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금리와 물가 어떻게?… 중앙은행 처신이 중요하다

2024. 7. 2. 00: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중순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방송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를 압박하더니 정치인들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물가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유럽연합(EU) 등도 금리를 인하한 마당에 우리도 금리를 어서 인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직접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았지만 보고서를 통해 물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식료품 등 필수 소비재가 지나치게 비싸다며 구조 개선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고물가 구조를 혁신할 노력도 없이 섣불리 금리를 낮췄다가는 물가가 더욱 불안해질 것이라는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것 같은데, 시각 차이는 분명해 보인다. 정치권은 당장의 문제에 주목하는 반면 한은은 중장기적 해결책을 중시한다. 과연 금융정책이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손쉬운 경기부진 탈출 방법은 없다


지난 주말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생산, 투자, 소비가 모두 하락했다. 특히 현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가 코로나 이후 가장 크게 하락했다. 또 농산물과 외식 물가가 크게 올라 먹고살기 어려워지다보니 자영업자와 가계의 대출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경제 활성화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대표적인 경기 대책인 구조조정, 재정지출 확대, 금융 완화 등이 검토되겠지만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는 게 문제다.

우선 구조조정만 해도 그렇다. 이는 경제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기술력과 생산성만으로 경쟁하도록 특권이나 지대(rent)에 기생하는 영역을 없애는 일이다.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올라서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데에는 모든 사람이 공감하지만 정작 본인에게 닥치면 백이면 백 모두 반대하기 때문에 추진하기가 어렵다. 당장 농산물 가격 불안에 대응해 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수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중개상인은 물론 농민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고, 그러기 때문에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정부가 아니라면 엄두를 낼 수 없다.

두 번째는 재정 지출을 확대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이다. 정부 본연의 업무인 세출을 통해 경기 부양을 시도하는 것이기에 이제까지 모든 정권은 이 방법을 애용했다. 이번 정부도 금년 초 재정을 집중적으로 늘리면서 이를 시도했으나 계속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정건전화라는 현 정부 최고의 정책의제 아래서는 추경을 편성하면서까지 재정 확대를 시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금융 완화를 통한 경기 부양이다. 금융을 통해 시중 유동성을 직접 늘릴 수 있으니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 하겠다. 세금을 걷는 대신 돈을 찍는 것이니 정부가 국회에 머리를 조아릴 이유도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물가 불안과 혁신 노력 상실이라는 반대급부가 있다. 더구나 이 정책은 마약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의존하는 병폐가 있다. 이런 연유로 선진국들은 금융을 정치로부터 떼어내 중립적으로 결정토록 하고 있는 것이다.

임기응변으론 난국을 극복 못한다

그렇다고 해도 정치권이 금융완화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다. 감독 당국을 통해 이를 시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부가 시행 1주일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연기한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조치만 해도 그렇다. 금융회사가 전산 시스템 등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이를 유예한 것은 정책 신뢰를 저버리는 극약 처방에 가까운 조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정부가 현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다. 이 제도로 인해 금리가 올라가고 대출 한도가 깎여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금년 들어 대출 신청액이 5조2000억원에 달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는 신생아 특례대출 제도의 조건을 한시적으로 완화한 것(소득 1억3000만원 이하 →2억5000만원 이하)도 마찬가지다. 연간 2억5000만원을 버는 사람에게 1%대 초저금리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시중에 유동성이 더 풀릴 필요가 있다고 보고 이 조치를 시행했다. 다만 이런 일시적 유예나 한시적 완화 조치만으로는 경기 회복이 쉽지 않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정부·여당은 금리 인하에 집착하고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 이자 부담에 신음하는 서민경제는 물론 벼랑 끝에 몰린 건설업계와 금융회사를 구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도 올라 수출경쟁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히 당면 경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신의 한 수라고 하겠다. 다만 이를 거칠게 압박하는 것은 선진국스럽지 않으므로 한은이 스스로 금리를 낮춰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마치 지난해 7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은이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에 대해 유동성 지원 통로를 마련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금리정책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은이 제2금융권에 대한 자금융통 경로를 마련해 준 것은 오히려 금리 인하가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이 조치는 부실 금융회사에서 뱅크런(예금인출 사태) 등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것인데, 고금리 상황이 길어질수록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은은 물가 안정을 다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확인한 뒤에야 금리를 조정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금리를 인하할 경우 부동산 시장이 가장 먼저 반응할 것이고, 부동산 거품은 임대료 상승 등을 거쳐 물가 불안을 야기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이래서는 애써 다져지고 있는 물가안정 기조를 일시에 그르칠 수 있기에 여러 주변장치를 해가면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런 한은이 답답하기 그지 없지만, 한은도 자기 패만 고집하는 정부 당국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협력해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중앙은행의 숙명이다. 이번 여름 전 세계 중앙은행과 한은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