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선 넘는 유튜브 예능들

양성희 2024. 7. 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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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수백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유튜브 예능들이 연이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구독자 318만 명을 자랑하던 인기 채널 ‘피식대학’이 경북 영양군을 찾아 현지 음식을 “할매 맛”이라 폄훼하는 등 지역 비하 논란을 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지상파의 코미디 폐지 이후 규제가 없는 유튜브에서 활로를 찾아온 유튜브 예능들이 아슬아슬 선 넘는 행보로 위기를 자초한다는 지적이다.

구독자 140만 명을 보유한 개그 유튜브 채널 '싱글벙글'은 지난달 23일 '나 오늘 전역했다니까'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해당 영상은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남성 출연진(개그맨 최지명)이 재입대하는 꿈을 꾸는 장면을 담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구독자 140만 명에 육박하던 ‘싱글벙글’은 최근 군 비하 논란에 휘말렸다. 광고 협찬을 받은 다리 마사지기 홍보에 ‘재입대 공포’ 모티프를 녹인 코너에서 여성 개그맨이 “기계가 좋으면 뭐하니. 군대 가면 쓰질 못하는데”라며 깔깔 웃은 게 문제였다. 하필 안타까운 군 사망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징병이나 군 생활을 조롱하는 듯한 뉘앙스가 반감을 샀다. 채널 측은 사과문을 발표했으나 1주일 새 구독자 2만 명이 빠져나갔다.

「 군대 조롱, 성희롱, 지역 비하 등
유튜브 인기 채널들 잇따른 논란
구독자 수 급락…지킬 건 지켜야

탁재훈이 진행하는 ‘노빠꾸 탁재훈’에서는 걸그룹 카라 멤버 니콜에게 “노땅” “아줌마” 등의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56세 남성 진행자가 스무 살도 더 어린 여가수를 “노땅”이라 놀리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즐기는 게 철 지난 마초 감각이란 비판이 많았다. ‘노빠꾸 탁재훈’은 앞서 여자 아이돌에게 “몸매가 좋으니 (일본 성인물 배우로) 데뷔하라”는 황당한 발언을 내보내 한 차례 여론의 포화를 맞기도 했다. 초대손님으로 나온 일본 AV 배우가 인턴 MC인 걸그룹 시그니처 멤버 지원에게 한 말이었다. 탁재훈이 먼저 “(AV 배우로) 지원은 어떠냐”고 운을 뗐고, 당황한 지원이 얼굴을 파묻는데도 폭소했다. 역시 논란이 일자 제작진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당 부분을 삭제했다.

지난달 19일 공개된 '노빠꾸 탁재훈'은 과거 게스트로 출연했던 코미디언 김경욱(다나카)과 일본 AV 배우 오구라 유나가 게스트로 초대된 콘텐츠였다. 사진은 이날 출연한 오구라 유나(위), 개그맨 신규진(아래 왼쪽), 그리고 걸그룹 시그니처 멤버 지원. 사진 유튜브 채널 '노빠꾸 탁재훈' 캡처

사실 일본 AV물은 국내에서 유포·판매가 불법이지만 최근 일본 AV 배우들이 우리 유튜브나 OTT에 등장하며 예능 스타로 입지를 넓혀 가는 모순적 상황이다. 심지어 ‘노빠꾸 탁재훈’에 나온 AV 배우 오구라 유나는 지난해 한 국내 연예매체의 문화연예 시상식에서 예능상을 받기도 했다. 반응은 엇갈린다. 지난해 넷플릭스 예능 ‘성+인물’이 일본 AV 배우들을 집중 조명하자 성 엄숙주의를 벗고 음지의 문화를 양지로 끌어올렸다는 제작진의 주장과, 성 상품화를 지나 인권침해·성 착취 구조 등 AV 산업의 본질을 도외시한 채 가벼운 오락거리로 포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맞섰다. 성인의 성적 자유를 내세우지만, AV물이 남녀의 건강한 성적 교감이 아니라 여성을 철저히 도구화해 왜곡된 성 인식을 담고 있다는 점은 명백한 문제다. 이 가운데 AV 배우들이 K팝 행사에 초대되거나 성인 페스티벌을 열려다가 지역 주민 등의 반발로 취소되며 논란이 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 ‘코미디 로얄’에 출연한 이경규는, 피식대학이 소속된 메타코미디팀의 노골적인 19금 퍼포먼스 코미디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연예계 대선배의 질타에 메타코미디 대표는 “MZ세대는 다 좋아하지 않을까.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한 코미디는 아무도 보지 않는 코미디”라며 “재미를 위해 불편함을 넘어 선과 싸워야 한다”고 응수했다. 그러나 그렇게 선을 넘은 결과 피식대학의 구독자 수는 25만 명이 빠져나갔고, 새 콘텐트를 업로드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예능작품상을 수상한 쾌거가 무색해졌다. 웃기면 그만이라고 선을 넘지만,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에 최소한의 눈치도 챙기지 못해선 제 살만 깎아먹을 뿐이다. 코미디가 도덕 교과서는 아니지만, 무례하고 불쾌한 웃음으로도 성공하려면 풍자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

하긴 51세 당 대표 후보를 “이상한 애”라고 부르거나, 국회 청문회 출석 증인들에게 벌주기 식으로 10분간 퇴장 명령을 반복하고, 국회의원들끼리 누가 공부를 더 잘했나 겨루는 등 무례하고, 웃기지도 않는 정치권의 짜증 나는 코미디에 비하면 약과지만 말이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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