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가 필독서인 이유

김성호 2024. 7. 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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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독서만세 232]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성호 기자]

사피엔스. 그 이름만으로도 대단한 울림이 있다. 사람을 사람이라 하지 않고 사피엔스라 부를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생물학이 다루는 수많은 종 가운데 하나임을 인식하게 된다.

호모 사피엔스, 오늘의 인류를 이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를 포괄하는 아종이다. 물론 아종이라 해도 별 의미가 없는 것은 우리를 제외한 속 내, 또 아종 내 모든 종이 사실상 멸종했기 때문이다.

근래 인기 높은 팬더와 백곰, 불곰, 지리산 반달곰까지도 모두 살아있는데,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호모 사피엔스 이달투 같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근연종이며 아종들이 모조리 사라졌단 건 놀라운 일이다. 그들이 사라진 주 원인이 바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란 사실은 더욱 그렇다.

가까운 모든 종이 사라져서일까. 동등한 선에 두고 유사성과 차이점을 살필 존재를 잃어버린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생물군과 떨어뜨려 생각할 때가 많다. 다른 생물들과 달리 인간은 그저 평범한 생물이며 동물이 아니라고 여기는 태도가 이로부터 태어난다. 만물의 영장, 지구의 주인, 나아가 이제껏 없었던 존재를 탄생시키는 이로써 말이다.
 
▲ 사피엔스 책 표지
ⓒ 김영사
 
지난 10년,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사피엔스>는 2011년 출간된 유발 하라리의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2010년대 들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출판물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테다. <총, 균, 쇠>가 새삼 불러일으킨 빅히스토리 바람을 등에 업고서, 유인원부터 미래 인류까지의 역사를 써내려간 이 책의 돌풍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일 년에 평균 책 한 권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한국인의 서재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되는 책이니 말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유대계 역사학자로 중세전쟁사를 전공으로 삼아온 하라리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역사교수로 재직했으나 학계에서 이렇다 할 명성을 얻지는 못했던 그가 <사피엔스> 출간 뒤 일약 세계적 스타로 떠올랐다. <총, 균, 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일군의 진화심리학자들이 촉발시킨 빅히스토리 열풍에 실려 책은 그야말로 선풍적 인기를 구가했다. 마크 주커버그 같은 젊은 유대계 인사들의 극찬이 탄두를 쏘아올리는 로켓처럼 대단한 효과를 과시했음은 물론이다.

책이 다루는 것은 인류가 걸어온 길 전부다. 수많은 동물종과 생존 그 자체를 위해 경쟁해야 했던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지구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나름의 논리로 서술해나간다. 특히 기존 역사서술에서 소외되기 일쑤였던 농업혁명 이전의 혁명적 진전, 즉 인간이 사고하고 소통하여 다른 종에 비교우위를 갖게 된 일대 사건을 흥미롭게 서술한 점이 인상적이다.

책은 크게 4장으로 나뉜다. 첫 장이 인지혁명, 다음은 차례대로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이다. 인지혁명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다른 종을 압도하는 경쟁력을 얻었고, 농업혁명으로 전과 차원이 다른 규모의 공동체를 건설하게 되었으며, 제국주의의 바람에 실려 문명이 전 지구적으로 통합되었고, 오늘에 이르러 과학혁명을 겪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것을 촉발했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라고 부를 수 있다. 왜 하필 그 돌연변이가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사피엔스의 DNA에 등장했을까? 우리가 아는 한 그것은 순수한 우연의 산물이었다. -44p

인간은 역사의 어느 지점에서부터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사고하고, 이를 가지고 다른 개체와 소통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에 대한 관념을 갖는 순간, 시간을 내포하는 약속을 비롯하여 온갖 개념이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 더 다양한 소통방식은 더 다양한 개체와의 공존을 가능케 했다. 공존을 위해 필요한 사냥과 수렵에 있어서도 큰 발전이 이뤄졌다.

이를 바탕으로 무리의 규모가 가족과 가족 수준을 벗어나 50명에서 150명에 이르는 집단으로 증가했다. 관념과 그를 믿는 상상력의 태동은 인간이 공동체, 국가, 법, 민족, 신앙, 법인, 돈 등 이전의 세상에선 존재하지 않던 개념을 존재하는 것으로 뒤바꾸어 놓았다. 신체능력에서 호모 사피엔스보다 우월했던 네안데르탈인 또한 더는 적수일 수 없었다.

인류 역사 전반을 폭넓게 오가는 대학자의 보폭

하라리는 농업혁명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인류가 옮겨온 것이 개체로서는 진보가 아닌 퇴화, 이른바 거대한 사기에 당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의 측면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농부는 수렵채집생활을 하는 과거 인간보다 가난하고 불행했으리란 게 하라리의 주장이다.

