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라웨어’는 죄가 없다… [편집장 레터]
델라웨어(Delaware)주는 미국 50개 주 중 두 번째로 작은 주입니다. 미국 독립 당시에는 주가 13개뿐이었는데, 그중 델라웨어가 미국 헌법을 첫 번째로 승인하면서 ‘첫 번째 주(The First State)’라는 의미 깊은 이름을 얻었죠. 작지만 가치가 있는 땅이라는 의미로 ‘다이아몬드주’라고도 불린다네요. 델라웨어라는 이름은 버지니아주 초대 총독이었던 토마스 웨스트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3대 델라웨어 남작인 그는 ‘3rd Baron De La Warr’로 불렸다죠.
평생 처음 들어본 이도 많을 것 같은 델라웨어는 그러나 기업 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유명한 이름입니다. 기업 친화적인 회사법과 세제를 갖춰, 경영자에게 유리한 법의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델라웨어주 회사법’이거든요. 때문에 실제로 영업 활동 본거지를 델라웨어에 두고 있지는 않더라도 델라웨어에 본사를 둔 기업이 수없이 많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상장 기업의 50% 이상이 델라웨어주 회사법에 따라 델라웨어주에 법인을 등록한 상태에서 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나스닥 상장을 준비한다는 야놀자도 지난 2월 델라웨어주에 100% 출자법인 ‘야놀자 US LLC.’를 설립했습니다. 뉴욕 증시에 상장한 쿠팡 지주회사 쿠팡Inc도 델라웨어에 자리 잡고 있죠. 테슬라의 서류상 본사 소재지도 델라웨어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델라웨어가 ‘핫’합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쏘아 올린 ‘상법 개정안’ 공 때문이죠.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상법 제382조의3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입니다. 여기서 ‘회사를 위하여’라는 표현을 ‘회사와 주주를 위하여’ 등의 표현으로 바꾸는 게 이번 상법 개정 이슈의 핵심 쟁점입니다. 이복현 원장은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은 명시적으로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그 외 영국, 일본 등도 판례나 연성규범 등을 통해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면서 “그동안 취약했던 일반 주주에 대한 법적 보호 기반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전부터도 개정안 논의가 있었고, 특히 올 1월 밸류업 논의가 시작되면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 해소를 위해서는 반드시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사실 그동안 물적분할을 통한 쪼개기 상장 등 회사와 최대주주에는 좋지만 일반주주에게는 그리 좋지 않은 의사결정이 횡행했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최근 델라웨어주 법원이 테슬라 이사회가 지난 2018년부터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에게 560억달러(약 74조4800억원) 규모 성과급을 적용한 것이 부당한 조치라며 무효 판결한 것도 ‘주주를 위하여’에 근거한 판결입니다. 이에 격분한 머스크는 법인 등록처를 델라웨어에서 실제 테슬라 본사가 위치한 텍사스로 옮기겠다며 방방 뜨고 있지만요.
이복현 원장이 쏘아 올린 ‘상법 개정안’ 공은 어디로 튈까요? 당분간 가장 관심 있는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김소연 부장 kim.so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5호 (2024.06.26~2024.07.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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