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극우 팬데믹

임성수 2024. 7. 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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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맡았던 스티브 배넌은 최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집회에서 "법무부를 숙청하겠다. FBI를 완전히 해체하겠다"고 했다.

트럼프에 대한 수사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법무부를 '무기화'한 결과이며, 그래서 정권이 교체되면 법무부는 마땅히 숙청돼야 한다는 게 배넌의 주장이다.

미국 '대안 우파'의 아이콘인 그는 극우파가 약진한 최근 유럽의회 선거를 언급하면서 미국에서도 트럼프가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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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수 국제부 차장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맡았던 스티브 배넌은 최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집회에서 “법무부를 숙청하겠다. FBI를 완전히 해체하겠다”고 했다. 트럼프에 대한 수사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법무부를 ‘무기화’한 결과이며, 그래서 정권이 교체되면 법무부는 마땅히 숙청돼야 한다는 게 배넌의 주장이다. 미국 ‘대안 우파’의 아이콘인 그는 극우파가 약진한 최근 유럽의회 선거를 언급하면서 미국에서도 트럼프가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암시했다. 그러면서 “유럽이 우파로 불타고 있다”고 했다.

‘톨레랑스(관용)’의 나라 프랑스에선 극우파의 얼굴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전성기를 맞았다. 30일 조기총선에서 RN이 선거를 휩쓸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졌다. RN은 프랑스 우선주의, 이민 통제, 유럽연합(EU) 탈퇴 등 극우파가 매혹되는 소재를 20대 정치인 조르당 바르델라를 내세워 세련되고 부드러운 태도로 요리한다. 독일에서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우리나라 먼저’를 내세워 유럽의회 선거 득표율 2위에 올랐다. AfD는 일부 의원의 나치 친위대 두둔 발언으로 유럽의회 극우 그룹인 ‘정체성과민주주의(ID)’에서조차 퇴출당한 정당이지만, 집권당인 사회민주당보다도 많은 표를 얻었다.

올 하반기 EU 의장국을 맡은 헝가리는 아예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을 본떠 MEGA(Make Europe Great Again)를 내세웠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최근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100%, 아니 101% 신뢰한다”고 말했다. 남미의 대표 극우파 정치인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유럽의회 선거 직후 “유럽에서 새로운 우파가 엄청난 진전을 했다”며 ‘극우 돌풍’에 반색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참혹한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는 극우파가 휘어잡았다.

‘위대함’을 과시해도, ‘부드러움’을 내세워도 극우는 극우다. 극우파가 위험한 것은 그들이 우파여서가 아니라 극단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선 결과에 불복해 의사당 점거 폭동을 선동하고도 재선 승리 뒤엔 ‘숙청’을 말한다. 바르델라는 집권도 하기 전에 이슬람 이민 사회를 겨냥한 ‘문화전쟁’을 선포했다. 베냐민 네타냐후는 전 세계의 반대에도 하마스 ‘박멸’을 내세우며 인구 밀집 지역을 공격 중이다. 극단주의는 타협보다는 대결을 원한다. 연대보다는 고립을, 통합보다는 분열을 선호한다.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태도, 제도와 규범을 무시하고 특정 정치인을 숭배하는 문화도 극단주의의 주요 증상이다.

전염병처럼 번지는 극우 바람에서 한국은 예외일까? 지금 한국의 주요 정당 중 정책과 정강에서 ‘극우 정당’이라 할 만한 정당은 없다. 그러나 거대 야당의 정치 행태에서는 극우파에서나 볼만한 극단주의가 감지된다. ‘개딸’이라 불리는 강성 지지층은 대표 1명을 무오류의 존재처럼 결사옹위한다. 정당 대표를 ‘아버지’라 칭송하는 낯 뜨거운 아첨, 그와 비슷한 아부가 공개 석상에서 나온다. 수사가 마음에 안 들면 검사를 탄핵하자고 하고, 재판이 마음에 안 들면 판사를 좌표 찍어 공격한다. 배넌 같은 극단적 유튜버의 방송은 사랑하면서도 기성 언론은 ‘애완견’이라고 모욕한다. 이런 극단주의의 증상이 민주화에 앞장섰다는 정당, 수차례 집권까지 했던 정당에서 두드러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극우 팬데믹을 강 건너 불구경할 수만은 없는, 기이하고도 불안한 시절이다.

임성수 국제부 차장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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