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바이든은 늙었고, 참모들의 ‘사고’는 더 늙었다

강태화 2024. 7. 2. 01:2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태화 워싱턴 특파원

“쉰 목소리에 장내 술렁”, “기침 한번, 두번…”, “첫째 이후 다시 첫째…”, “또 고개 숙임”.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애틀랜타 CNN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TV토론을 현장에서 본 기자의 취재 수첩에 적힌 장면들이다. 승부는 90분을 다 기다리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바이든의 참패’였다.

기자는 토론 다음날 ‘닥터 폴리틱스’로 불리는 스테판 슈미츠 아이오와대주립대 교수의 초청으로 정치학자들이 참여한 토론방에서 이뤄지는 평가를 지켜봤다. 결론은 명확했다. 바이든이 생각한 토론의 본질이 틀렸고, 토론 준비 또한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이다.

질 바이든 여사가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TV토론을 마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손을 이끌고 토론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바이든 캠프는 처음부터 이번 토론을 “인지력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암기력 테스트’로 봤던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측이 먼저 백지만 놓고 참모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맨몸 싸움’을 제안한 데서 짐작할 수 있다.

목표를 기억력 테스트로 정한 참모들은 1주일 전부터 바이든을 ‘골방’에 가둬놓고 전 분야에 걸친 방대한 데이터를 주입했을 거다. 81세 바이든은 끔찍한 암기 훈련에 이어 이를 까먹지 않고 말하는 혹독한 반복 훈련을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는 참혹했다. 바이든은 암기한 말을 기억해내기 위해 내내 얼굴을 찡그렸다. 다음 ‘대사’를 잊지 않으려는 듯 고개 숙여 빈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고, 유권자들은 90분 내내 트럼프의 호통을 들으며 고개를 푹 숙인 바이든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슈미츠 교수는 “바이든은 1960년 닉슨이 왜 케네디에게 졌는지에 대한 정치학의 고전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닉슨은 정보량에서 케네디를 압도했지만, 유권자는 케네디의 손을 들었다”며 “TV토론이 지식 경연이 아니란 사실은 60여년 전에 증명된 일”이라고 했다.

바이든의 보좌관들은 토론 참패 이후 “오후 4시 이후엔 바이든이 피로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토론 패배를 오후 9시에 시작된 토론의 시간 탓으로 돌렸다. 그러자 온라인에선 “테러리스트는 오후 4시 이후엔 성공률을 높일 수 있으니 참고하라”는 조롱의 메시지가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공화당은 암기 훈련을 거쳐 나온 바이든과 토론 참패 이후에도 같은 방식을 지속하는 민주당에 대해 “노인 학대”라는 프레임까지 만들어 공격하고 있다.

이번 토론으로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이 확실히 늙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더 심각한 것은 바이든보다 그를 보좌해 2기 행정부를 이끌겠다는 핵심 참모들의 사고방식과 전략이 바이든보다 훨씬 더 늙은 ‘구닥다리’라는 사실까지 드러내며, 선거 전략 실패와 관련한 정치학 개론의 최신 사례를 만들어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강태화 워싱턴 특파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