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한 이를 만난 국회의원이 보인 의외의 반응 [신필규의 아직도 적응 중]

신필규 2024. 7. 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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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필규의 아직도 적응 중] 막말하는 사람의 초라함을 드러낸 웃음

[신필규 기자]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6월 26일 오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있다.
ⓒ 남소연
누군가 당신을 두고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면 어떨까. 친한 사람이 사석에서 농담처럼 말한 것도 아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당신의 발언을 비난하며 그런 표현을 사용했다. 당연히 불쾌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을 마주칠 일이 생겼다.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가. 어디선가 있었을 법한 이런 상황이 실제로 발생했다. 바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장에서다.

6월 26일 보건복지위에서는 '의료계 비상 상황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관련자라고 할 수 있는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도 참고인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청문회장에는 보건복지위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도 있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이 '미친 여자'라고 비하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어쩌다 이런 말까지 나왔는지 설명하면 이렇다. 2021년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중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한시적으로 취소하는 이른바 '의사면허 취소법'을 발의했다. 그러자 의사들의 집단 반발이 이어졌고 민주당 의원들은 당시 최고위 회의에서 이를 비판했다.

당 대변인이었던 강선우 의원은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여성 환자에게 전신 마취를 한 후 성폭행을 저지른 의사에게 의협이 고작 2년의 회원자격 정지라는 가벼운 징계를 한 사례를 언급하며 '이런 의사 역시 평생 의사여야 하느냐'고 했다. 그러자 임현택 의협 회장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 '미친 여자'가 의사를 전 의사를 지금 살인자, 강도, 성범죄자로 취급했다"고 남긴 것이다.

"임현택 참고인 저 기억하세요? 제가 21대 국회에서 대변인으로 활동할 때 저한테 미친 여자라고 그러셨죠?"

6월 26일 청문회장에서 임현택 의협 회장을 마주한 강선우 의원의 첫 마디다. 이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사달이 나겠구나. 심지어 임 회장은 잠시 웃음을 참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내가 생각한 다음 장면은 강 의원의 호통이었다. 어떻게 국회의원에게 그런 모욕적인 말을 할 수 있느냐는 식의.

그건 할 수 있고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정치활동을 하다 모욕을 당하는 건 유권자로서도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물론 혼날 짓을 했을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런 맥락에서 모욕한 사람을 향한 호통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강 의원은 호통은커녕 언성 한번 높이지 않았다. 대신 차분하게 임 회장이 자신을 모욕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할 말 없느냐고 물었고 임 회장이 자신의 행동에 이유를 대며 변명하려는 기색이 보이자 바로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저한테 미친 여자라고 한 것에 대해서 하실 말씀 있냐고요? 없어요?"라고 되물었다.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이런 경우 대화를 잘 끌어나가지 않으면 상대방이 자기 할 말만 하게 만들고 결국 변명의 기회를 주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이야기는 산으로 가기 마련이고 결국 의미 없는 실랑이만 이어진다. 하지만 강 의원은 임 회장의 잘못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밖으로 대화가 새어 나갈 틈이 없도록 만들었다.

막말에 대한 인상적인 대응
     
사실 임 회장의 막말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판사를 모욕하고 공직자를 조롱하고 심지어 집단휴진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동병원 의사들에게 "멀쩡한 애 입원시키는 사람들"이라는 말도 했다. 심지어 교도소행 무릅쓸 중요한 환자가 없으니 구토 환자에게 어떤 약도 쓰지 말자고도 했는데 강 의원의 지적처럼 이는 국민에 대한 겁박이나 다름없다.

청문회장에서 강 의원은 이러한 임 회장의 말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본인의 언행에 상처받은 국민들에게 임 회장이 사과해야 하지 않겠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흥미롭게도 임 회장은 몇 차례 '답변해도 됩니까'라고 하는데 그때마다 강 의원은 매우 단호하게 답했다.

"아뇨, 사과해야 되지 않겠냐고요."

만약 이 상황에서 강 의원이 답변하시라고 했다면 아마 임 회장은 자기 행동에 대한 변명을 포함해 자신에게 유리한 말들을 늘어놓았을지 모른다. 임 회장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아마도 그런 흐름을 예상한 듯 강 의원은 답변이 아니라 사과해야 하지 않은지 물었다. 상대방의 선택지를 사과하거나 하지 않거나로 좁혀버린 것이다. 상대가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거나 혹은 '명백한 잘못조차 인정하지 않는 뻔뻔한 사람'임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구도를 형성한 것이다.

"국민이 가진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생각된다고 생각합니다."

강 의원의 거듭된 압박에 대한 임 회장의 마지막 발언이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말을 저렇게 했을까 싶었다. "생각된다고 생각합니다"는 비문이다. 아마 '속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모욕죄에 해당할 정도가 아니라면 막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질문은 '막말을 했으면 사과해야 되지 않겠느냐'였다. 완벽한 동문서답이다. 임 회장은 강 의원이 자신을 향한 모욕을 소환하며 호통을 치다 화를 내기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말싸움이 되고 난장판 속에서 자기도 할 말을 다 하는 그림을 기대했을 수 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강 의원은 애초에 임 회장이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6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
ⓒ 오마이TV
 
이 짧은 질의응답의 마지막을 장식한 강 의원의 웃음 또한 기억에 남았다. 웃음이 의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어이가 없어서 그랬을 거란 사람도 있고 임 회장이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보고 그랬다는 반응도 있다. 나는 강 의원의 웃음이 임 회장이 얼마나 초라한 사람인지 보여주는 웃음이라고 생각했다.

막말을 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상처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비난하고 가깝게 지내고 싶지 않아 한다. 상처 받기 싫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두려운 존재다. 하지만 강 의원은 임 회장이 발언에 대한 책임이 추궁되었을 때 당황하고 혼비백산하는 사람이라는 걸 공개했다. 막말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아주 초라하고 하찮은 인간임을 드러낸 것이다. 그저 웃음으로 넘길 수 있을 만큼.

나는 강선우 의원이 보여준 차분함과 품위 그리고 막말의 초라함에 방점을 찍은 웃음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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