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깊고 그윽한 인공 자연, 졸정원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쑤저우.” 양자강과 황하를 잇는 경항대운하가 7세기에 건설되었고 그 종착점인 쑤저우는 온갖 물산이 집산해 중국의 경제 허브가 되었다. 넘쳐나는 여유로 곳곳에 교량과 운하를 건설해 ‘물의 고장(水鄕)’을 조성했고, 호수와 정원을 만들어 도시를 더욱 풍요롭게 했다. 은퇴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조성한 주택 부속 정원, 즉 사가원림(私家園林)들은 한때 170여 곳에 달했다. 현존하는 60여 곳 가운데 9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졸정원(拙政園)은 1513년 명나라 시인 왕헌신이 조성한 대표적인 사가원림이다. 벼슬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주인의 한을 녹여내듯 ‘정치에 실패한 자의 정원’이란 이름을 지었다.
도입부인 동원과 중심부인 중원, 그리고 좀 더 내밀한 서원의 3부분으로 구성되고 중원의 남쪽에는 주인의 주택이 자리 잡았다. 3개의 정원은 가운데 호수를 파 섬을 만들고 호변에 산을 쌓는 방식으로 서로 독립되어 있지만, 물길은 하나로 연결되고 산책로도 연속되어 거대한 전체 원림을 이룬다. 요소마다 경관을 즐기는 정자와 손님을 맞는 청당, 서예와 독서를 위한 재관들을 세웠다. 18개의 정원용 건물들은 원형·육각형·팔각형·부채꼴형 등 다양해 원림의 경관을 더욱 변화무쌍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탑·괴석·다리 등 수십 점의 디테일한 점경 요소들을 더했다.
왕헌신의 친구인 문정명이 『왕씨졸정원기』를 쓰고 31첩의 그림을 남겨 창건 때 건축 의도를 전한다. 사법자연(師法自然), 훌륭한 원림은 자연을 스승으로 삼는다. 평야인 쑤저우에 심산유곡, 깊숙하고 그윽한 31개 장면으로 창조한 인공 자연이다. 길도, 회랑도, 다리도 구부러지고 휘어져 다양한 시각에서 원림을 보도록 했다. 최고의 고전소설 『홍루몽』의 저자인 조설근은 10대 때 졸정원에 머물며 글과 그림을 배웠다. 졸정원은 소설 속 무대인 대관원의 모델이 되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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