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해주는 음식도 먹어보고 싶어요"
청진기는 우리 몸 안에 심장과 호흡 소리를 듣고 몸 상태를 진단하는 도구다. 이처럼 기획 연재 <청진기>는 청년의 시각으로 다양한 사회 문제를 조명하고,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찾는다. 이를 위해 당신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개개인의 삶마다 사회에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곧, 당신이 필요하다. <기자말>
[김명근 기자]
#1. 소란
"발달장애인 모임을 하는 이유요? 열 명이 비장애고 한 명만 장애면 눈에 띄어요. 그런데 열 명이 장애고 한 명만 비장애면 그게 평범한 게 돼요."
지난 6월 30일 발달장애 아동들이 제주시에 위치한 공유주방에 모였다. 원준, 범준, 도준, 주원, 대현, 그리고 이들의 엄마들. 오늘은 돼지불고기와 오이냉국을 요리할 예정이다.
[관련기사 : 제주도 '공유주방'에서 차린 모두를 위한 식탁 https://omn.kr/298ua]
|
|
| ▲ 범준은 엄마 볼에 입 맞추고 있다. 범준 엄마는 현재 ‘장애이해교육강사’로 일하고 있다. |
| ⓒ 김명근 |
엄마들이 긴장하는 순간이다. 발달장애 아동은 예상치 못한 자극에 과민 반응하기 때문이다. 드러누울 수도, 물건을 던질 수도 있다. 엄마는 침착하게 도준을 개수대 앞으로 데려갔지만 왜인지 씻기를 거부했다. 도준 엄마는 원인을 찾아야 했다.
"아이들이 이러는 데엔 다 이유가 있어요.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죠."
|
|
| ▲ 아이들은 학술제 안내데스크에 놓인 과자를 쫓았다. 우연히도 당일 대구사이버대학 ‘언어치료학과’ 학술제였다. 해당 학과 교수님은 “오히려 도움된다”며 반겨줬다. |
| ⓒ 김명근 |
오늘 요리 시범을 보인 셰프는 원준 엄마였다. 셰프는 음식 종류에 따라 엄마들이 돌아가며 맡았다. 모임에 전문 요리사를 쓰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르치는 대로 애들이 착착하지 못해요. 애들을 충분히 기다려주고, 돌발 상황에 맞춰 대처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그렇기에 우리를 이해하는 '엄마 셰프'가 잘 맞아요."
가정마다 입맛에 맞게 불고기 양념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물엿, 간장, 참기름 등을 섞어 고기와 버무렸다.
"주원아, 우리 빨간 소스(고춧가루)를 넣어볼까?"
"아니요. 싫어요."
주원의 투정에 주방은 웃음꽃이 폈다. 그때 도준이 또 한 번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기분 좋다는 표현이었다. 아이들은 채소가 움직이지 않도록 왼손으로 고정해 제법 능숙한 칼질을 했다.
"우리 아이는 요리 모임 덕분에 스스로 조리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언제는 '같이 만들자' 해서 베이킹을 한 적도 있어요."
"우리 애도 자기가 선호하는 음식만 먹었는데, 요리하더니 먹는 가짓수가 늘었어요."
|
|
| ▲ 주원은 양념한 고기를 프라이팬에 옮겼다. 요리 활동은 발달장애 아동의 신체 협업 능력을 키운다. |
| ⓒ 김명근 |
|
|
| ▲ 대현이 오이를 썰고 있다. 요리를 하는 중에도 휴대폰 음악을 꼭 켜둔다. |
| ⓒ 김명근 |
"아이들은 소리를 추구하는 거예요. 가사가 아닌 음 높낮이를 이해하지요. 자기 안에 부족한 무엇인가를 음률로 채우는 듯해요."
집중력 부족과 학습 능력 부족은 발달장애 아동들이 공통으로 지닌 특성이다. 그래서 요리, 미술 등 신체 오락 활동을 통해 오감을 학습시키는 것이다. 반복 훈련은 아이의 신체 기능을 습득하고 행동 변화를 이끌도록 돕는다.
"원준이는 자기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환경이 펼쳐지면 안 하던 말과 행동을 해요. 거기서 저도, 원준이도 하나씩 배우는 거죠."
