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를 지우는 정부, 답답한 시민들이 나섰다

충북인뉴스 이종은 2024. 7. 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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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참사 1년, 시민들의 기억 방법... 자발적 기록화 작업 시작, 메시지-에세이 수집 배포

[충북인뉴스 이종은]

 2023년 7월 16일 119 구조대원 등이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 남겨진 버스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송 참사 발생 1년, 우리는 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참사 유가족·생존자들의 사회적 회복을 위해 시민들이 직접 질문을 던졌다. 이같은 질문은 우리 사회가 참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을 만들기 위한 시민행동으로 이어졌다.

'747 오송역 정류장 모임'(아래 747 모임)과 '기억록'이 힘을 모아 피해자들에게 위로와 지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오송 참사 기록화' 작업에 나섰다.

"정치적 제한이나 자기 검열 없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오송 참사를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일반 시민들, 참사와는 심리적 거리가 있던 이들의 시선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주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함께 분노하고 두려움을 느낀 경험 등 참사에 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공통의 기억'을 만들고자 합니다."

참사 후 1년가량의 세월이 지나고 있지만, '안전 사회'를 향한 갈망은 이뤄지지 못 했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여전히 진상규명과 최고책임자의 처벌로 사회의 재난 안전 시스템을 다시 세워 달라 외치고 있다.

747 모임 길한샘씨는 참사 이후의 이야기가 시민들에게서 멀어지지 않도록, '우리의 문제'로 기억해 나갈 수 있도록 기록화 작업을 기획했다.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 시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행동해 나갈 수 있는 실천의 장이 이어지길 바란다.

기록화 팀은 참사 당시 시민들이 전한 접착식 메모지와 더불어 청년과 일반 시민 등 다양한 이들의 에세이를 수집해 책자로 만들어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온라인 배포, 클라우드 펀딩 운영, 공공시설 배포처 섭외 등 일반 시민의 접근성을 높일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노동자와 문화기획자가 힘을 합친 이유
 
 오송 참사 기록화를 진행 중인 '747 오송역 정류장' 모임 길한샘 씨(좌측)와 '기억록' 안보화 대표의 모습.
ⓒ 충북인뉴스
747 모임을 만든 길한샘씨는 배달노동자이자 오송역 인근에 거주하며 궁평2지하차도를 자주 지나던 시민이다.

자서전 제작 사업을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기억록'의 안보화 대표는 참사와는 거리를 두고 있던 일반인이었다. 접점 없을 것 같은 이들이 오송 참사라는 공통의 경험을 겪었다.

길한샘씨는 잇따른 참사에서 진상 규명을 위한 움직임이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일련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그리고 지난해 오송 참사까지 피해자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지쳐가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이들이 사회로부터 위로받고 함께한다고 느끼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이나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참사를) 인식하고 추모하는 문화가 따라가야 더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시민들이 참사의 아픔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도록 747 오송역 정류장 모임을 만들었다. 지난해 7월 19일부터 20일간 오송역 버스 정류장에 게시판을 설치해 추모 메시지를 받았다.
 
 지난해 7월 19일 오송역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오송 참사 시민 추모 게시판. 한 시민이 포스트잇 메시지를 붙이고 있다. (사진=747 오송역 정류장 모임)
ⓒ 충북인뉴스
 
길한샘씨는 시민들의 메시지가 보다 의미있는 기록이 되길 바라며 전문가를 찾았다. '비영리스타트업 시소' 강의를 통해 알게 된 '기억록'의 안보화 대표가 떠올랐다. 생애 기록물, 자서전 제작 사업을 이어온 문화기획자 안보화 대표는 자신을 '참사와 심리적 거리가 있던 일반 시민이었다'고 설명했다.

7월 15일 타지에서 주말을 보내고 있던 안 대표는 '오송, 청주에서 큰일이 났다더라'는 지인들의 안부 전화를 통해 참사를 접했다. 뉴스로 소식을 보고 문제가 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사를 지켜봐 온 한 사람이었다.

'오송 참사'라는 주제가 조심스럽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자신과 같은 일반인의 시선과 목소리로 참사를 함께 기록하고 기억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에 기록화 작업에 나섰다.

"우리 지역에서 벌어진 나의 문제가 될 수도 있었는데, 이에 분노하기보단 당장의 문제를 면해 '다행'이라는 생각에 그치는 게 주변의 반응이었습니다. 참사에 간접적인 시민들은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확 와닿았습니다. 정책과 더불어 '우리의 문제'라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747 모임의 뜻에 공감하게 됐습니다."

"참사 고통 겪는 이들에게 누군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행동한 기록이 되길"

747 오송역 정류장 모임과 기억록은 오송 참사 1주기 기록이 피해자들이 사회적 회복을 돕는 매체가 되길 바란다. 이들은 참사에 관해 자유로운 의견을 전달할 시민 6명을 모집해 인터뷰와 에세이를 받았다. 대상도 주제도 제한은 없다.

안보화 대표는 참사 이후 시간이 지난 1주기의 생각과 느낌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시민들에게 자극이나 이끌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닌, 오히려 조금 미성숙하다 느껴질지라도 일반 사람들의 목소리가 전달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동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좌절감에서 벗어납시다"
 
 한 시민이 게시판 아래 두고간 국화꽃바구니. (사진=747 모임)
ⓒ 충북인뉴스
 
이들은 시민들의 작은 실천과 행동이 생각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시민들이 수동적으로 참사를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작은 실천을 통해 사회 변화에 기여하는 긍정적 경험이 퍼지길 바라고 있다.

길한샘씨는 "사회를 바꾸고 개혁하는 말과 행동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인식 변화의 핵심"이라고 봤다.

참사 지우기에 급급한, 우리 정부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시민들이 발 벗고 나선 모습이다. 참사를 함께 기억하기 위한 제대로 된 지원도 예산도 없지만 "그럼에도 하게 되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 기록이 피해자 분들에게 '우리 사회의 누군가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행동한 기록'으로 다가가길 바랍니다. 시민의 입장에서도 '행동해도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는 좌절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됐으면 합니다." - 747 모임 길한샘씨

"피해자분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지역사회에 조그마한 영향이라도 줄 수 있길 바랍니다. 1년, 3년이든 시간이 지나고 봤을 때 '우리가 여기까지 해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는 기록이 됐으면 합니다." - 기억록 안보화 대표

오송 참사 1주기, 우리 사회는 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이들의 대답은 이렇다. 계속해서 '우리의 일'로 기억되고 이야기될 수 있도록, 참사의 고통을 공감하고 지지하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 참사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 이들이 고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더 나아가 안전 사회로의 회복을 위해 시민들도 함께 실천하고 행동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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