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금배지가 갑질 면허증인가

이종선 2024. 7. 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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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선 정치부 기자

국회의원 '슈퍼갑' 시대인데
호통·삿대질로 윽박만 질러
최소한 품격 갖춘 대표 되길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국회에서 열리는 청문회나 상임위원회 회의들을 보다 보면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제법 많다.

의회라는 곳이 원래 서로 다른 이해관계나 의견을 조정하는 장이니 어느 정도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은 국민대표로서 행정부 공무원들의 잘못을 바로잡거나 국민적 의혹을 대신 해소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겠다. 그럼에도 매번 호통과 삿대질이 일상처럼 된 국회 회의들을 보다 보면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청문회를 비롯해 국회 상임위의 공식 일정은 대부분 ‘전체회의’든 ‘소회의’든 회의란 형태로 이뤄지는데, 민간 기업에서도 회의하면서 탁자를 탁탁 치고 상대방에게 삿대질하며 윽박지르는 일이 잦은지 잘 모르겠다. 그런 구시대적인 모습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뽐내는 느낌이랄까. 아예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나 존중조차 찾아보기 힘든 모습들도 보인다. 지난 21일 야당 단독으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채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가 그랬다.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 일부 인사들이 청문회 시작부터 증인 선서를 하지 않은 게 의원들로선 불쾌했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표 낼 생각 없냐” “위원장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어디서 그런 버릇을 배웠느냐” “토 달지 말고 사과하세요” 같은 정청래 법사위원장의 말들은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없는 듯 보였다. 의원 질의 중 끼어들었다며 ‘10분간 퇴장’ 명령을 받은 전직 장관을 향해 “(복도에서) 한 발 들고 두 손 들고 서 있으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 80대 박지원 의원 발언은 어른의 품격을 의심케 했다. 이들이 아무리 국민적 손가락질을 받는 사건 관계자라 하더라도 TV로 생중계되는 청문회장에서 이렇게까지 함부로 하는 모습을 보며 ‘국회의원은 저렇게 해도 되나’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청문회장은 말 그대로 ‘청문(聽聞)’, 들으려고 하는 곳이지 재판하는 곳이 아니다. 그날 법사위 청문회장 외에도 매번 인사청문회를 접할 때마다 의원들이 후보자들 검증을 내세워 답변을 듣기는커녕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내지르는 모습들을 자주 본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라는데, 과연 2024년 대한민국 국민 평균 수준이 이러한 것인가.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국회의원이 정권의 비리에 맞서 권력자에게 호통을 치고, 기득권을 누린 공무원들에게 일갈하는 모습이 지조 있고 강단 있는 국회의원의 표상처럼 여겨졌다. 1989년 5공 청문회에서 ‘청문회 스타’가 된 노무현 통일민주당 의원이 대표 사례다.

하지만 지금은 어지간한 공무원보다 국회의원이 ‘슈퍼 갑’인 시대다. 내 마음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내 말 안 듣는다고 호통치고 모욕을 주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그냥 만만한 을에게 갑질하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난 28일에도 한 야당 국회의원이 정부 청사 항의 방문에 출입을 시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민원실 직원에게 한바탕 퍼붓는 모습이 논란이 됐다. 예리한 한 방은 홈런으로 이어지지만, 요란한 헛스윙은 실소만 자아낼 뿐이다. 증인이나 후보자, 공무원 등을 몰아세우고 윽박지르는 의원의 모습을 유튜브로 보며 환호하는 지지자도 일부 있겠지만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 눈에 그런 모습들은 그저 ‘꼴불견’이다.

역설적으로 밖에다 그렇게 갑질하는 사람들이 권력자 앞에서는 낯 뜨거울 정도로 복종하는 모습들도 보인다. 권력에 줄 대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으면 정의의 사도 같은 배역은 자제하든가, 정의의 사도를 자처했으면 최소한 점잔은 빼면서 줄을 서야 할 텐데 스스럼없이 ‘1인 2역’들을 한다.

그래서 말인데 국회의원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동료 의원들의 인준을 거쳐야 다음 임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누가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줬으면 좋겠다. 최소한의 품격은 있는 이들이 국민대표 역할을 하도록 말이다.

이종선 정치부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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