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신인 감독의 탄생, ‘하이재킹’ 김성한 [홍종선의 명대사⑥]

홍종선 2024. 7. 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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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매버릭’의 쾌감부터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의 감동까지
장면에도 인물에도 낭비 없이 ‘한 호흡’으로 내달리는 휴머니즘
‘한 몸’ 배우들·깊은 주제의식…그 중심에 하정우-여진구가 있다
영화 ‘하이재킹’ 스틸컷 ⓒ이하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키다리스튜디오 제공

괴물 신인 감독의 탄생. 영화 ‘하이재킹’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인간의 평균치를 넘어서는 괴력을 지닌 존재라는 함의를 담아 ‘괴물’이다.

좁은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 지루하다면 한없이 지루할 수 있는 소재다. 시점도 공감이 상대적으로 쉬운 현재가 아니라 53년 전 과거, 1971년이다. 실화 바탕이라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김성한 감독은 50여 년 전 우리나라 강원도 동해상에서 발생한 비행기 공중납치 실화를 ‘문제의 발생부터 해결’, 사건으로 다루지 않았다. ‘갈등의 폭발부터 해소’, 감정의 파노라마로 펼쳤다. 그것도 한 호흡으로 쭉, 긴장 늦추지 않고 힘있게 밀어붙였다. 덕분에 ‘하이재킹’(감독 김성한, 제작 퍼펙트스톰필름·채널플러스 주식회사, 배급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키다리스튜디오)은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탑건: 매버릭’의 쾌감으로 시작해 클린트 이스트우드 연출의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의 감동으로 끝난다.

이를 위해 감독 김성한은 이야기 구성과 흐름, 장면의 전환과 편집에 ‘군더더기’를 남겨놓지 않았다. 다시 봐도, ‘장면의 낭비’ ‘인물의 낭비’가 없다. 깔끔하다. 말이 쉽지, 영화를 만들어본 사람이나 공부한 사람이 아니어도 관객의 경험만으로도 이 군더더기 없는 깔끔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드문 일인지 우리는 안다. 그것을 김성한이, 조감독을 떼고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처음 붙이는 자가 해냈다. 실로 수퍼 파워다.

사람의 목숨이 먼저다! 승객이 우선인 부기장 태인 역의 배우 하정우 ⓒ

감독 김성한에게 괴력을 부여한 것은 감독 본인의 말처럼 ‘하이재킹’의 배우들이다. 아무리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고 해도, 감독이 아무리 자신이 생각하고 목적하는 바를 구현하려고 해도 배우들이 온몸으로 실현해 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예술이 영화다.

‘하이재킹’의 배우들은 그러한 찬사를 받아도 마땅하다. 영화를 본 관객분들이 말씀하시듯, 이 영화의 인물들은 비행기 저 구석의 한 분 한 분, 김선영과 임세미의 특별출연으로 가능했던 두 기장의 아내들까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오랜만에 보는 매끄러운 매무새의 영화, 그 시작에 자연스럽고 현실감 넘치는 연기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하정우와 여진구, 그들이 연기한 태인과 용대가 있다.

공동제작사인 채널플러스 정원찬 대표의 말을 빌리면, 하정우는 현장에서 카메라가 켜졌을 때나 촬영이 끝난 뒤에도 배우들과 소통했다. 기내 승객들이 한 덩어리로 보인다는 호평, 가족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감상의 바탕에 하정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조역, 단역 배우분들께서 ‘주연배우랑 밥 먹어 보는 거 처음이다. 오래 연기했지만, 함께 작품을 만드는 동료라는 인식으로 종종 영화에 대해 같이 얘기 나누는 기회를 만드는 건 드물다’고 말씀하셨다”며 하정우에 대한 배우들의 칭찬을 전했다.

하정우는 “아니다, 그 바탕에 성동일 형이 계시다. 어른으로서 나서는 게 아니라 우리가 모든 걸 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시고 진심으로 배려해 주셨다. 늘 긍정의 웃음을 보여 주셨다”고 공을 돌렸다.

유독 자신에게만 가혹한 시대를 향한 분노에 비행기 공중납치범이 된 용대 역의 배우 여진구 ⓒ

제작사 퍼펙트스톰필름의 강명찬 대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용대가 된 여진구의 폭발력이 영화의 에너지가 됐다고 말했다. “팬들도 많고 스타 배우인데 연기에 있어서는 진심이더라. ‘그동안의 어떤 현장보다 편하고, 그래서 눈치 보지 않고 모든 걸 할 수 있어서 좋다’더니, 정말 눈이 돌아간다는 표현이 딱 맞게 여진구는 없고 용대가 비행기 납치를 주도했다”고 뜨거웠던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성동일은 이전에 보여준 적 없는 ‘칼의 끝’을 슬며시 발견케 하는 진지한 연기를 꺼냈다. 저 칼이 다 나오면 어떤 모습일까를 기대하게 하는 연기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로운 기대를 심다니, 놀랍다.

