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한국이 싫어서? 인재들이 떠나는 이유
8월 개봉하는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2015년 장강명 작가가 쓴 소설이 원작이다. 20대 여성이 퇴사 후 행복을 찾아 호주로 떠나는 이야기다. ‘헬조선’ 담론이 유행한 그해 베스트셀러였는데,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공개 후 혹평을 받았다. 원작의 날카로움, 디테일이 사라졌단 이유다. 관객 후기도 비슷했다. ‘헬조선’이 9년 사이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이제는 ‘헬(지옥)’까진 아닌 것 같단 감각도 평가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최근 다시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이들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담낭2’란 유튜버는 ‘대한민국 고급 인력들이 미국으로 떠나는 충격적인 이유’란 16분짜리 영상을 올렸다. 그는 삼성전자, 퀄컴을 거쳐 미국 실리콘밸리 반도체 기업 AMD 본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다. 그는 “기사 속 전문가 ‘뇌피셜’이 아닌 직접 운영하는 600명이 모인 반도체 관련 단체대화방에서 실리콘밸리 빅테크 직원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고 말했다. 자체 설문이지만, 현장의 생생한 답변과 한국을 떠나는 핵심 인재들의 고민이 잘 담겨있었다.
응답자들이 뽑은 ‘미국에 오고 싶은 이유’ 1위는 ‘새로운 도전’(43명)이었다. ‘높은 연봉’(35명), ‘한국이 싫어서’(15명)가 뒤를 이었다. ‘한국에서 일하기 싫은 이유’ 1위는 ‘암울한 미래’(33명)가 차지했다. ‘커리어 한계’(28명), ‘낮은 몸값’(26명), ‘꼰대 문화’(15명)란 답변이 뒤를 이었다. 응답자들은 “정확한 성과 평가와 보상, 성장 기회가 한국에서는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내 커리어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답변도 눈에 띄었다. 이 유튜버는 “삼성보다 퀄컴에서 일할 때 근무시간, 업무량이 더 많았다”면서 “다만 출퇴근이 자유롭다. 자녀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끝나고 데려온 뒤 다시 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선 밤늦게나 주말에만 아이들을 봤는데 미국에선 더 자주 본다. 근무시간은 길어도 워라벨은 좋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실리콘밸리 출장에서 만난 한국인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미국도 한국처럼 입시 등 경쟁이 있지만, 경쟁 강도와 밀도가 다르다” “열심히 일하며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더 많은 도전 기회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사업을 하는 삼성전자 DS 부문은 하반기 ‘일의 미래’를 주제로 사내 행사를 기획 중이다. 일하는 문화를 배우기 위해 글로벌 빅테크 기업 연사를 찾고 있다고 한다. 출산·교육·과학 기술·산업 정책을 짜는 정부는 이공계 핵심 인재들이 떠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단순히 보상 때문만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육아 환경, 가족과 함께 하는 삶, 엔지니어 지원과 대우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여성국 IT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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