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식용종식법'에도 동물단체·지자체 한숨…"갈 곳 없는 구조견들"[현장에서]

이찬규 2024. 7. 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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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 개를 사육·증식·도살하거나 개를 원료로 조리·가공한 식품 판매를 금지하는 이른바 ‘개 식용 종식법’이 다음달 7일부터 시행된다. 위반시 처벌되는 건 유예기간 3년을 거쳐 2027년부터다. 법안의 핵심은 식용 개농장 등 관련 업체가 전‧폐업할 경우 정부가 비용 등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물권단체와 지방자치단체 동물보호센터 사이에선 “처벌 조항이 시작되는 3년 뒤까지 개농장에서 계속 번식·도살될 개들에 대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8월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식용 종식을 위한 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개식용 종식 촉구 기자회견을 찾아 ″불법 개 식용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1


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개식용종식법에 따른 운영신고 제출 의무기간(지난 2월~5월)동안 개 사육농장, 도축·유통상인, 식당 등 개식용 관련 업소 총 5625곳이 신고했다. 이중 개농장은 1507곳이다. 동물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개가 태어나서 도살장에 가기까지 평균 1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지난 2022년 기준 전국 개농장에 있는 개는 52만 1121마리로 집계돼, 처벌 조항이 시행돼 개식용이 완전히 금지될 때까지 약 150만 마리의 개가 번식·도살될 것으로 단체들은 추산한다.

법 시행 전후로 동물보호단체가 개농장·번식장 등을 습격해 농장주의 불법행위를 적발하고 개를 구조하는 모습을 방송하는 이른바 ‘타격 콘텐트’도 늘었다. 유튜브 채널만 10여개에 달한다. 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개식용금지 이슈가 급부상했고, 대선 주자들도 잇달아 개식용종식법을 약속했다”며 “개농장을 타격할 명분과 호의적인 반응이 생기면서 나서는 이들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신재민 기자

구조견이 늘면서 구조 뒤 처리를 두고 동물보호단체와 지자체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동물보호법상 구조 이후 동물에 대한 책임은 지자체 동물보호센터로 넘어가는데, 전국 동물보호센터의 대부분이 포화상태다.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구조동물은 2021년 7만 2912마리에서 2023년 11만 1713마리로 늘었지만, 지자체 동물보호센터는 같은 기간 255곳에서 224곳으로 감소했다.

현행법상 동물보호센터는 입양공고 10일 뒤부터 안락사할 수 있어, 구조동물이 늘수록 안락사하는 동물도 느는 실정이다. 경기의 한 동물보호센터 관계자는 “지자체 보조금은 개 1마리당 15만원뿐이다. 입양이 어려운 대형‧믹스견이 주로 오는 데다 관리비도 만만치 않아 안락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충북의 한 동물보호센터 관계자도 “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구조견을 뜬장(바닥에 떠 있는 사육장)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 입장에선 예산‧공간 등 제약으로 구조 이후까지 책임지기 어렵다. 그나마 자체·위탁 보호소를 갖춘 단체마저도 관리할 여력이 없다고 호소한다. 한 단체 관계자는 “지자체 동물보호센터는 세금으로 보조금을 받아 상황이 낫다”며 “후원금에 의지하는 보호단체는 구조하면 할수록 재정 상황이 마이너스”라고 토로했다.

동물보호소 등에선 법 시행 뒤 3년 동안 개식용 업자들이 개농장 규모를 더 키우거나 도살 횟수를 늘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구체적인 처벌 조항이 생기기 전까지 사업 규모를 키운 뒤 이후 개식용업 전·폐업 지원금을 받는 것을 노린다는 것이다. 다른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개식용업자에겐 개식용 종식법은 ‘한 탕’할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동물단체도 정부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동물 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이 국회 앞에서 열린 '개식용 금지법' 농해수위 법안 소위 통과 환영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정부도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최근 농림부는 일부 동물보호단체와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선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방법을 같이 고민하자”는 말만 나왔다고 한다. 농림부는 “개식용종식위원회에서 오는 9월까지 기본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라며 “입법 논의 과정에서 개농장의 개 보호 방법에 대한 논의가 부족해 정부 차원에서도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동물보호단체들은 가능한 범위 안에서 구조를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영환 케어 대표는 “동물단체와 시민들이 힘을 합쳐 0.1%만이라도 가능하다면 몇 개의 개농장에서라도 구조를 해야 한다”며 “과거에도 누렁이들을 구조해 보호소를 세운 경험이 여러 번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서울 종로 보신각터에서 열린 ‘우리 모두를 위해, 성평등 사회로’ 유세에서 지지자에게 전달받은 개식용금지법 관련 피켓을 들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동물단체가 민간 동물보호센터의 90% 이상이 미등록 상태다. 정부 추산도 비슷하다. “인근 주민 민원으로 보호센터를 자주 옮겨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정부 지원받기도 어렵다”고 단체들은 호소한다. 지난해 4월 정부가 민간동물보호센터 신고제를 도입하면서 농지 1만㎡ 내에선 보호센터를 만들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됐지만, 기존 보호소의 경우 시설을 허물고 다시 지은 뒤 신고를 해야 한다. 농지 외엔 개를 키울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은 단체들은 몰래 보호센터를 운영하거나, 개농장에 임시 위탁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김 대표는 “충북 증평의 새꽃, 파주 옐로독 등 민간 보호소엔 현재 식용목적으로 사육되다가 구조된 개가 약 300마리 있다”며 “하지만 지자체에선 개발제한구역법·농지법 위반 등의 이유로 동물들을 쫓아내려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농지에 위치한 민간동물보호센터에 유예기간을 두고 다른 용지로 이동하게 하는 등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개식용종식법은 지난 1월 국회 재적의원 210명 중 208명이 찬성해 통과됐다. 여야 모두 “국회가 초당적으로 시대 흐름을 읽었다(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1500만 반려인 시대에 당연한 일이 실현됐다(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 등 자화자찬성 평가를 했다. 하지만 동물구조현장에선 “개농장에서 번식·도살될 개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개 식용을 둘러싼 오랜 논란을 해소하고 동물권을 제고한다는 법 취지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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