주로 안방극장 드라마에서 만나던 채수빈은 승무원 옥순 역을 당차게 소화하며 새로운 스크린 스타의 탄생을 예고했다. 은막에 어울리는 마스크와 미소, 영화 문법에도 호환되는 연기력임을 ‘하이재킹’을 통해 스스로 인증시켰다.

비서에게 자리 맡게 시키고 돈 가방 들고 유유히 마지막에 탈 때는 ‘갑’이었으나 비행기 납치 상황에서는 ‘쫄’로 급변하는 박 사장 역의 임현택, 그 곁에 달싹 붙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양 비서 역의 전정관을 비롯해 50여 승객 배우들과 주연들은 서로를 받치고 서로가 빛나게 반사판 역할을 하며 영화를 뜨겁게 완성했다.

새로운 스크린 스타의 부상, 배우 채수빈 ⓒ

그 열기는 온몸을 태워 수증기가 되고, 그 뜨거운 기체는 닫혔던 우리의 차가운 마음에 닿아 눈물이 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눈물이 난다, 눈치 없이 자꾸만 솟는다. 남몰래 훔치는, 20대 청년들 뺨에 흐르는 눈물이 극장에서의 감동을 확장한다.

좋은 영화는 관람하는 동안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보고 나온 뒤에도, 집에 와서도 여운으로 영화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개인적으로 멜로영화든 코미디영화든 액션영화든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죽을 때까지 놓지 말아야 할 질문에 힌트를 주는 작품을 선호한다. ‘하이재킹’에서 인생에 관한 해답에 도움을 주는 핵심 인물이 태인과 용대다.

저마다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검사(변효준 분)의 어머니(전영 분)에게서 그 답을 보는 분도 계실 수 있고, 워낙 인물들이 생생해서 각자 다른 인물에 자신이 투영될 수 있다. 태인과 용인은 개개인의 상황을 넘어, 많은 이의 삶에 대입이 가능한 보편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살 것인가, 살릴 것인가 ⓒ

이 얘기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될 수 있다. 태인과 용대는 목숨을 걸고 하이재킹(비행기 공중납치) 상황에 직면한다.

정확히 말하면 용대는 “죽는 거? 사는 게 더 무서와”라는 말에 아무 잘못 없이 사회적으로 매장된 22년 인생의 피맺힌 울분을 토한다. 그는 죽는 게 두렵지 않고, ‘만에 하나’ 확률일지라도 살아서 북으로 갈 수 있다면, 가서 남쪽에서의 핍박을 떨치고 장교가 됐다는 형을 만나 남 보란 듯이 살 수 있다면…에 목숨을 걸었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를 믿었다.

태인은 “당신이 (어디에든) 살아만 있다면 난 버틸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어여쁜 아내(임세미 분)인 듯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고 비행기에 올랐다. 승객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다는 일념, 기장 규식(성동일 분)의 배려로 공군기 조종사에서 민간여객기 부기장이 된 이후 처음으로 ‘나 홀로 착륙’을 경험할 수 있다는 설렘을 안고 운항을 시작했으나 납치범 용대로 인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태인에게 중요한 ‘위기에 처한 목숨’은 자신이 아니라 승객의 생명이다.

승객의 목숨을 위해 제 목숨을 거는 조종사들. 참다운 봉사, 공직자의 덕목 ⓒ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자신을 살리려 했던 용대, 그 방법을 애먼 이들이 함께 탄 비행기 납북으로 택했던 용대. 중학교를 수석으로 들어갈 만큼 영민했던 용대를 연좌제가 발동하던 시대와 사회에 대한 분노가 삼켰다.

살고자 했던 게 아니라 타인을 살리려 했던 태인, 그 방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은 태인. 2년 전 비행기 납치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태인은 공군기를 조종하든 민항기를 조종하든 사람들의 목숨을 우선하는 선택을 한다.

100만 관객의 사랑, 아직은 목마르다. 그 열 배의 가치를 지닌 수작 ‘하이재킹’ ⓒ

어떻게 살 것인가. 어찌 감히 모두를 살리고, 타인부터 살리는 숭고함을 우리가 흉내 낼 수 있겠는가.

적어도, 자신을 살리는 것에 ‘무한 면죄부’를 주며 ‘자신만 살리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영화. ‘하이재킹’의 부가적 미덕이자 영화를 명작으로 만드는 주제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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