약간이나마 늘어난 생산물은 권력자의 손아귀로 들어가고, 대부분의 인간은 더 비좁은 공간에서 더 비위생적인 환경에 놓여 더 많아진 이들을 부양하는 일에 막중한 노동력을 바쳐야 했다는 이야기다. 또 이미 수렵채집생활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게 된 인류가 그 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 주장을 더한다.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하지만 이런 진화적 계산법에 왜 개인이 신경을 써야 하는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호모 사피엔스 DNA 복사본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129p
 
섭취하는 영양소는 특정 작물에 한정돼 영양불균형과 영양실조가 자연스런 일이 되었다는 주장, 또 일시적으로 큰 수확이 따르는 탓으로 계층분화며 분쟁이 잦아졌다는 주장도 더해진다. 그로부터 개체는 고난을 겪었으나 종은 번성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구는 크게 늘었고 잉여산물로부터 가축을 사육하는 법을 본격적으로 터득했으며, 무엇보다 잉여산물을 저장하고 계산하기 위한 기술로써 문자와 학문이 태동하고 발전하게 된다. 이것이 그 자체로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고, 인류는 다음 장으로 돌입하기에 이른다.

<사피엔스>에 대한 여러 비판들, 이를테면 학술적으로 논란이 되는 서술이 많다거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시각이 엿보인다는 학계의 주장엔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한 학자가 역사학의 세부분과들은 물론이고 과학과 경제, 철학 등 다른 학문분과들을 넘나들며 제 생각을 펼친 대중서이기에 가질 밖에 없는 문제를 이 책 또한 노정하고 있는 것이다. 부실한 출처와 실증적 연구의 부재, 무엇보다 통상의 논문과 달리 동료 학자의 교차비판을 피해 출간된 대중서란 점이 이러한 취약점을 그대로 노출하도록 했다.

그러나 <사피엔스>가 오늘의 독자에게 의미 깊은 저술이란 점 또한 확실하다. 기존 역사학계가 이루지 못하였던 대중의 관심을 크게 환기했다는 점도. 인류가 오늘의 문명을 이룩하고 심지어 그 장래를 장담할 수 없는 혁신적 기술의 세계로 접어들기까지, 지나쳐온 중요 지점들을 이 책이 흥미롭게 살핀다. 그로부터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드문 우리 독자들은 인간이 저지른 무수한 잘못과 약간의 이로움에 대하여 평가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지식을 넘어 지혜로 이끄는 이상적 대중서

기존 통념과 다수설을 뒤집는 몇몇 주장 또한 신선하다. 이를테면 공산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를 하나의 종교로 바라본다거나, 여러 지역 제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뒤처졌음이 명백했던 근대 유럽국가들이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신대륙을 정복하고 과학혁명을 이룩한 이유를 설하는 점 등이 그러하다. 하라리의 분석 그대로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수많은 학자들의 비판처럼 편협하고 위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질문과 시각, 가설들이 독자로 하여금 지식 아래 깔린 이면을 돌아보고 스스로 사유하게 하는 힘을 준다는 점은 명백하다.

<사피엔스>는 대중서로서의 가치가 충만한 저작이다. 누구든 이 책으로부터 기존에 알지 못했고, 충분히 돌아보지 못하고 무시했던 중요한 지식을 배울 수 있다. 또 약간의 운이 따른다면 그와 같은 지식들로부터 새로운 지혜가 태어나는 순간도 맛볼 수 있을 테다. 책이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게 바로 이와 같다.
 
학문 분과로서의 역사학이 지닌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특정한 역사 시대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왜 하필 일이 그런 식으로 전개되었으며 다른 식으로는 전개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특정 시대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만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실현된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사후의 깨달음을 근거로, 어째서 그런 결과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증명도 반증도 불가능한 이론으로 설명한다. 반면에 해당 시대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진행되지 않은 경과를 훨씬 더 많이 인식하고 있다.
사실 그 시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 다시 말해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야말로 그 시대를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후의 깨달음에 의해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정작 그 시대에는 전혀 명백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 역사의 철칙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벗어난 것인가, 아니면 최악의 위기가 곧 닥쳐올 예정인가? 중국이 성장을 계속해서 선도적 초강대국이 될까? 미국은 헤게모니를 잃을까? 일신론적 근본주의가 급증하는 것은 미래의 파도일까 아니면 장기적 중요성은 별로 없는 국지적 소용돌이일까? 우리는 환경적 재앙으로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술적 파라다이스로 향하고 있는가? 어느 쪽이든 이를 뒷받침하는 훌륭한 주장이 존재하지만, 확실히 알 방법은 없다.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은 명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338, 339p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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