음악 감상도 질렸는지 몇몇 아이는 주방을 벗어났다. 이들 중 범준은 '꼭대기 집착'이 있다. 어느 건물이든 들어가면 정상을 찍어야 하는데, 오늘도 건물 옥상을 수차례 배회했다. 발달장애 아동을 보면 '인간 본성에 가장 가깝다'는 느낌을 받는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이 높은 곳을 좋아하는 이유로 마음의 안정감을 든다. 인간은 시야가 잘 확보됐을 때 생존 욕구를 충족하기 때문이다.
|
|
| ▲ 범준이는 팔을 날갯짓하듯 휘젓는 버릇이 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상동 행동’ 특성이 있다. |
| ⓒ 김명근 |
우여곡절 끝에 요리를 완성했다. 다섯 팀의 불고기와 냉국이 식탁에 놓였다. 한 엄마는 집에서 가져온 토마토 절임을 꺼냈고, 다른 엄마는 근처 시장에서 모둠 순대까지 사 왔다. 아이들은 밥을 먹을 때서야 얌전해졌다. 이내 엄마들도 한숨 돌리며 수다를 떨었다.
"원준이 어릴 때 차에 태우면 파란 신호가 끊기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어요. 차가 한 번 정지하면 잠에 깨서 난리를 피웠거든요."
"이번에 우리 아이가 수학여행 가는 내내 걱정했어요. 그런데 담임 선생님이 아침에 입을 옷부터 여벌 옷, 이동할 때 담요까지 챙겨줘서 3박 4일 일정을 무사히 넘겼어요."
아이를 사회에 노출시키는 것. 엄마들이 아이와 세상의 연결고리를 찾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말처럼 쉽게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자기 욕심은 아닌지, 진정 아이 행복을 바라는 일인지 고민이 서려 있다. 특히 아직 남아 있는 장애에 대한 따가운 시선에 걱정이 많았다.
"서울 살 땐 도시 사람들 일상이 바쁘니까 아이 잘못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럴 때면 눈을 보고 사과를 건네지도 못해요. 상처받을까 봐요."
"친언니 가족과 여행하는데 언니가 그랬어요. '쟤 어떻게 평생 키울 거야?' 언니는 아이보다 동생인 제가 걱정된 거예요. 이해는 하지만 그 말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러나 여기서 굴한다면 아이와 엄마는 위축돼 '사회적 고립'을 선택하게 된다. 엄마들은 아이 미래를 위해 다시 의기투합했다. 그러함에도 이들이 긍정적인 이유는 기적의 순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
|
| ▲ 발달장애 아동과 가족이 함께 만든 음식이다. 모임은 매주 토요일마다 제주소통협력센터 공유주방에서 진행한다. |
| ⓒ 제주소통협력센터 |
'자립'은 엄마들이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는 이유다.
"범준이가 스스로 장도 보고 요리하는 모습을 꿈꿔요. 욕심을 조금 보태자면 우리 아이가 해주는 음식도 먹어보고 싶어요."
"아이들 장애는 없어지지 않고 이대로 평생 갈 텐데요. 부모가 있는 세상처럼 살려면 부모 눈으로 바라봐 주는 세상이 필요해요."
발달장애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대개 미래에 혼자 남겨질 자식을 걱정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에서 발달장애인 가족 34.9%가 '보호자 사후에 대한 막막함', 12.2%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나타냈다. 또 지난해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장애인의 사회적 고립 수준은 35.4%로 집계됐다.
자립의 사전적 정의는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서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엄마들이 말하는 자립은 달랐다. "자립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능력도 포함"이라며, "그것이 충족될 때 남을 도울 능력도 생긴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꼭 방법을 찾을 겁니다!"
|
|
| ▲ 주원 엄마는 발달장애 아동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 지원사업을 하는 <행복하게 협동조합> 김덕화 이사장이다. |
| ⓒ 김명근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 박영근 작품상 반납한 조성웅 "조혜영 시인의 '미투', 외면할 수 없었다"
- [단독]"'김건희 사기꾼' 표현, 한국대사관 이의 제기로 수정"
- 윤석열·김건희 비판하자 행정관료들이 벌인 일
-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 금투세는 '재명세'가 아니라 '주가조작방지세'다
- 뇌졸중 뒤 몸이 불편해진 아빠, 그건 민폐가 아니에요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김건희 공천 루트가 이철규", 또 다른 폭로
- 한미일 외교장관 "연내 3국정상회담 개최 위해 적극 노력"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독대 공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