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혈압처럼… 건선도 잘 관리하면 증상 조절되는 병"
'건선 명의' 삼성서울병원 피부과 이주흥 교수
피부질환 중에서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평생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 있다. 바로 ‘건선’이다. 건선은 은백색의 피부 각질로 덮인 붉은 판이 나타나는 것이다. 겉으로 나타나는 질환인 만큼 환자들에게 큰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주기도 한다. 또 건선 환자의 약 10%는 관절염이 발생하며, 건선을 방치하면 여러 합병증까지 나타날 수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건선을 단순한 피부질환이 아닌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전신질환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건선 환자는 15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렇다면 건선은 평생 어떻게 긍정적으로 관리하고, 치료하는 게 좋을까. 건선 명의 삼성서울병원 피부과 이주흥 교수에게 물었다.
"건선은 대표적인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이다. ‘만성’이라는 건 끝을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당뇨·고혈압·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경우에 따라 평생 혹은 10~20년 지속될 수도 있다. 악화와 호전이 반복되기 때문에 평생 관리해야 한다. ‘염증성’이라는 건 병의 기전을 말한다. 염증이라는 시스템 자체는 사실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져 있지만, 염증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곳에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 몸을 망가뜨리는 위해 요소가 될 수 있다. 건선은 그런 상황에 속하는 것이다. 또 건선은 ‘피부질환’이라 말하지만, 사실 과거와 달리 영역이 넓어졌다. 피부에만 속하는 병이 아닌 관절염을 비롯한 다른 영역의 동반질환들도 있고, 단지 질환의 영역을 벗어나 심리·정신적인 영역, 사회적인 영역까지도 중대한 영향을 주는 질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건선은 어떤 모양으로 생기나? 통증도 있나?
"기본적인 모양은 동전처럼 동글동글하다. 하지만 이들이 융합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크기가 작은 것도 있고, 융합이 이뤄지면 손바닥보다 더 큰 판을 이루기도 한다. 건선은 ▲붉은 홍반이 생기고 ▲피부가 두꺼워지고 ▲각질이 많이 일어난다는 특징이 있다. 가려움증이 생기기도 하지만, 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통증은 거의 없다."
-건선이 잘 나타나는 부위는 주로 어디인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에나 다 생길 수 있다. 다만, 얼굴이나 손등 같은 노출된 부위엔 잘 생기지 않는 편이다. 건선은 자외선에 약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옷에 의해 감춰져 있는 부위에 많이 나타나는데, 그중에서도 마찰과 압박, 스침이 있는 곳에 흔하다. 예를 들어 관절 부위,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은 엉덩이, 군인이나 운동선수처럼 활동성이 많은 사람은 정강이 같은 부위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 입속이나 요도 등 점막 부위에도 생길 수 있고, 두피에도 잘 생긴다."
"아직 모든 것이 다 밝혀져 있진 않다. 다만, 상당수가 면역 조절 유전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피부 각질 형성 세포의 증식 및 염증 반응이 왜 지속되는지가 중요한데, 염증을 상위에서 조절하는 건 몸의 면역 체계다. 물론 염증이 스스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면역 체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면역 체계 조절 인자를 포함한 유전자 부분에 문제가 생겨서 염증이 지속된다는 것이 가장 최근에 주목하는 원인이다. 다만, 건선은 꼭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병은 아니다. 환경적인 요인들에도 많은 영향을 받아 유발될 수 있다."
-그렇다면 선천적, 후천적으로 다 나타날 수 있나?
"그렇다. 앞서 말한 건선 유발 유전자는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지만, 꼭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건선이 생기는 건 아니다. 유전자가 있는 사람들은 건선이 쉽게, 일찍 생긴다고 보면 된다. 보통 10대 후반~20대 초반에 생겨 오래가면서 더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유전자의 영향을 적게 받거나 없는 사람은 주로 40대 이후 늦은 나이에 건선이 생기며 증상도 약한 편이다. 또 유전자와 별개로 환경적 요인 등으로 인해서 후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건선이 정신·심리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건선 환자들의 상당수가 굉장히 심각한 정도의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심리적으로 큰 위축감으로 간혹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 동반 질환 중에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심각한 정신 질환들이 있기도 하다. 또한, 직장이나 결혼, 대인관계 등 사회적 영역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당뇨나 고혈압 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질환인 반면, 건선은 노출된 부위가 아니라 하더라도 언제든지 눈에 보일 수 있는 피부병이기 때문이다."
-관절염, 당뇨병 등의 위험도 크다던데?
"그렇다. 과거에는 건선을 피부질환이라고만 생각했으나, 최근 건선이 피부에만 국한된 질환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즉, 동반된 다른 질환들이 있는 것.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관절염이다. 피부와 관절까지 침범한다고 보는 ‘건선관절염’이 있다. 또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지혈증 같은 대사성 질환들도 건선 환자에게 동반돼서 발병할 확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진단은 어떻게 이뤄지나?
"대부분 전문의가 눈으로 보고, 만지는 등 진찰을 통해 임상적으로 이뤄진다. 다만, 일부 건선인지 다른 질환인지 분명치 않은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어 만성 습진이나 비강진, 드물지만 일부 피부암 등과 혼동할 수 있으므로 감별을 위해 조직 검사를 하기도 한다."
-중증도에 따라 분류가 나뉜다고?
