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을 욕보이지 말라 [김선걸 칼럼]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4주년이 된 지난주, 북한 김정은과 러시아 푸틴이 만났다.
독재자들끼리 건배를 하는 모습이 세계 언론에 실렸다. 시대착오적인 장면인 동시에 아직도 위태로운 한반도 정세를 각성하는 장면이었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장거리 탄도 미사일이나 핵무기 소형화와 같은 첨단 기술이라도 이양받는다면 큰 변고다.
이런 어두운 그림자가 한반도에 드리운 시각, 국회에선 한편의 부조리극이 연출되고 있었다.
21일 국회 법사위는 증인 11명을 출석시켜 무려 12시간 가까이 ‘해병특검’ 청문회를 진행했다.
법사위원장을 맡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회의 내내 전현직 군인들을 망신 줬다.
생중계되는 현장에서 수차례 ‘10분 퇴장’을 시켰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줄 수 없는 벌이다.
‘토 달지 말고 사과하라’ ‘천지분간 못하고 앉아 있냐’ ‘가훈이 정직하지 말자냐’며 모욕을 줬다. 민주당 의원들은 낄낄거리고 웃고, 심지어 박지원 의원은 ‘한 발 들고 두 손 들고 서 있으라’는 조롱도 했다.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역사적으로 군을 무시한 나라는 예외 없이 패망했다. 임진왜란 전 조선은 군인에 대한 멸시와 군역 기피 등이 만연하면서 결국 전란을 불러들였다. 고려 땐 문신이 무신 정중부의 수염에 불을 붙였다가 무신정변으로 정권이 뒤집어졌다. 중국 북송은 100만 대군이 있었지만 군을 천시해 금나라 10만 군대에게 패망했다. 서로마 제국 말기에는 군을 하대하고 이민족 용병을 쓰다가 오히려 용병에게 망했다.
이날 청문회 증인석에는 제복을 입은 사람이 적어도 4~5명이 보였다. 그중에는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선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도 포함됐다.
꽃다운 해병대원의 순직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엄중한 수사를 실시하는 것과, 군을 조롱하고 제복을 능멸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사안의 성격을 봐도 엄숙하게 청문회를 해야 했다. 최소한 채 상병을 비롯한 군 전체의 헌신을 예우하고, 지켜보는 군인들이 치욕을 느끼지 않게 해야 했다.
군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개인’으로 능멸할 순 없다. 똑같은 제복을 입은 이유는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는 ‘군’이라는 집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27일 100여개 해병대 예비역 단체들이 ‘해병대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며 국회에 항의한 것은 이런 이유다.
물론 요즘 들어 군에 결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12사단 훈련병을 규정에도 없는 얼차려로 희생시킨 지 한 달이 지나도록 군과 경찰이 시간을 끈 이유는 무엇인가? 채 상병 사건 책임 규명에 1년이나 걸릴 일인가?
사실 야당이 국회에서 정치적 목적의 쇼타임으로 군을 모욕하기 한참 전에 사실이 즉각 규명되고 책임자 처벌이 완료됐어야 했다.
박정훈 대령은 이날 이렇게 밝혔다.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 이 말은 제가 故 채수근 상병 시신 앞에서 약속한 말이다. (중략) 대한민국은 국방의 의무가 있는 나라다. 모든 국민은 군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이번 사건은 올바르게 처리되고 책임 있는 자들은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제2의 수근이 같은 억울한 죽음을 예방할 수 있다.” 이런 얘기를 들은 자리에서 ‘한 발 들고 두 손 들라’며 낄낄거리는 국회의원들은 어느 나라 의원인가.
더 이상 이런 부조리극을 보고 싶어 하는 국민은 없다.
김정은과 푸틴이 악수하던 그 시각, 한국 국회는 조롱과 모욕으로 스스로 군의 명예를 짓밟고 있었다. 누가 불안해하고 누가 좋아라 박수 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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