 일자리 지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상을 찍고 공유하고, 현장용 작업복을 입는 등 ‘문화’적인 부분으로 이어진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현장직 노동을 소개하는 콘텐츠의 인기가 상당하다. 대형 유튜버도 여럿이다. 각종 현장 노동을 체험하는 유튜버 ‘잡재홍’, 현장 노동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직업의 모든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유튜버 영상 중에는 조회 수가 100만에 육박하는 콘텐츠가 꽤 많다. 평균 조회 수와 구독자 수는 꾸준히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다. 이외에도 공사 시공 현장을 소개하거나, 인테리어 근로자의 삶을 소개하는 영상들이 유튜브에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노동’을 주제로 올린 게시물이 10만건에 달한다.
현장 작업복은 아예 패션 아이템이 됐다. ‘워크웨어’라는 이름으로 젊은 세대 사이에선 ‘트렌디’한 의류로 각광받는다. 전 세계적으로 워크웨어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TMR은 세계 워크웨어 브랜드 시장 규모가 2022년부터 2031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6.3%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워크웨어 시장 규모 역시 1조원에 달한다. 패션업계에서는 블루칼라 직업 자체가 ‘힙’의 상징이 된 것이 패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내다본다. 고된 노동, 현장을 연상하는 이미지가 아예 사라졌다는 것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목수, 도배사 등 현장직 노동자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젊은 세대는 각종 영상을 통해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긍정적인 모습을 많이 본다. 자연스레 작업복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블루칼라와 그들의 옷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일 고되지만 월 1000만원 벌기도
블루칼라에 관심을 갖는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인생 2막을 준비하기 위한 중장년층 수요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적성을 찾아 이른 퇴사를 하거나, 아니면 사회생활 시작을 육체노동으로 출발하는 이도 적잖다.
이승로 씨(36)는 ‘정기 청소’를 업으로 선택한 지 2년 정도 됐다. 사무실을 비롯해 병원·식당·학원 등과 계약을 맺고 주 2~3회 정도 청소를 해주는 일이다. 그전까지는 수입차 부품 영업직을 12년간 해왔다. 하지만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 건강이 악화되면서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주변에서 정기 청소를 하고 있던 친구들 권유로 청소업에 입문하게 됐다. 별다른 기술이나 전문 장비 없이도 그저 깨끗하게, 열심히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청소업을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넘었지만 현재 월 수입이 800만원, 많을 때는 1000만원까지 번다.
“과거에는 자체 인력으로 청소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직원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외주를 주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비슷한 비용이지만 더 깔끔한 청소가 가능한 덕분에 직원 복지 차원에서 정기 청소를 원하는 곳도 많아요.”
만족스러운 점은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또 과거 대비 대인관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낮은 창업 비용도 장점이다. 청소는 크게 들어가는 비용이 없다. 청소기, 걸레, 청소에 필요한 약품 정도다. 특성상 이동을 해야 할 일이 많아 차는 무조건 한 대 있어야 하지만, 큰 짐을 싣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형차도 괜찮다.
힘든 점도 물론 있다. 이 씨는 하루 14시간씩 주 5.5일을 일한다. 주로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시간대 일하는 경우가 많다. 영업 시간이 아닌 때에 맞춰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도 당연히 힘든 상황이 많다. 특히 요즘같이 더운 여름철에는 하루 티셔츠를 5장씩 갈아입을 정도로 체력 소모가 극심하다.
“열심히 하다 보면 인근 병원이나 학원 등을 소개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규모가 큰 대형 학원·병원 등과 계약을 맺으면 좋은데, 이렇게 하려면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난점이 있습니다.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청소에도 종류가 다양하다. 청소 업체 ‘효자손’을 운영 중인 김용현 씨(31)는 ‘유리창 청소’를 메인으로 건물·사무실·상가 청소 등 다양한 의뢰를 받아 일을 하고 있다. 과거 7년 가까이 마케팅 관련 업무를 해왔던 그는 잘 늘지 않는 월급에 미래를 고민하다 청소 창업을 결심했다. 처음에는 일손이 필요한 청소 업체 운영자들에게 먼저 연락해 일당을 뛰면서 청소 노하우를 1년 정도 배웠다. 계단 청소, 입주 청소, 유리창 청소를 각각 3개월 정도 경험을 쌓고 본격 창업에 뛰어들었다. 청소 영역이 워낙 다양한 만큼 일단 유리창 청소를 주된 업으로 삼기로 결정하고 하나씩 범위를 늘려가는 방법을 택했다.
“모아둔 돈이 없어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청소를 선택했어요. 손걸레와 대걸레, 청소기, 유리 청소 도구 등 200만원 이내에서 준비가 가능하고 사무실이 필요 없어 임대료 고민도 없습니다. 순수익이 90% 이상 남는다는 점도 만족스럽습니다.”
