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에 시력 잃고도 공무원 된 막내"…역주행車에 목숨 잃었다

이영근, 신혜연 2024. 7. 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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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지난밤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중구 시청역 7번 출구 인근 사고 현장에 한 시민이 국화꽃을 놓고 있다. 1일 밤 역주행하던 승용차가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연합뉴스


1일 밤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차량 돌진 사고로 숨진 서울시청 소속 공무원 김모(52)씨의 죽음에 가족들은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어릴 적 뺑소니 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었지만 열심히 공부해 공무원이 된 집안의 자랑스러운 막내였다.

2일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서 만난 김씨의 첫째 형 김윤병(67)씨는 “동생이 중학교 2학년 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택시에 들이받혀 가게 유리창에 부딪혔는데 그때 파편 때문에 왼쪽 눈이 실명됐다”며 “차는 그냥 현장을 떠났고, 옛날이고 시골이라 제대로 처치를 못 해 겨우 살아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사고로 장애 등급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김씨는 “당시 한쪽 어깨와 머리도 다쳐서 겨우겨우 살아난, 내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동생이었다”고 덧붙였다.

숨진 김씨는 경북 안동에서 7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남매 중 5형제가 공무원이었다. 김씨는 사고로 시력을 잃은 뒤에도 주경야독했다고 한다. 식당일이나 배달을 하며 공부한 끝에 서울시 세무직 9급으로 입직했다. 형은 “아버지가 정말 기뻐했다”며 “(부모님이) 40세 넘어 난산 끝에 낳은 막내였는데 집에 오면 잘 웃고 농담도 잘하는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가족·동료들은 김씨가 불편한 몸으로도 성실하게 일했다고 입을 모았다. 사고 당일에도 김씨가 속한 팀이 ‘이달의 우수팀’ 수상자로 선정됐다. 서울광장에 차려진 이태원 참사 분향소 이전과 야외 밤 도서관 행사 등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6개월여 전 청사운영팀장으로 발령 받은 김씨는 시위가 열리는 날이면 서울광장 앞을 관리하느라 쉴 틈 없이 일했다. 형 김씨는 “몸이 불편하니 안 그래도 된다는데도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일하고 상사한테 칭찬받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며 “사무관으로 승진한 뒤에도 친구들도 잘 못 만나고 명절 때도 못 내려올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숨진 동생은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존재였다. 셋째 형은 동생이 세무 업무를 맡았을 당시 TV 뉴스에 나왔던 영상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김씨는 “악덕 세무업자들의 세금을 징수하면서 보람도 자랑도 많이 했다. 나도 (동생이) 자랑스러웠다”며 “나중에 퇴직하면 시골에서 텃밭 하나씩 장만해 같이 편안하게 살자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사고 당일 함께 일했던 동료 10여 명과 저녁 식사를 하고 시청으로 돌아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김씨는 복귀해 남은 일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식사 자리에 함께 있던 주무관 윤모(31)씨도 사망했다. 또 다른 직원은 경상을 입고 인근 병원에 옮겨졌다.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1일 오후 9시 27분쯤 68세 운전자가 몰던 제네시스 차량이 시청역 인근 호텔에서 빠져나오다가 역주행해 BMW와 쏘나타와 차례로 추돌한 뒤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김씨 등 9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신혜연, 이영근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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