"경증, 중등증, 중증으로 3등분을 하기도 하고, 경증과 그 외 중등증~중증을 묶어 분류하기도 한다. 건선의 중증도 분류와 관련해서는 과거부터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다른 질환들의 중증도는 보통 생존율과 연관된다. 가령 암을 객관적인 생존율에 따라 1~4기로 나누는 식이다. 하지만 건선은 그 자체로 죽고 사는 병은 아니다. 즉, ‘삶의 질 영역에 있는 질환’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건선을 객관적으로 피부에 침범한 면적 비율 등으로 분류했으나, 최근 10~20년의 경향은 환자들이 느끼기에 삶의 질을 얼마나 침해하는가와 연관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보기엔 경증일지라도, 만약 얼굴이나 성기 부위 등에 나타난다면 환자가 받는 스트레스와 삶의 질 침해는 매우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은 경증의 범위를 좁히고, 중등증과 중증은 한 카테고리로 묶어 분류하는 추세다. 건선의 중증도를 환자 입장에서 많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우선 경증은 가장 안전하게 쓸 수 있는 도포제(바르는 약)로 치료한다. 중등증과 중증 영역에 들어가게 되면 주로 경구제(먹는 약), 광선 치료 등을 하게 된다. 최근에는 중증 환자들에게 ‘생물학적제제’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사실 생물학적제제는 약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완전히 본인 부담을 한다면 1년에 800~1500만 원 정도로 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건선은 만성질환으로, 평생 써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본인 부담을 60%나 10%만 내면 치료할 수 있는 건강보험이나 산정 특례 등의 제도가 마련돼 있다."
"모든 환자한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역설적으로 자외선에 의해서 악화되는 건선도 일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외선에 의해 좋아지기 때문에 일광욕은 가장 오래된 치료법이다. 특히 자외선 중에서도 건선 치료에 가장 도움이 되는 파장대를 뽑아서 만든 치료기를 통해 효과적인 치료를 해왔다. 지금도 환자들에게 장기적인 유지 요법을 위해 일광욕을 많이 권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광욕할 수 있는 계절이 길지 않고, 생활 공간이 대부분 아파트라서 일광욕이 쉽지 않다는 제한점이 있지만, 할 수만 있다면 좋은 방법이다. 이땐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광선이 골고루 흡수될 수 있게 베이비 오일을 바르고, 창문을 열어 직사광선에 노출 시키는 게 좋다."
-건선 환자가 주의해야 할 생활 습관이 있다면?
"건선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스트레스다. 평소 스트레스를 잘 견딜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건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식을 마련해 놓기를 권한다. 청소년은 목감기에 의해 건선이 유발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추울 때나 사람이 많은 장소 등 취약한 상황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손과 구강 위생 등을 신경 쓰는 게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한, 고혈압·고지혈증·당뇨 등 대사 이상 질환이 건선과 동반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체중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체질량 지수와 건선의 중증도가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체중이 많이 나가면 치료 또한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에 건강한 식단과 적절한 운동은 필수다. 지중해식 식단, 해산물, 올리브유, 견과류, 채소 등이 비만과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건선은 건조한 피부와도 관련이 있나?
"건선 환자는 피부 증식 속도가 빨라서 피부의 맨 마지막 단계인 각질층을 제대로 생성하지 못한다. 그래서 완성도 높은 각질을 만들지 못해 각질이 일어나고, 수분이 많이 손실된다. 건선 환자의 병변 부위가 건조한 이유다. 그리고 그 건조증은 또 건선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건선 환자는 항상 보습을 잘 하는 게 중요하다. 충분한 수분 섭취를 하고, 보습제를 바르고, 가습기를 사용하는 게 좋다."
-건선은 완치가 가능한 질환인가?
"다른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완치보다는 ‘조절하며 사는 질환’이다. 치료를 중단하면 다시 재발할 수 있다. 하지만 꾸준히 치료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 관리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생물학적제제를 썼을 때의 목표는 병변의 ‘완전 소실’ 혹은 ‘거의 소실’이다. 쉽게 말해, 수영장이나 사우나를 가는 게 가능해질 정도로 치료한다."
"여전히 건선에 관한 잘못된 사회적 인식과 편견, 부족한 정보 등으로 혼자 끙끙 앓고 있는 분들이 많다. 과거 대한건선학회장을 할 때도 건선의 인지도를 높이고, 편견과 차별 완화를 위한 캠페인을 많이 했었다. 환자들이 좋은 치료에 빨리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의 보완,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환자에 대한 메시지도 있었다. 건선은 만성질환으로 비록 뿌리를 캐낼 순 없어도, 목욕탕을 갈 수 있을 정도의 발전된 치료를 통해 일반인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충분히 도와드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 그늘에 있기보다는 당당하게 나와 주시면 좋겠다. 이로 인해 일상의 복귀는 물론, 지금껏 받아왔던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 스스로 본인을 얽어맸던 것에서 풀려나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삼성서울병원 피부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건선, 여드름, 혈관종, 화염상모반 등을 전문적으로 진료하고 있다. 과거 인하대와 성균관대 의대에서 강의한 이력이 있는 이주흥 교수는 현재 성균관대 의대 학장도 역임하고 있다. 실제로 만나본 이주흥 교수는 진료에 관한 열정은 물론, 엄청난 강의력을 선보였다. 건선 분야 명의로 손꼽힐 만큼 어려운 내용도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쉽게 설명했다. 이주흥 교수는 학술 활동도 적극 임하고 있다. 2011~2015년에는 대한건선학회 회장을 연임했고, 대한피부과학회, 대한화장품의학회, 대한여드름학회 등 다양한 학회에서 임원직을 맡았다. 다수의 경험과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환자들의 피부 건강 챙김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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