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전자상가에서 영업하던 엔비디아…4천조 기업 도약 비결은? [기자수첩-산업IT]

조인영 2024. 7. 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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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패러다임 꿰뚫어본 투자, 인재 영입, 화끈한 성과주의가 성장동력
메모리 강국 일군 韓, 기업의 과감한 투자_정부 제도 뒷받침으로 AI 시대 선도해야
엔비디아 CEO 젠슨 황ⓒ엔비디아

"한 때 부품 협력사였는데…." 1990년대 PC시대를 경험한 이들은 엔비디아를 그렇게 기억한다. 엔비디아 창업 초기 젠슨 황 CEO가 자사 제품을 받아줄 곳을 찾아 용산전자상가를 자주 찾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현재 시가총액 3조 달러(4000조원) 규모의 초거대 기업 엔비디아의 모습만 아는 세대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과거다. 작은 IT 부품회사로 시작한 엔비디아가 글로벌 빅테크 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으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만 그 중에서도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정확히 꿰뚫어본 뚝심 있는 투자, 적기 인재 영입·육성, 화끈한 성과주의가 공통적으로 꼽힌다.

지금은 없어서 못파는 초히트 상품으로 자리매김했지만, GPU는 엔비디아 창업 당시만 하더라도 시장의 주류가 아니었다. PC 시대를 호령한 인텔의 CPU(중앙처리장치)가 PC의 성능을 좌우했고, GPU 사양은 게임 등을 위한 보조적 역할에 불과했다. 그러나 젠슨 황 CEO는 3D 게임과 이미지 디스플레이에 적합한 GPU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고 제품 개발에 집중했다. 그렇게 출시된 것이 '지포스 256'이다.

새로운 하드웨어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매달렸다. 엔비디아는 AI 개발 플랫폼 '쿠다(CUDA)'를 무료 공개함으로써 대다수의 개발자들을 엔비디아 생태계로 끌어들였다. 비주류의 주류화를 일궈내고 소프트웨어 생태계마저 잡은 엔비디아는 게임 산업, 코인 열풍, 생성형 AI 이슈를 두루 거치며 명실상부 AI칩 1위 기업으로 성장한다. 최고 사양 GPU인 H100은 대당 4000~5000만원인데다 제품 도착까지 반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받고 싶어할 만큼 가치가 치솟았다.

30여년 만의 성과는 단순히 혁신 제품만 만들었다고 주어지지는 않는다. 엔비디아는 위기도 적잖이 겪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젠슨 황 CEO는 자신의 급여를 1 달러로 깎는 대신 연구 개발에 몰두 할 수 있도록 조직을 개선했다. 또 직원들이 속한 팀·구성원에 구애받지 않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미션 이즈 보스(미션이 보스다)'라는 조직문화도 구축했다. 직원들은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한다는 'SOL(빛의 속도로 대응한다)'이라는 표현에도 익숙하다.

엔비디아는 계속해서 1등 기업으로 남을 수 있을까. '타도 엔비디아'를 외치는 경쟁사들의 추격은 거세다. 대규모 실탄을 보유한 빅테크들이 인력 쟁탈전 및 스타트업 인수를 위해 수백 억원을 쓰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혁신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한 빅테크들의 경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주목할 것은 엔비디아의 방향성이다. GPU와 AI 가속기로 성공했지만 이 자리에만 안주하려 하지 않는다. 반도체 뿐 아니라 바이오, 로봇, 자율주행, 전장 등에 수천 만 달러를 투자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AI칩 공급자를 넘어 종합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다. 이미 여러 기업으로부터 글로벌 인재를 속속 영입하고 있다. 엔비디아 성공 방정식이었던 미래를 내다 본 투자, 적기 인재 영입·육성, 철저한 성과주의로 또 한 번의 혁신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기저에는 퍼스트 무버(선도자)로서 끊임없이 체질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과감한 개척 정신이 있다. 수 많은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종자)들이 AI칩에만 목표를 두고 있는 것과 대비를 이룬다.

우리 기업들은 어떤가.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이라는 위상을 가진 동시에, 엔비디아 이슈에 따라 주가가 쉽게 출렁이는 신세이기도 하다. SK는 HBM에서, 삼성은 HBM에 더해 AI 가속기 개발에도 나서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AI 시대에 제대로 대비할 수 있는지 의문부호가 생긴다.

진정한 혁신은 1등 빅테크와의 동맹 보다는, 엔비디아처럼 다음 세대를 내다본 선견지명에서 온다. PC→모바일→AI 패러다임 변화 속 다음 시대는 어떤 시대가 펼쳐질 것인지, 그 시장을 선도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 철저한 자가진단이 필요하다.

최근 삼성은 수장을 교체했고 SK는 '반도체위원회'를 신설했다. 국회도 반도체 특별법을 추진하는 등 민-관을 불문하고 엄중한 위기 의식이 느껴진다. 반도체 생태계를 한 번 뒤엎어보겠다는 기업의 기술 혁신과 정부의 화끈한 지원 사격이 있어야만 엔비디아를 넘어설 저력을 마련할 수 있다. 메모리 최강국을 일궜던 한국 반도체가 AI 시대를 맞아 다시 한 번 전성기를 꽃피우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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