이준영 씨(37)는 인테리어 목공일을 하는 7년 차 목수다. 역시나 기존 업무에 대한 불만이 그를 목수의 길로 이끌었다. 서울예대 졸업 후 영상 기술자로 안정적인 회사에 취직했지만 정작 입사 후에는 사무만 담당하는 등 원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던 중 우연히 목공방에서 교육을 받게 됐고 ‘이걸 업으로 삼으면 좋겠다’ 싶어 1년쯤 취미 활동 겸 교육을 받으면서 목공에 소질이 있는지 가늠해봤다.
이 씨는 바로 목공방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인테리어 목공 분야로 가닥을 잡았다. 인테리어 목공은 인테리어 업체나 셀프 인테리어를 하고자 하는 이의 디자인 의도와 도면에 따라, 상업·주거 공간 등 천장이나 벽체를 비롯해 각종 구조물과 가구, 내부 장식 제작을 하는 일이다.
현재는 본인 창업보다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팀원을 이끄는 ‘목공 팀장’의 경우 연장을 적재할 차량이 필요하고 팀원이 쓸 연장도 구비해야 한다. 차량을 제외하면 창업 비용이 최소 1000만~1500만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며 개인 연장만 구입할 경우 100만~200만원 정도면 목수로 시작이 가능하다.
직업으로서 인테리어 목공 장점은 현장 업무 시간이 일정하다는 점, 이른바 ‘칼출’과 ‘칼퇴’가 일반적이다. 반면 힘든 점도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몸을 쓰는 일인 만큼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옮기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각종 공구가 갖고 있는 예리한 날과 발사되는 못, 높은 곳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 등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신경 써야 한다. 톱밥을 비롯한 현장 먼지도 애로 사항이다.
하지만 이 씨는 “기술자로서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다”는 면에서 현재 일이 만족스럽다. 예비 목수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다른 이들로부터 ‘나무가 좋아서 목수가 되려고 한다’는 말을 듣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얘기해줍니다. 인테리어 목수는 나무만 만지는 직업이 아니라 철물이나 합성소재 등 각종 부자재를 다루는 직업이거든요. 환상보다는 실제 현장을 인식하고 일을 시작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커뮤니티·SNS 적극 활용해야
블루칼라는 업종이 워낙 다양하다. 청소·용접·타일·배관·목공·조경부터 지게차·굴삭기·기중기·크레인 등 건설기계 운전도 블루칼라에 속한다. 인테리어만 해도 도배·장판부터 새시 수리, 베란다 확장, 싱크대 교체 등 세부 분야가 셀 수 없다.
현재 보유한 자본이나 투입 가능한 시간, 거주 지역 등에 따라 원하는 일을 선택해봄직하다. 지게차·굴삭기처럼 자격증이 필수인 업종이 있는가 하면 청소·배관·목공·타일 등 관련 자격증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현장 경력이 더 중요시되는 분야도 있다.
시작이 막막하다면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운영하는 국가자격시험기관인 ‘큐넷’을 비롯해 카페·블로그 등 인터넷 검색으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청소업을 하는 이승로 씨는 “요즘에는 분야별로 전문 카페가 다 존재하는 데다 인스타그램·유튜브 등 개인 SNS를 운영하는 현직자도 많아 정보를 얻을 채널이 많다”며 “육체노동은 특성상 팀을 이뤄야 할 일이 많고 영업도 필요한 만큼, 사람을 구하고 본인 마케팅을 할 공간인 커뮤니티가 잘 활성화돼 있다. 이곳에서 많은 정보와 일거리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몸으로 부딪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인테리어 목공을 하는 이준영 씨는 “인테리어 현장 구인구직 카페 등을 통해 현장에서 바로 시작해도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지나가다 보이는 목공 현장에 무작정 들어가 구직 활동을 해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며 “업계 현실상 자격증이나 교육기관이 뚜렷하지 않아 결국 현장 경력이 많아야 인정받는다. 업계에선 최소 5년 이상 경력자를 기술자로 인정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직업이 있다면 무작정 퇴사보다는 경험을 쌓는 편이 좋다. 적성에 맞을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당장 회사를 그만두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것이 공통 의견이다. 사설로 운영되는 전문 교육 업체를 찾거나 휴일마다 일당을 뛰며 현장 분위기를 익히는 것도 좋다.
자격증 취득도 방법이다. 자격증 취득이 필수가 아닌 업종이 많지만 시험과 실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하우가 쌓인다면 현장에 투입된 이후 적응이 더 쉽다.
영업·마케팅은 필수다. 사업자등록증만 받았다고 해서 당연히 바로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다. 카페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는 물론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숨고’ ‘크몽’ 등 매칭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유리창 청소를 하는 김용현 씨는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영업·마케팅에 쏟는 시간과 노력이 충분해야 일이 들어온다”며 “본업을 꼼꼼하게 잘하는 것도 최고의 영업 중 하나다. 나중에 다시 불러주거나 다른 이에게 추천을 해줄 수 있을 정도로 만족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민·나건웅·반진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6호 (2024.07.03~2024.07.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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